[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오랜만에 모인 집안 가족 모임에서 온갖 사회현상에 대한 토론이 일어났습니다.

절대 꺼내서는 안 된다는 정치 이야기까지 아슬아슬 조마조마 선을 넘나들며, ‘싸움만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몇 년 만에 한국에 오신 어른 한 분이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는 한국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하십니다.

“왜 아이를 안 낳는다는 거야?”

“취직도 어렵고, 삶 자체가 불안한데, 아이를 낳겠어요? 결혼도 잘 안 하는 추세예요. 불안한 현실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이랄까요?”

“아니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고 함께 키우면서 살고 싶지 않을까?”

“나 하나의 삶도 힘든데, 그런 건 사치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도 있어요.”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것 아니야? 그럼 같이 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이를 낳고 싶을 것 아니야?”

온 가족이 달려들어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뭔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질문의 연속을 종결하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이 현실에서 사랑 따윈 고려의 대상이 아닌 거죠.”

모두 한바탕 웃어 버리고 끝났지만, 뭔가 씁쓸했습니다.

이럴 땐, 다음 질문의 대상은 항상 저이지요.

“수녀님이 말해 봐라. 이젠 사랑이란 삶 안에서 고려의 대상이 아닌 건가?”

 

‘사랑’이라.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을 뜻하는 사랑을 이야기해 보자면, 미래 선택의 순간에 고려해야 할 사항 1순위가 되기엔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언가 멈춰 버린 것일까요? 세상이 왜 이렇게 된 것이냐며 질문을 계속 던지시던 집안 어른의 말씀처럼 지금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삶 안에서 사랑이 고려의 대상인가에 대한 질문은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현실적이겠으며, 무어라 대답해야 진리일까요.

사실 우리 모두는 답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현실과의 괴리를 인정하고 각자 다른 선택을 하죠.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이상적 답변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도 막상 현실 안에서는 누구나 하는 선택을 하곤 하니까요.

'사랑'이라. (이미지 출처 = Pixabay)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종종 당신이 좋아하시는 노래를 반주하길 부탁하셨습니다. 축음기에서 나올 법한 선율의 가곡, 멋진 가요 틈에 성가 한 곡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 성가를 부르실 땐,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내용이라고 하시며, 가사에 대해 매번 긴 설명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반복하여 들어도 초등학생의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천사처럼 착해도, 많은 지식 있어도, 산을 옮길 만큼 굳건한 믿음이 있어도 다 소용없다는,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은 한참 사춘기에 접어들던 저에겐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귀찮게 노래 반주를 시키시던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가사를 다시 한번 되뇌어 봅니다. 아직도 미진하게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하는 가사가 있는 건, 제가 이상한 걸까요, 아니면 인정하고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는 걸까요?

근래 몇 주간 고등학생들과 함께 이 노래를 연습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혼란스러운 제 맘도 몰라 주고, 맑은 얼굴로, 예쁜 목소리로 학생들은 제게 매일 노래합니다.

“아무 소용없네, 아무 소용없네, 사랑만이 영원하네.”

그들의 목소리여서 그럴까요? 지금 내 삶에 ‘사랑’이 있기는 한 건지 돌아보게 됩니다.

 

요즘 무엇을 최우선에 두고 계신가요.

하느님의 이름으로, 선의로, 상황 때문에, 입장 때문에, 환경 때문에 다른 것을 맨 앞에 세우고 계시진 않은가요.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베푸는 일입니다. 우리의 근본적 삶 안에서 제일 먼저 고려되어야 할 기준입니다.

요즘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고 섣불리 말해선 안 됩니다. 나 외의 다른 존재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이 거대한 세상은 굴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이 연장되고, 편리한 세상이 오고, 끝없는 발전이 이루어진다 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겁니다.

 

당신은 매일의 삶 안에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기준 사항으로 사랑을 고려하고 있나요?


 

"내가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내 맘에 사랑 없으면

내가 참 지식과 믿음 있어도 아무 소용없으니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나 있는 모든 것 줄지라도

나 자신 다 주어도 아무 소용없네, 소용없네, 사랑은 영원하네.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자랑치 않으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불의 기뻐하지 아니 하니

내가 천사의 말 한다 해도 내 맘에 사랑 없으면

내가 참 지식과 믿음 있어도 아무 소용없으니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나 있는 모든 것 줄지라도

나 자신 다 주어도 아무 소용없네, 소용없네,

사랑은 영원하네, 영원하네."
 

James Michael Steven & Joseph M. Martin '내가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