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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신앙은 신앙이라 할 수 없잖아요?[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기복 신앙도 신앙의 한 단계로 보는 게 좋겠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며 신앙을 키워 나가는 젊은이가 기복신앙에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기복신앙을 과연 신앙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바람직하다고도 할 수 없고 쉽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신앙을 키워왔던가를 돌이켜 보면 말입니다. 물론, 이런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삶의 경험과 고민에 따른 매우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문하게 된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평화나 현세의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신앙을 시작하신 분들의 경험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래서, 기복신앙을 ‘신앙이 아니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신앙의 한 단계로 보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기복신앙의 수준에 대해 신앙생활을 제법 하신 분들은 고운 시선을 보내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기도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청원들을 하느님께 들어 올리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 청원의 내용에 어떤 기준을 두어 기준에 맞으면 기복이 아니고, 그렇지 못하면 기복이라는 식으로 구분하기보다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마음의 평화와 현세의 삶에서 누릴 복을 구하고 싶어 합니다. 가장 먼저 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좀 더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건강만이 아니라 가족의 건강을 생각합니다. 홀로 행복한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겠죠. 그렇습니다. 기복신앙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에 근거를 두고 행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결국 공동체 차원으로 그 범위를 넓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기 가족이나 혈연의 범위를 넘기 전까지는 그의 신앙은 초보적 단계를 못 벗어날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좀 더 범위를 넗혀 사회구조와도 연결된 행복 추구라면 그것을 단순히 기복신앙으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와 함께 동시대의 세계를 살아가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위해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나도 일정부분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확대되어 가는 관계는 한 개인을 기복신앙에만 머물도록 하지 않도록 해 줄 것입니다. 즉, 사회적으로 확대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연대한 사람들)은 다른 차원의 신앙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연대의식을 지닌 이들은 기복의 단계를 넘어 신앙을 통해 이웃과 함께 복을 일굴 줄 아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체험을 하면서도 끈기 있게 하느님께 기도하며 버티고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그도 더 이상 기복신앙자가 아닙니다. 기복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는 진작에 신앙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복을 구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해도, 어려운 처지에서도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을 굳건히 지켜주는 어떤 힘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기복신앙을 신앙태도의 한 단계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청하든 하느님께 두는 신뢰에 흔들림 없는 태도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기대하는 식으로 기도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대신, 하느님께서 내게 더욱 좋은 것을 주시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인내롭게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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