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 기사모아보기 기사제보
 
2017.8.21 월 18:31
로그인 | 회원가입
신학과 영성
하느님의 왼편엔 누가?[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박종인  |  editor@catholic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6.07  11:13:1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마르 16,19; 루카 22,69; 사도 7,56 참조)

이 성경 자료를 근거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자리 잡으셨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신경을 통해서도 우리가 신앙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에 대해 선배 신부님이 당신의 교리반에서 만났던 한 예비 신자분의 질문을 제보해 주셨습니다. "그럼 하느님의 왼편엔 누가 있나요?"

문화적 편견과 그 편견의 전통을 통해 보자면, 일견 왼편은 공석인 듯이 보입니다. 즉, 오른편이 중요하지 왼편은 논할 것이 아니라고 답할 수 있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나 유럽 언어권에서 오른편은 "바름"을 뜻하고, 그런 의미에서 말 그대로 바른쪽, 오른(옳은)쪽이라고 불려 온 것이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문화적 공통분모인지 신기합니다. 이런 배경을 포함하여 성경에는 "오른편"에 추가적 의미가 있습니다. 오른편은 "권위", "권능", "힘"을 상징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왼편은 오른편 만한 지위를 누리지 못한 채, 오히려 권위에 도전하거나 "그른"쪽의 이미지를 담아 왔습니다. 이상의 시, "거울"에 나오듯,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로 풀이되듯이 화해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에서 나타나는 왼편에 관한 좀 극단적 이해처럼 보입니다만, 묘하게도 '좌파', '좌익'하면 주류적 흐름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부류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왼편에 선 이는 좀 억울해 보입니다.

대표적 장면이, 마태오 복음(25,31-46)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오른편엔 양과 같은 이들, 왼편엔 염소와 같은 이들이 있고, 오른편의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가고 왼편의 사람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 '성 삼위일체', 안드레이 류블료프. (이미지 출처 = it.wikipedia.org)
이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신자들이 제대로 확인도 안 해 보고 믿어 온 것이 예수님 오른편과 왼편에 달렸던 죄수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맞이하고 계실 때, 그분의 양편에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진 두 죄수 중에 누가 예수님을 조롱했고 누가 예수님의 억울함을 대변했는지 성경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신자들은 오른편에 있었던 도둑(우도)은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갔지만, 왼편의 강도는 말 한 번 잘못해서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믿어 왔던 것입니다.(루카 23,39-43 참조) 그러나 사실은, 복음 저자가 왼편의 죄수와 오른편의 죄수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복음 저자가 오른편 왼편을 구분하지 않았는데도 자동반사적으로 구분을 하는 상황이고 보니, 어째 하느님의 왼편에는 뭔가 안 좋은 것을 상징하는 인물이 있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 순간 확실히 믿으셔야 할 것은 하느님 곁에 나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마태오 복음 25장의 장면은 미뤄 두시고, 우리가 고백하는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이시라는 것을 감안해서 상상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성부 하느님의 오른편엔 예수님, 왼편엔 성령이 계실 것이라는 상상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위치는 천상 옥좌를 두고 오른편과 왼편이 나란히 놓여진 위치가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상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안드레이 류블료프의 이콘 '삼위일체' 참조) 따라서 굳이 왼편과 오른편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분들은 서로 마주 보고 계시고 또한 한몸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족을 달자면, 성경에는 왼편과 오른편에 관해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해 주는 부분이 또 있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께서 예수님께 찾아와 아들들의 자리를 부탁하는 대목입니다.(마태 20,20-23) 이 어머니는 주님의 나라에서 한 아들은 주님의 오른편에, 다른 아들은 주님의 왼편에 앉게 해 달라는 청을 합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오른편이 넘버 투, 왼편이 넘버 쓰리라고 이미 자리 배정을 하고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신앙으로 고백하는 그 대목.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권위와 권능을 지니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파생되는 성부의 왼편엔 누가 좌정하셨는가는 결국 우리의 상상에 맡겨진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관련기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지금여기소개광고안내제휴문의찾아오시는길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서울시 종로구 계동2길 26. 여흥민씨종중빌딩 201호 | 대표전화 : 02-333-6515 | 팩스 : 02-333-6513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준영
등록번호:서울아00818 | 등록연월일:2009.3.24 | 발행인 : 김원호 |  편집인 : 박준영 | mail to editor@catholicnews.co.kr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영리금지'에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