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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와 운동회, 그리고 칠면조[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69]

우리 1학년 3반 회장엄마는 대부분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치는 희귀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또한 행사 측근들만 알고 있는 기밀도 다량 보유하고 있다. 각종 문화공연, 강좌, 숨은 벚꽃 명승지, 홍보가 덜 된 벼룩시장, 경쟁률이 낮은 어린이 사생대회, 선착순 종이접기 교실에 대한 정보도 회장 엄마 덕분에 알게 된 것들이다. 이대로라면 비록 논두렁길 옆 초가삼간에 살고 있는 나라도 도시에 버금가는 풍부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학교 앞 밥집에 엄마들이 다 같이 모여 보글보글 끓는 닭볶음탕을 먹을 때였다. 회장엄마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번에 ㅇㅇ복지관에서 하는 가족운동회 알아요? ”

온 가족이 출동하는 운동회라니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데 애 데리고 운동경기라니 생각만 해도 지쳐. 다른 엄마들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하지만 회장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슬슬 정보를 풀어놓는다.

“근데 거기 경품이 상당하대요. 경품이 얼마나 많은지 참여한 가족 모두에게 돌아가고도 남을 거라고요.”

모두에게 돌아가는 경품? 나를 포함해 많은 엄마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초등학교 내내 문방구에서 종이뽑기를 했어도 뭐 근사한 거 하나 뽑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뽑기통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었고 나는 늘 나에게 돌아올지 모르는 행운의 기회를 노렸다. 

주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자에 손을 집어넣어 반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을 집어 올린다. ‘아, 1등이면 좋겠다....’ 하면서 종이를 열면 스테이플러가 토도독 뜯겨 나가며 안에 적힌 번호가 드러난다. 대개는 7등, 잘해야 5등이었다. 그런데 그 뽑기는 1등 말고는 의미가 없었다. 1등은 당시 떠오르던 고급 간식, 전기구이 오징어였는데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고 다리 혹은 몸통 일부분이 들어 있을 뿐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에 비해 나머지 번호는 ‘꽝’이나 ‘다음 기회에’와도 같았다. 소포장된 전기구이 오징어라 그리 비싸지 않았던지 1등이 아주 드물지 않았다. 오징어를 뽑는 아이들이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다. 얼마나 타율이 좋았냐면 하루는 학교 갔다 온 동생이 손에 오징어를 다섯 개나 들고 나타났다. 동생 말로는 원래 일곱 개를 뽑았는데 집에 오는 길에 두 개는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고 했다. 이후 동생은 오징어를 일곱 개나 뽑은 ‘뽑기 왕’다운 삶을 살게 된다. ‘단번에 일곱 마리’라고 써 붙인 벨트를 차고 다닌 건 아니었지만 동생은 늘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자신은 운이 좋을 것이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자주 현실이 되었다.

   
▲ 추억의 종이뽑기판. (이미지 출처 = Auction 대박나라 종이뽑기 판매 페이지)
강한 돌풍을 동반한 국지성 호우가 예상되는 날 일기예보를 보지 않은 동생이 우산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치자. 그칠 기미 없는 장대비가 퍼붓고 있는데 우산이 없어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동생에게도 닥친다. 하지만 동생이 거리를 나설 즈음에는 어느새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비치는 식이다. 비구름이 동생을 의식하고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일은 예사로 일어났다. 자신의 운을 과신한 동생은 급기야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고도 일부러 우산을 안 가져가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는데 그러고도 나보다 비를 덜 맞고 다니는 것 같았다. 과연 ‘뽑기왕’이었다. 하지만 뽑기왕의 비밀이 용돈을 모두 턴 데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나는 내가 참 운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나는 통이 큰 어린이가 아니어서 뽑기 딱 한 번에 그쳤는데, 한 방을 노린 나의 요행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 번도 그 한 방이 터지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꽝’이 나오는 인생이 불운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게 인생 전체를 보면 나름 바람직한 면도 있다. 계속 꽝을 뽑다가 뽑기에 흥미를 완전히 잃고 말았던 탓에 지금껏 요행을 바라지 않는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 온 것이 그런 점이랄까. 하지만 우주의 기운이 전혀 모아지지 않는 인생을 사는 건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내가 길을 나서면 멀쩡한 날씨에도 예고 없이 비가 퍼부었고, 비 오는 거리를 내달리며 흠뻑 비를 맞고 집에 들어오면 곧이어 눈부신 햇살이 비치며 날이 갰다. 비가 올 듯 말 듯 애매한 날씨에는 무조건 우산을 챙기는 식으로 운명에 맞서 보았는데 괜히 짐만 되고 툭 하면 우산을 잃어버리고 다니기 일쑤였다. 나는 흡사 전기구이 오징어의 저주에 빠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다. 어쨌든 결혼을 해 남편이 생기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를 셋이나 낳고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꽤나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행운이나 불운의 영역을 벗어난 운명이나 숙명 같은 느낌이지만 아무튼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는 게 어딘가 싶어 스스로 대견할 때가 있다. 물론 그로부터 파생되는 고뇌도 비례해 늘어나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겠지만 그것 때문에 징징대고 있을 수만도 없으니까. 어쨌든 초등학교 때 종기뽑기의 추억에 매여 있기엔 상황이 많이 변했다. 나라고 복권에 당첨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려면 일단 복권을 사야 한다. 복권을 사야지 당첨이 되든지 말든지 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경품이 비 오듯 쏟아진다는 가족운동회에 참가해 행운의 아이콘으로 거듭나 보자고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경품대잔치 아니, 가족운동회의 날이 밝았다.

운동회가 열리는 초등학교 실내 체육관에는 이미 많은 가족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체육관 가장자리를 따라 돗자리가 펼쳐져 있었고 돗자리마다 먼저 도착한 가족들이 앉아 있었다. 운동회가 예상 밖으로 너무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는지 늦게 도착한 가족들은 앉을 자리가 없어 복지관 직원이 여분의 돗자리를 몇 개 더 가져왔을 정도였다. 노란색 티를 맞춰 입은 회장엄마네 가족도 보였다. 사회자석 옆에는 경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반짝이 포장지로 포장까지 되어 있는 경품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고 개수는 백 개도 넘어 보였다. 체육관에 들어오면서 가족 수대로 나눠 준 경품응모권이 5장이니까 저 중에 뭐라도 될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맘 편히 운동회를 즐겨 볼까.

주위를 둘러보니 로 또래의 아이들에서부터 어르신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어린아이들은 체육관을 뛰어다니다 마구 엎어졌다. 엄마들은 아이 꽁무니를 쫓느라 바빴고 아빠들은 무료한 얼굴로 돗자리에 앉아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앉은 채로 잠들어 버릴 것만 같은 얼굴들이었다. 그런데 그 아빠들이 나중에 백팔십도 변하는 반전이 일어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도 남편도 그 반전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처음엔 대충 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부모의 모습을 보여 줘야겠다는 결심과, 한창때 나도 달리기 좀 했지 하던 그때 그 시절 추억과, 그래도 꼴등은 하지 말자는 오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갈수록 열기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마음에 들거나, 특별히 눈에 띄는 가족에게 상품을 줘 버릇하는 사회자 때문에 경기는 전국체전 못지않은 진지함과 경쟁심, 승부욕이 발동하기에 이른다. 흡사 하늘에서 상품비가 내리듯 사회자가 손짓만 하면 상품이 전달되었는데 이런 주최 측의 ‘심심하면 상품쏘기’ 전략도 소극적인 참가자들을 돌변하게 하는 데 아주 주효했다.

양팀 응원대결을 할 때는 지원자가 속출했고 얌전해 보이는 한 아저씨가 오리 궁둥이를 하고 왔다갔다 박수를 유도하며 망가지는 충격적인 광경도 벌어졌다. 소싯적 좀 놀아 본 것 같은 아버지, 어머니들이 어찌나 많은지.... 사회자가 경품을 걸고 “오늘 이 순간의 기분을 온몸으로 표현해 보시오.” 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는 종교 집회의 간증 현장이 따로 없었다. 남편이 로를 머리 위로 번쩍 들더니 공중에 던졌다 받기를 하는 게 보였다. 저런 저런 꽤 힘들 텐데.... 그래도 저 정도면 사회자의 눈에 띄는 건 시간 문제야 하며 상품을 받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필사적으로 뛰며 고함을 지르다 아예 체육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다른 아빠에게 경품을 뺏기고 말았다.

   
▲ 남편이 달리기상으로 받은 누르면 꾸에에엑 소리 나는 털 뽑힌 칠면조. ⓒ김혜율
운동회는 무르익어 운동회의 꽃, 달리기 경주 시간이 되었다. 지금껏 개인기가 부족했다면 달리기 실력으로 승부하면 된다. 달리기는 연령대별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하지만 로는 돗자리에 앉아서 간식 꾸러미를 뒤진다고 정신이 없어서 불참 했고 메리와 욜라는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사회자가 아이들만큼은 승부에 따르기보다 그냥 뛰는 데 의의를 두는 게 좋겠다고 해서 상품은 없었다. 이번에는 엄마들의 경기! 나는 시합을 앞두고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풀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엄마를 응원하고 남편들은 그 모습을 카메라로 담고 있다. 요시 땅! 나는 달렸다. 양팔을 걷어붙이고 발이 꼬여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끝까지 달렸다. 결국 나는 일등 아니면 이등을 한 것 같았는데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기도 전에 사회자가 이번엔 꼴등에게 상품을 주겠단다. 마지막으로 아빠들 달리기 경기만이 남았다. 사회자는 아빠들에겐 두발 묶고 달리기를 시켰다. 덩치 큰 남편이 두 발이 묶인 채 높이 뛰어 결승선을 들어오는 모습은 근육질의 캥거루 한 마리를 연상케 했다. 남편은 종종걸음으로 가야 하는 달리기를 뜀뛰기를 하는 변칙을 써서 사회자의 지적을 받았지만 그래도 후한 인심의 복지관 직원은 남편에게 일등상을 챙겨 주었다.

그 이후로도 풍선 터뜨리기, 줄 먼저 뺏기, 신발 던지기 게임이 연령별로 진행되었고 줄다리기를 끝으로 운동회가 끝이 났다. 그리고 아직도 많이 남은 경품의 주인공을 가릴 경품 추첨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모든 가족들이 체육관 중앙에 모여 앉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번호가 불리기를 기대하는 시간.

자잘한 경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경품이 워낙 많다 보니 두 개, 세 개 받는 가족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경품의 크기도 커졌고 30개 화장지 묶음과 라면 한 박스만 남겨두었을 때엔 아직 불리지 않은 응모권이 많지 않았다. 나는 다섯 장의 경품 응모권을 부채처럼 펼쳐 메리의 손에 쥐어 주며 번호가 불리거든 지체 말고 앞으로 뛰어나가라고 일러 놓았다. 아, 그런데 메리는 마지막까지 체육관 바닥에서 엉덩이를 뗄 수 없었다. 무형광 천연펄프 두루마리 휴지는 이미 다른 경품을 세 개나 받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이가 없을 만큼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회장엄마의 얼굴은 나보다 더했다. 그래도 우리는 달리기상이라도 받았지 회장엄마네는 받은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체육관 천장 아래 아무런 상품을 받지 않고 돌아가는 가족은 두세 가족쯤 되었다. 어떤 가족은 두 개, 세 개가 넘는 상품을 들고 가다 손이 모자라 길에 마구 떨어뜨리고....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순수하게 운동회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온 사람처럼 보람된 얼굴로 체육관을 나왔다. 뭐 어쩌겠는가. 오징어의 저주가 아직 안 풀린 것 같으니....

남편이 달리기를 하고 받은 건 털 뽑힌 닭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게 칠면조라고 했다. 닭보다는 칠면조가 더 값이 나가니 이왕이면 칠면조라 부르기로 하자. 그런데 그 칠면조는 추수감사절 미국인들 식탁에 올라가는 가금류가 아니라, 손으로 눌렀다 뗄 때 꾸에에엑 하고 비명 소리를 내는 플라스틱 고무 장난감이다. 문방구에서 파는 걸 보았을 때 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이렇게 받게 되다니 아주 참 잘 되었지 뭐야. 복지관 젊은 직원들이 상품 고른다고 많이 애쓴 것 같다. 여기저기 손에 들고 가는 오늘의 경품들이 다들 깜찍하고 귀엽기 짝이 없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도 잊은 채 온몸을 던져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 준 한 아버님의 손에는 곰돌이 인형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우리 다섯 식구는 기분이 좋았다. 상도 하나 받은 데다 처음으로 온 가족이 운동회에 참여한 뜻 깊은 날이었으니까.

이튿날 새벽, 방에서 나오던 남편은 바닥에 떨어진 칠면조를 밟았다고 한다. 온 식구가 깨어나는 줄 알고 식겁했는데 깊은 잠에 빠진 식구들은 새벽녘에 울리는 칠면조의 비명소리를 다행히 듣지 못한 것 같았다고.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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