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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정, 멈추어 나를 비춰 보는 시간[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수녀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연피정’이라는 이름으로 8박 9일의 침묵 피정이 정례화되어 있습니다. 한 해를 숨 가쁘게 정신없이 달리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헷갈릴 즈음이 되면 조용히 침묵으로 머무는 ‘연피정’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쏟아지는 잠에 1년간 얼마나 긴장하고 살았는지 확인, 그 다음은 1년간 얼마나 하느님을 멀리하고 내 힘으로 내 뜻대로 살았는지 확인하게 되죠.

또한, 그럼에도 지난 시간 삶의 자락마다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하셨다는 것에 머리 숙이는 시간을 갖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갈 용기도 생기고 다시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나눌 힘이 생깁니다.

1월 초 ‘연피정’을 끝내고 환해진 얼굴로 나오는 저를 만난 수녀님들이 한 말씀씩 하십니다. 평소에 제 얼굴이 어땠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입니다.

“피정을 분기별로 하면 환해진 얼굴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유지를 위해서라면 그냥 매일 피정을 하지 그래요?”

피정 때만 잠시 얼굴이 환해지는 것은 일상의 매 순간에 멈추어 하느님의 시선에서의 나 자신과 하느님을 의식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 놨다가 연피정 시간에 몰아 만나서인 듯합니다.

강렬한 감동이 이어지지 않고 잠시 왔다 사라지기 때문이겠죠.

사실, 우린 삶의 트랙 위에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 없이 그저 돌고 있는 쳇바퀴에 몸을 맡기고 열심히 굴러가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 잘못되었다 하겠습니까.

현실에 충실히 살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나 자신이 어디 있는지, 누구인지, 내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내 힘으로 해 보려 애를 쓰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살다 보면, -모두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제가 그렇듯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검은 색으로 변해 가고 있진 않을까요?

꼭 어느 장소라서, 어떤 시간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지금 쥐고 있는 것을 잠시 놓고 단 한마디라도 하느님과 나누어 본다면 그 자리가 피정의 자리가 아닐까요? 이 중 제일 어려운 것은 바로 잠시 놓는 것입니다. 멈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제게도 가장 안 되는 것입니다.)

한참 달리던 것을 멈추려면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자동차로 치면 브레이크 페달인 셈이지요.

어떤 것에 몰입하게 되면 숨도 쉬지 않고 하는 저에게는 “멈춤 장면”이라 불리는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호숫가에 있는 나무가 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인데요.

몇 년 전 이 풍경에 넋을 놓고 있는 제 옆을 지나시던 수녀님께서 조용히 다가와 한 마디를 던지고 가셨습니다.

“Reflection!”

‘물에 비친 그림자’ 라는 뜻도 있지만 ‘성찰’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주변이 고요해집니다. 그리고 굳어져 있는 얼굴, 숨쉬고 있지 않은 저 자신을 의식합니다.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볼 짬이 생기죠. 그제야 늘 옆에 계시는 하느님께 한마디 건네 봅니다.

누구에게나 ‘멈춤 장면’은 하나씩 있을 겁니다. 저처럼 어떤 장면일 수도, 아니면 누구의 얼굴일 수도 있겠죠. 늘 들고 다니시는 휴대폰에 멈춤 사진을 하나 저장해 놓고 가장 바쁠 때 그 사진을 열고 멈추어 하느님과 대화를 해 보심을 권합니다. 정신없이 소용돌이 안에 있을 때, 그 장면 안에 잠시 머물며 내 안의, 내 주위의 하느님 위치를 확인해 봅시다.

자주 이런 시간을 가진다면, 하루하루가 피정이 되지 않을까요?

혹시 아직 저장할 만한 멈춤 장면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잠시 하던 일을 놓으시고 자신만의 멈춤 장면을 찾아보세요.

며칠 전 제게 ‘Reflection’ 단어를 알려 주신 수녀님께서 보내 주신 따끈따끈한 저의 ‘멈춤 장면’을 공유합니다. 혹여 마음이 끌리신다면 여러분의 휴대폰에 저장하셔도 좋습니다.

2018년은 모든 날에 환한 얼굴로 건강히 지내시길 바라며....

Reflection, 물에 비친 그림자란 뜻도 있지만 성찰이라는 뜻도 있다. (사진 제공 = 이지현)

이지현 수녀(로사)
성심여고에 재직중이다. 
청소년에게 삶을 노래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돕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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