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67]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불시에 내 코가 습격당한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돌만큼 단단한 어떤 것이-그것은 사람의 머리통이었는데-내 얼굴을 들이박았다. 범인은 욜라와 로, 둘 중 하나다. 메리는 그 시각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성립하지만 글쎄.... 어쩌면 그 셋은 공범일지도 모른다. 내 무릎에 앉아 있던 녀석이 갑자기 온 힘을 다해 뒤로 나자빠지듯 몸을 날리며 머리통으로 내 코를 박치기한 것이다. 빠악! 그 순간 내게 별이 보였냐면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기기 전 태초의 깜깜함에 가까웠다. 고요했고 요동쳤다. 악 소리도 못 내고 코를 싸잡아 쥐고 몸부림만 쳤다. 그리고 이내 팽창하여 폭발하는 빅뱅이 일어났고 곧이어 수만 개의 별이 생겨났는데 나는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눈에선 눈물이.... 고통으로 벌어진 입에선 신음과 함께 침이 흘렀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 머릿속엔 그간 나와 함께였던 코의 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 다시 내게로 이어져 내려온 ‘김씨 집안 코’의 탄생에서부터 축농증으로 고생했던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애 동생이 던진 축구공에 정통으로 맞고 생애 최대 위기를 맞았던 코, 너무 잘생긴 탓으로 자연산임을 의심받다 내 아버지의 코를 본 친구의 양심 고백에 우쭐해진 코, 그런데 세 아이 모두 날 안 닮고 제 아비 코를 닮았음에 유전자의 신비를 원망하던 코, 그리고 관상학적으로 대박 운이 실현될 날만을 남겨 둔 오늘날의 덕성스런 코에 이르기까지 다사다난했던 코의 생이 스쳐갔다. 그리고 이제 돌, 아니 돌과도 같이 단단한 머리에 맞은 코는 허무한 종말을 맞는 중이다. 나는 아픔과 절망으로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최악의 경우 코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인생에서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 모양이다. 손으로 더듬어 확인해 본 내 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말짱했던 것이다. 부러지거나 휘어지지도 않았고 코피 한 방울도 비치지 않았다. 야구방망이에 맞는 순간 방망이 표면을 감싸듯 일그러졌던 야구공이 곧이어 둥근 제 모습을 찾는 놀라운 탄성 작용이 내 코 연골에서도 일어난 것 같았다. 와장창 하고 찌그러졌다 다시 오똑 하고 바로 서는 내 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지만 코가 무사하여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 수선화 피는 봄날 박치기 범인 로. ⓒ김혜율

그런데 아이들은 많이 놀랐을 것이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걸 봤으니까. 여기서 아이 머리통의 단단함을 탓하는 건 너무 근시안적인 사고다. 인생을 살다 보면 단단한 머리가 때로 큰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앞으로는 좋은 일에만 머리를 사용하기로 다짐을 받고는 이번 일은 넘어가기로 하자. 눈물로 흐려진 시야를 손으로 문질러 닦으며 아이들을 용서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아아, 이 사건의 참된 비극은 지금부터다!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들을 보았다면 나는 그날의 코 박치기 사건에 대해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코의 생이니 뭐니 감상에 젖을 필요도 없었을 테고.

고개를 드는 그 순간 왠지 기분이 쎄 했다. 로와 욜라는 그 시각, 내가 고통으로 바닥을 구르며 오열하다 정신을 차린 그 순간, ‘딴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욜라는 내게 등을 돌린 채 장난감 자동차를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고 로는 그런 형을 보며 서 있다가 자기 쪽을 쳐다보며 눈을 부라리는 나를 한 번 쳐다보았을 뿐이다. 엄마의 코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아이들. 나는 인생을 허투루 산 것만 같았다. 자식들이 외면하는 불쌍한 엄마가 바로 나였다. 그 가엾은 엄마는 배신감으로 부들부들 떨며 무정한 자식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야아! 야! 니들 지금 뭐하는 거야아아앜!”

욜라가 돌아보았고 로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버려진 이 땅에 아직 희망은 있는 것인가. 나는 불효막심한 자식들을 향해 이 아픈 엄마가 보이지 않냐고 호소했다. 그리하여 자식들 얼굴에 후회와 연민의 기색이 보일 때까지, 급기야 목이 컬컬해 올 때까지 십 분은 넘게 떠들었던 것 같다.

▲ 범인의 여유로운 스낵 타임. ⓒ김혜율
그래서 내게 남겨진 것은 멀쩡하다가도 그날의 박치기를 떠올리기만 하면 거짓말같이 시큰거리는 신호를 보내는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코뿐이던가.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내게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과 ‘자식이 행하는 효’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는 점에서 헛되지 않다.

나는 자식에게 크루즈 세계여행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식들이 의무감에 행하는 효도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식에게 병환으로 드러누운 어미를 위해 자신의 약지를 잘라 흘린 피를 바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식이 남의 고통에 무심하지 않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울고 있는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그 어깨를 토닥여 줄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삶을 보다 사람답게 가꾸어 가길 바란다. 제 부모의 희생이나 깊은 뜻은 미처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어린 자가 겪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며 기회가 되면 자신의 자식을 통해 반의 반 정도 알게 되면 다행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식들은 듣길 바란다. 너희가 다 큰 다음 부모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별로 없으니 그저 꿋꿋하게 살아간다면 충분하니라. 너희는 이미 엄마한테 다 주었단다. 태어나 주었고, 자꾸만 엄마라고 불러 주었고, 품에 안겨 주었고, 끊임없이 내게 웃어 주었단다. 그렇게 많은 걸 받은 엄마는 너희 크는 동안 그 사랑을 조금씩 돌려줄 거란다. 사실 엄마는 지금까지 엄마의 엄마, 아빠에게도 받기만 한 것 같은데 너희까지 곁에 있으니, 이렇게 엄마라는 사람은 받고도 또 받아 넘치는 사람인가 보다. 마지막으로 너희에게 하고픈 말은 코 박치기는 깨끗이 용서하겠으니 너희는 개의치 말고 엄마 무릎에 또 놀러 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엄마가 울 때는 진짜 아파서 우는 거니까 하던 일을 멈추고 ‘호호~’ 한 번만 해 달라는 것이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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