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어떤 분이, 교회의 범위에서 정직(停職, suspensio)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물어 오셨습니다. 질문해 주신 분은 교구 인사이동 등을 통해 정직이라는 단어를 보신 모양입니다. 직무를 정지당하는 것이니 일종의 징계라고 보면 될 듯한데, 이것이 '교회의 범위에서' 볼 때는 그 무게가 좀 더 중하게 다가옵니다.

교회법에서 다루는 '정직'의 대상자는 성직자들입니다. '정직'이라는 제재를 받게 되는 이들이 성직자인 것입니다. 정직은 처벌의 한 가지 방식인 것입니다. 교회법에서는 제1333조와 1334조에서 주로 다룹니다.

교회법에서 처벌은 교정벌(혹은 치료벌)과 속죄벌로 크게 나뉩니다. 전자는 법을 위반한 자가 잘못을 뉘우치고 해당지역 교구장이 정직 제재를 풀어줄 때까지 지속됩니다. 반면 후자인 속죄벌은 유기한이든 무기한이든 기한이 정해져 있습니다. 정직은 교회법에서 말하는 교정벌(이것은 파문, 금지, 정직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음) 중의 하나로서 파문이나 금지보다는 덜 엄한 징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정직을 당했다고 해도, 성사를 집전하고 받는 것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세례를 통해 얻은 권리와 의무 행사는 그대로 남아 있기에 성체성사 등의 성사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성품에서 기인하는 권리와 의무가 제한됩니다. 성품이 주는 권리와 의무이기에, 적어도 부제품은 받아야 여기에 해당됩니다.

정직을 받았다고 해도, 통치행위 등의 실제적 권한에 대해 전적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정직 제재를 받은 이가 통치행위에 제한을 받기 위해서는 법률과 명령이 판결로 정직을 부과하거나 선언해야 합니다. 이때에만 통치행위를 제한하는 결정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살바도르, 데 파올리스, 길란다 외 지음, "교회법률용어사전", '정직' 항 참조)

통치행위에 제한을 받는다는 것은 성품을 통해 부여받은 임무에 제동이 걸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성품을 받게 되면 기본적으로, 성화하는 임무, 가르치는 교도 임무, 다스리는 통치 임무 이렇게 세 가지 임무를 맡게 됩니다. 즉, 본당이나 부여된 사목 영역에서 책임자로서 그 임무들을 행사하게 되는데 그런 것에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정직은 실제 제재의 정도와 이유가 다양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정직 제재는 언뜻, 징계 수위가 낮아 보이기에 간단히 근신이나 꾸지람 정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333조 4항의 금지 규정 수준의 제재는 매우 강력해 보입니다. "수익, 봉급, 연금 및 그와 같은 것을 받는 것을 금지하는 정직 제재는 비록 선의로라도 불법적으로 받은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반환하여야 할 의무를 수반한다". 이 금지는, 성직자로 하여금, 조항에 나열된 재산의 권리를 갖지 않도록 합니다. 그러한 재산에 대한 자격 없이 성직자는 그 재산을 차지할 수 없고, 비록 선의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반환해야 합니다.(같은 책 참조)

따라서 그 정도 수준의 정직 제재를 받게 되면, 정직을 받은 당사자는 개인 재산이 없기에 말 그대로 조용히 근신하며 제재가 풀릴 때까지 수양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연으로 성품을 받은 이들이 정직을 당하는지 이곳에서 다룰 수는 없겠습니다. 인사이동에 표현은 '정직'이라고 나와 있으나 그 사유는 사적이며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나와 알고 지내던 분이 그런 인사발령을 받게 되었다면, 나중에 그분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좋겠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해당 교구청에 문의를 해 보시든지요. 교구마다 정직 제재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정도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관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시 기도라 하겠습니다.

사제 성화의 날이 며칠 전이었습니다. 사제들이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고, 사목현장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이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청합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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