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몇 년 동안 '교회상식 속풀이'를 한 주에 한 번 씩 다루다 보니, 몇몇 독자분들은 그 내용들을 책으로 엮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나 봅니다. 몇 달 전 실제로, 출판과 다양한 미디어 사목으로 유명한 한 수녀회로부터 속풀이 원고를 정리해서 책으로 내 보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에 그것이 유용한 것이라면 한번 해 보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문학도가 되고 싶다고 아주 막연히 꿈꿨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때는 소설이든 산문이든 시든 뭔가 하나를 쓸 날이 오겠지.... 기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런 창작 작업에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보탬이 되어야겠다고 삶의 방향을 돌려버렸습니다. 그런데 기대하였던 장르의 글은 아니지만 책을 내는 작업을 하게 된 걸 보니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두고 볼 일이라는 진리를 재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공교롭게도 언론매체 쪽에서 일하는 친구가, 교회에서 책을 내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질문을 해 왔습니다. 즉, 저작물에 관한 '교회인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이번에 출판을 준비하면서도 그건 출판사 쪽에서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하며 팔짱 끼고 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벌어진 기회에 한번 알아 보는 것도 교회상식을 넓히는 일이 되겠다 싶어, 출판을 함께 준비하는 수녀님께 먼저 여쭤 봤습니다. 수녀님은 간단하게 설명해 주셨는데, 일단 수녀회의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모든 원고는 교회인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출판승인신청서"를 작성하고 교회인가를 받을 원고 전체를 출력하여, 함께 해당교구 사무처로 보냅니다. 해당교구는 출판사가 있는 교구를 의미합니다. 이 수녀회의 출판사가 있는 곳이 서울이기에 제 원고는 서울대교구 사무처로 보내지겠지요.

좀 더 자세히는, "신앙과 도덕에 관한 저작물의 출판 승인 규정"(이하 승인규정, 주교회의 2011년 춘계 정기총회 개정)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교회인가의 필요성은 "그리스도 신자들의 신앙이나 도덕에 유해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감독하고, (그러한) 저작물의 전시, 판매, 배포를 금지해야 할 의무와 권리"에 기초합니다.(교회법 제823조 1항 참조)

▲ 교회 인가를 받은 출판물은 앞 또는 뒤에 '교회인가'(Imprimatur) 또는 Nihil obstat라고 찍혀 있다. (왼쪽 사진 ⓒ왕기리 기자, 오른쪽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저작물은 서적만이 아니라 공적으로 배포될 것이면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곧 신문, 잡지, 기타 인쇄물과 복사물, 오디오/비디오 테이프, CD, 전자 출판물 등입니다.(승인규정 제3조 참조) 이중에서 교회에서 관리하는 대표적인 저작물들은 성경, 전례서, 교리서 등입니다.

성경과 그 번역판은 사도좌(교황청)나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출판할 수 있습니다.(교회법 제825조 1항). 전례서와 그 번역판은 사도좌의 인준을 받아야 하며, 그 출판은 주교회의에 속합니다.(교회법 제838조 2-3항) 교리서뿐 아니라 교리교육에 관한 기타 저작물이나 그 번역판은 교구장의 승인이 있어야 출판할 수 있습니다.(교회법 제827조 1항)

종교나 도덕의 문제를 다룬 책이나 기타 저작물은 교회 관할권자의 승인을 받은 것이 아니면 성당이나 경당에 전시되거나 판매되거나 배포될 수 없습니다.(교회법 제827조 4항) 따라서 본당사제나 경당 책임자는 그와 같은 저작물이 성당이나 경당에서 전시, 판매, 배포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승인규정 제 10조 2항)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성격의 책이나 기타 저작물을 제작하시고자 한다면, 필히 교회 관할권자의 승인을 얻어야 합니다. 결국 이를 위해 검열을 받아야 하며, 검열인으로부터 긍정적인 판정이 나와야 합니다. 긍정적인 판정이라 함은, "그 저작물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이나 도덕에 해로운 것이 있음을 찾아내지 못하였다"(라틴어로 Nihil obstat 라고 찍힙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승인규정 제14조 2항 참조)

성당의 성물판매소나 가톨릭서원, 바오로딸, 성바오로 서점 등에 가셔서 책을 열어 보시면, 맨 앞쪽이나 맨 뒤쪽에 "교회인가"와 인가 날짜가 찍혀 있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혹은 Nihil obstat(장애 없음)라고 적혀 있는 것도 있습니다. 아무튼 둘 다 교회의 검열을 받았음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성당이나 경당이 아닌 서적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판매소에는 교회인가를 받지 않은 서적들도 있습니다. 승인규정에서 거론하고 있지 않은 서적들, 예를 들자면 수필, 시, 소설 등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 원고는 책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제대로 업데이트된 정보를 이용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책을 내면서 인터넷 상에 게재한 내용의 오류도 함께 교정해야겠습니다.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전례 전문가, 교회법 전문가, 본당 사목자 선배님들과 수녀님들, 몇 분의 신자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검열은 무사통과할 것이라 낙관합니다.

그런데 이런 함정이 있네요. 검열인이 긍정적으로 판정하였다 하더라도 교구장은 그 책의 출판을 승인하여야 할 의무는 없다(교회법 제830조 3항 참조)는 것입니다. 과연, '속풀이'가 책이 되어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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