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연중 기획 - 교회 내 민주주의 1]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2017년 6개의 주제로 연중 기획을 진행합니다. 4월 기획의 주제는 ‘교회 내 민주주의’이며, 주교 임명 과정과 임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 편집자

기사 순서

1. 주교 임명 문제, 왜 다루나?
2. 주교 임명, 그것이 알고 싶다
3. 모든 권력은 썩는다

첫 번째 장면. 가톨릭 언론사에서 일하는 박신문(가명) 기자는 교구 차원의 큰 행사를 취재할 때마다, 교구청에서 일하는 평신도 직원, 수도자, 사제들이 바짝 긴장하고 쩔쩔매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본다.

한번은 행사장 입구에서 오랜만에 만난 취재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박 기자와 취재원을 향해 “주교님!” 하고 소리 질렀다. 입구로 걸어오고 있는 교구장 주교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길을 비키라는 뜻이었다. 깜짝 놀라 옆으로 비켜서서 길을 터준 뒤 귀빈과 담소를 나누며 입장하는 주교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박 기자는 전에도 고위공직자의 비서로 일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의전이 낯설지 않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 이 행사의 주인공은 주교 한 사람뿐인가?

두 번째 장면. 중견 사제인 김전례(가명) 신부는 최근 자신의 소속 교구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마음이 언짢다. 교구장 주교가 참사회 등 측근 사제들만 참여한 회의를 거쳐 수백억 원의 돈이 들어가는 교구 시설 개발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에 사제총회가 열려 교구장 측의 설명을 듣고 의견을 낼 기회도 있었지만, 이미 밀실에서 결정해 놓고 신부들에게 형식적으로 통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 주교가 선택한 방안이 교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 동의하기 어려워하는 사제가 김 신부뿐만 아니라 여러 명이다.

조금 전에 주교의 편지가 도착했다. 주교 자신이 제안한 방안대로 사업이 결정된 것이다. 주교는 이것이 교구 내 의견을 모은 결과라며, ‘신부님들의 기도와 협력 덕분에 잘 결정됐다’고 적었다. 그 주교는 때로는 사회와 정치권을 향한 따끔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 존경 받는 지역 원로지만, 김 신부에게는 일방주의 행정을 하는 보스일 뿐이다.

위의 두 사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가 취재 과정에서 겪고 들은 이야기를 조금 다듬은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일을 겪을 때, 비로소 교구장 주교가 교구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실감한다. 많은 신자들에게 교구장 주교는 교황 다음으로 높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고 ‘왕’이다. 교리서는 주교의 모범이 ‘착한 목자’라고 하고 ‘봉사 정신’으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하지만, 신자들이 진심으로 교구장을 봉사자라고 생각할까? 한국 천주교의 현실은 어디에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 2014년 2월 5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경촌, 정순택 보좌주교 서품식. ⓒ지금여기 자료사진

한국 천주교에서 교구장 주교는 그가 맡은 교구의 입법, 사법, 행정의 전권을 갖는다는 말을 들을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교구의 대표자인 교구장 주교는 교황이 임명하며, “그의 사목 임무 수행에 요구되는 일체의 고유한 직접적 직권”(교회법 제381조 1항)을 가진다.

게다가 교구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견제할 만한 제도나 조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교회법에 따라 교구에 설치해야 하거나 설치할 수 있는 주요한 기구들은 모두 교구장을 돕는 ‘자문 기구’ 성격이지, 교구의 정책을 의결하는 조직이 아니다. 즉, 결정권은 교구장이 갖는다.

교구 대의원회의(시노드), 사제평의회, 사목평의회는 교회법에 따라 ‘건의 투표권’만 있다. 3가지 기구 모두 교구 구성원들의 의견을 폭넓게 받아들이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 ‘건의’를 듣고 결정하는 사람은 교구장 주교다.

여기에 더해 교구장 주교는 종신제에 가까운 자리다. 75살이 된 교구장 주교는 교황에게 사퇴를 표명하도록 권고(교회법 401조)되며, 이것이 일종의 ‘임기’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만약 어느 사제가 40살에 교구장 주교가 되어 75살까지 교구를 다스린다면, 무려 35년이다. 이 때문에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편, 신자들에게 교구장 주교는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는 영적 지도자다. 신자들은 주교의 주기적인 본당 사목방문이나 견진성사, 사목교서를 통해 그의 가르침을 받고, ‘우리 교구 최고 어른’과의 유대감을 확인한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다 보니 자신이 속한 천주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신자들은 교구장 주교가 누가 되는지 촉각을 세우고 지켜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에게는 ‘기도’ 말고는 교구장 주교가 정해지는 데 영향을 줄 방법이 아무 것도 없다.

임명 과정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다. 교구장 주교에게 은퇴가 권고되는 나이가 가까워지면 신자들은 다음 교구장이 누가 될지 궁금해 하고, 교구 사정에 밝은 신자들 사이에 “주교님이 교황님께 사임 청원을 하셨다”는 소문이 돌 뿐이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교구장 주교가 임명되는지 알지 못하며, 교황청이 임명 사실을 발표하는 그날 저녁이 돼서야 신문 기사를 보고 알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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