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한자로 보면 "교회의 아버지"라고 풀이되는 교부(敎父)는 교회의 초기에 활동한 이들로서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다진 인물들을 가리킵니다. 영어로 Father of the Church (라틴어로는 Pater Ecclesiae) 입니다. 아무래도 교회의 기초를 다진 이들이라는 점에서 대부분 주교의 지위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초기 교회에서 교회 공동체를 이끌었던 인물들이 자신을 스스로 "교회의 아버지"라고 불렀을 리는 없다고 봅니다. 즉, 초기 교회의 중요한 공의회에 참석하여 신학적 이론을 공고히 한 인물들이 스스로를 교부라고 불렀다기보다는 그 후대의 사람들이 그들의 지침을 교의의 기준으로 삼았고, 이런 기준과 전통을 제시한 이들을 교부라고 칭했을 것입니다.

공의회 전통과 연결되어 교부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교회를 이끌어 가는 주교들을 칭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즉, 공의회를 통해 중요한 지침을 마련했을 때, 그런 근거를 제공한 이들을 가리켜 좀 더 포괄적 범위에서 사용합니다.

▲ 그리스 교부 중 시기적으로 마지막 인물인 성 요한 다마세노.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그러나 '교회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는 좁은 뜻의 교부는 교회사적 성격을 띠는데, 그 명칭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네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가톨릭대사전, "교부" 항; Wikipedia, "Pères de l'Église" 항 참조)

첫째, 고대성을 가진 인물이어야 합니다. 즉, 고대 교회시기에 속한 인물이어야 합니다. 학자들은 이 범위를 예수님의 사도들과 인접한 시기에서부터 8세기까지로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스콜라 철학이 생겨나기 전까지 교회의 이론적 바탕을 마련해 준 이들을 가리킵니다.

둘째, 그들의 삶이 거룩하여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교의적 오류가 전혀 없는 작품을 저술했고, 그 저작은 교회의 교의를 훌륭하게 방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거나 그런 작업의 예시가 되어야 합니다.

넷째, 교회의 암묵적이거나 명시적 동의를 얻은 인물이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교회가 전통적으로 교부라 인정해 온 분들입니다.

교부들은 교회가 시성 절차를 밟아 "공식적으로" 성인을 인정하듯이 그런 절차와 인정을 받은 이들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전통적 혹은 관습적으로 교부라고 인정받아 온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라틴 교부와 그리스 교부로 나뉩니다.

라틴 교부는 이탈리아 반도를 포함하여 그 서쪽 지역, 그리스 교부는 그리스를 기준으로 그 동쪽 지역에서 활동한 교부들입니다. 교회는 라틴 교부 중 시기적으로 후기 인물을 대 그레고리오 성인(교황, 540-604)이나 세비야의 이시도로 성인(560?-636)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리스 교부 중 시기적으로 마지막 인물을 성 요한 다마세노(676-749)로 보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에 대한 열망으로 자신의 생식기를 돌로 쳤다는 이유로 교부가 되지 못하고 있는 오리게네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 라틴 교부들은, 성 암브로시오, 그의 제자 성 아우구스티노, 앞서 언급한 대 그레고리오 교황, 성서 번역으로 유명한 예로니모 성인이 있습니다.

그리스 교부들의 대표적 인물은, 바실리오,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 니사의 그레고리오,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같은 성인들입니다.

교부들의 대부분이 주교였지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성 예로니모는 주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교부들에 대해 거론할 때, 교회가 교부라고 인정하지는 않는 분위기지만 은근 많은 학자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은 성경 해석과 많은 저술로 유명한 오리게네스라는 인물입니다. 교부학(교부들에 관한 학문, patristics)을 공부하면서 꼭 다루는 인물임에도 교부라고 인정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에 의하면,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열정이 너무 강해서 자신의 생식기를 돌로 쳤다고 하는데요. 이것 때문에 위에 언급했던 네 기준 중, 두번째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그가 교부의 반열에 들지 못한 사유라는 소문이 들려 옵니다.

아무튼, 교부들은 사도의 전통을 이어받아 교회의 초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합당하게 설명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모범적으로 해석하여 신자들을 인도했습니다. 이단적 이론과 논쟁하며 그리스도교 교리를 더욱 단단히 다졌습니다. 이들의 노력이 전통이 되어 오늘날에도 교회가 방향을 잃었을 경우, 우리가 돌아가야 할 원천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 그들의 정신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