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66]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잘도 망했다. 자그마치 몇 년 만의 파마가 말이다. 잦은 임신과 출산, 모유 수유 덕분에 머리카락에 화학약품을 멀리해 온 숱한 세월이 무상하다. 그 세월이 십 년이 채 되지 않았건만 강산은 많이 변했다. 몇 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 강줄기의 흐름과 방향이 억지로 바뀌고 재 너머 산등성이에 송전탑이 세워지고 원자력발전소가 맹렬히 돌아가는 금수강산 위로 미세먼지가 뿌옇게 덮이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그냥 내버려 둔 내 머리카락은 시간이 흐를수록 큐티클 층이 점점 회복되더니 윤기를 되찾고 오염되지 않은 땅처럼 순수해졌다. 인디언 부족이었다면 머리에 깃털 하나 꽂으면 손색이 없으련만 나는 대중문화가 끊임없이 제공하는 미적 기준에 굴복한 사람으로서 자연 그대로를 탈피하려는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게다가 곧 다가오는 학부모 시즌. 그저 엄마들 사이에서 너무 못나 보이지는 않아야 한다. 그런 소망을 품고 지역 커뮤니티 카페에서 어슬렁거리다 알게 된 ‘제임스 아르더밸라 헤어샵’. 미용실 원장인 제임스 씨는 어디 외국에서 미용 공부를 하고 서울 강남과 청담동에서 이름을 날리던 미용계 인재였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것일까, 마치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 시골로 내려와 일생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의 미용실을 차리게 되었다고 했다. 조명과 가구를 고르고 동선을 고려한 실내 구조를 구상하고 실현시켰음은 물론이고 포름알데히드가 나오지 않는 친환경적 마감재 선정까지 미용실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했다. 무엇보다 제임스 씨가 하는 머리에는 까다로운 고객의 요구 하나하나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그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정수가 녹아 있는데, 그 뛰어난 미용 실력을 오로지 고향 지역민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그는 분명 미용계의 성자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 제임스 추종자들이 말하는 요지였다.

▲ 바닷가에서의 낭만. ⓒ김혜율
실제 서울에 살고 있다는 그의 한 열성팬은 머리스타일을 바꾸려고 서울에서 2시간 거리의 제임스네 미용실에 찾아온다고 밝히고 있었다. 온 김에 주변 맛집도 들르고 유물, 유적지까지 탐방하고 간단다. 그쯤에서 그만 나는 눈이 뒤집혀서는 ‘이곳이야, 바로 여기! 내 머리스타일의 운명을 결정할 곳!’하고 외쳐 댔다. 그와 동시에 나는 이 동네로 이사 온 이래 줄곧 단골로 다녔던 ‘배순덕 미용실’과 작별을 고하게 된다. 고객 마음은 갈대와 같고 냉정하기는 추운 새벽녘 배춧잎에 내려앉는 서릿발보다 매섭다더니 내가 딱 그랬다. 그래, 이왕 말이 나왔으니 배순덕 미용실도 잠깐 소개해 보자. 그곳은 키가 크고 수수한 인상의 배순덕 씨 혼자 손님을 상대하는 작디작은 미용실이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는 문짝을 열고 들어가면 배순덕 씨가 좁은 의자에 앉아 호박씨를 까먹거나 손수 만든 살구청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다가 일어나 나를 반겼다. 주된 고객은 아줌마 파마를 하거나 정수리 볼륨을 살리려는 연세 있으신 어머님들이었고 가끔 인근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이발을 하러 들린다고 했다. 그녀는 지난 삼십여 년간 손님들 머리를 말아 주며 세 아이를 모두 업어 키운 강인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머리를 하면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역시 대주제는 ‘여자의 일생’이다. 하부 카테고리로는 육아, 건강정보, 시댁, 결혼생활의 비애, 남편 욕까지를 총망라한다. 깨어 있는 여성 배순덕 씨는 그에 그치지 않고 ‘여자의 일생과 정치’나 ‘여자의 일생과 경제’, ‘여자의 일생과 인물, 사회, 철학’ 등 뻗어나가지 않는 주제가 없었다. (배순덕 씨는 늘 말미엔 ‘그래서 남편과 이혼, 내가 못할 것 같으냐’로 결론을 맺곤 했지만 계속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나는 그녀와 내가 같은 아줌마란 사실에 동지애를 느꼈고 안심했고 때로 분개했다. 무엇보다 그녀와 나 사이 몇십 년의 시간차에도 별반 다르지 않는 여자로서 느끼는 공통 정서에는 서글픔도 느꼈다. 꼭 변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흔히들 최선이자 최후의 해결책은 각자 스스로 달라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보다 더 큰 테두리 안에서 완벽히 자유롭기 힘들다. 때문에 우리는 늘 크고 작은 테두리가 그로부터 영향받는 대상을 진심으로 위하는 상식적인 마음이 있는지 선한지 악한지에 대해 다투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배순덕 씨 이야기를 듣다 보면 거울 속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조금씩 익숙해져 왔다. ‘저기 거울에 비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구나, 적당히 늙어 가는 저 사람이.’라며 내 자신과 나누는 화해의 시간도 거기에 있었다.

▲ 모래 위의 악필. ⓒ김혜율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딱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과하게 쏟는 예술혼이 그것이다. 나는 머리카락에 큰 애착이 없는 손님이어서 늘 모호한 표정으로 ‘알아서 해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그러면 그녀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정없이 싹둑싹둑 머리를 자른다.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내가 ‘어떤 머리 해요?’하고 물으면 후후 웃으며 그녀는 말했다.

“으음. 좀 야한 머리를 해 볼까 하는데? ”

나는 애가 셋이긴 하지만 순진한 여성인데 자꾸 그러셨다. 나는 그녀로부터 그 옛날 어디선가 보았던 일본 남자 아이돌이 했을 법한 과도한 샤기컷에 뒷 머리카락의 일부만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형상의 야한 머리를 선사받게 되었다. 머리스타일에 맞춰 코라도 뚫고 가죽 레깅스라도 입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산란했다. 하지만 평생 이 머리로 살 건 아니니까 하고 마음을 달래고 곧 일상생활에 복귀하곤 했는데 그러다 머리가 길면 여지없이 다시 배순덕 미용실을 찾아가곤 했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건 머리에 애착이 없고 사람을 만날 일도 거의 없는 전업주부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아이돌 머리를 비롯한 배순덕 씨가 추구하는 실험적인 머리를 하고 로를 업고 포대기를 두르고 다녔던 나는 이제야 제임스 씨를 알게 된 것이다. 내 머리 스타일의 운명을 바꿔 줄 그를.

그래서 제임스 씨를 만나고 운명이 바뀌었냐 하면 나는 아직도 그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가 허리에 걸치고 다니는 쇠사슬도 보지 못했고 걸을 때마다 엉덩이가 씰룩이는지 어떤지도 알지 못한다. 내가 찾아 간 날 제임스 원장님은 하필 출타 중이셨다. 하지만 십여 명에 이르는 그의 후예들이 나의 옷을, 나의 가방을 받잡고 서비스로 제공되는 음료 메뉴판을 펼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 메리, 로, 욜라. ⓒ김혜율
나는 미용사께 레이어드 컷에 굵은 C컬로 머리를 말아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긴 속눈썹을 붙인 부원장이라는 사람이 다가오더니 ‘나 같은’ 얼굴은 C컬보다는 S컬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닌가. 전문가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머리를 그들에게 맡긴 지 몇 시간 뒤 나는 서두에 밝혔듯이 보기 좋게 망하고 말았다. 첫날은 그럭저럭 처음이니까 어색한 탓이라고 넘어갔는데 머리를 감고 난 다음날부터 어찌된 건지 내 머리를 보면 삼각김밥이 자꾸만 연상되는 거다. 머리카락 말미 부분에 집중한 S컬이 문제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래 가지고 나는 메리 초등학교 입학식에도 가고 학부모총회도 갔다. 메리의 1학년 3반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밴드에 들어가면 입학식 날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단체로 찍은 메인 사진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나는 그 문제의 삼각김밥 머리를 하고 있다. 남편이 그런 나를 위로해 주려는 듯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뜻은 정확히 잘 모르지만.... 혜율이 머리를 보면 어떤 한 단어가 떠올라.”
“무슨 단어....?”
“음....” 남편은 말하길 주저하고 있었다.
“뭔데? 말해 봐 어서.”

그러자 남편이 소리 내 웃으며 말했다.

“아방가르드 라고.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마침 나도 불현듯 내가 아방가르드한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정확한 의미 여부와 상관없이) 그대 눈썰미 한번 대단하네 그려....

그래서 결국 나는 일본 아이돌의 머리가 나은지 삼각김밥이 더 나은지는 도무지 결론을 못 내리고 오늘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흘러흘러 다시 새롭게 변신할 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

추신. 사생활 보호를 위해 미용실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이 세상 엄마들께 저의 처절한 미용 후기를 밝힘으로써 그래도 괜찮다는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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