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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프로불편러? ‘너’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우리’의 억압[지금여기 청춘 - 변지영]
변지영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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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1  14: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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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와 노력의 부족이 스트레스를 초래했을까

자신의 스트레스 지분율을 따져 본 적이 있는가? 몸이 따끔따끔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날이면 침대에 주저앉아 생각하곤 했다. 대체 내가 무엇을 이렇게 잘못했기에 이런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건지. ‘내 탓이오, 내 탓이오’를 중얼거리다가 어느 날에는 폭발해 버렸다. ‘이건 도저히 내 탓이라 할 수 없어!’

‘노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적어도 지금까지의 판단은 그렇다. 구조적 문제를 자신의 의지 혹은 노력 부족으로만 생각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이 사회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

아빠의 삶, 엄마의 삶, 대학생의 삶, 노인의 삶, 비정규직의 삶, 오너의 삶, 이 모든 삶에 배어 있는 스트레스의 원인들은 무엇이든 공적 영역에서 이야기할 수 있고 이야기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의 삶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위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치적인 것으로서 값어치가 있다. 정치의 시작은 사적 영역에서의 문제를 공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공론화’에 있기 때문이다.

불편을 나의 영역에서만 삭이고 밖에서는 웃는 얼굴을 보여 달라더라

작년 가을에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서른넷의 평범하고 전형적인 한국 여성의 이야기를 엮어 놓은 것이다. 타인의 일로서 자주 보아 온 일화들인데, 그 내면의 심리묘사와 함께 1인칭 시점으로 다가오니 억장이 무너질 것 같은 이야기다. 육아를 위해 직장을 포기한 김지영 씨는 어느 날 유모차를 끌고 가다가 천오백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사 먹는다. 그러다가 젊은 직장인들 무리가 자신을 ‘맘충’이라 일컫는 소리를 듣는다. 남편이 따박따박 가져다 주는 월급으로 편하게 살면서 커피도 사 마시고 여유를 즐기며 아이 교육에만 신경 쓰는 여자. 그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 눈물 흘린다. 지금까지의 희생이, 삶이 부정당했다. 이제는 엄마마저 사회적 낙인인 현실 앞에 ‘집 안에서’ 울고 만다.

   
▲ 여성은 임금 대비 저효율의 노동자이며 육아와 출산으로 곧 회사를 떠날 이들이기 때문에 직업 충실도가 높지 않다는 등의 프레임은 양성평등을 논의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흔한 이야기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봐도 김지영 씨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라디오 사연 같은 이야기는 일부 청취자만 들어서는 소용이 없다. 비슷한 일을 겪는 이들이 함께 목소리 내어 이야기하고, 우리가 주권을 일부 위임한 대표자들에게 개선을 요구하고, 끊임없이 불편을 일깨워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세균이 침투하면 우리 몸이 병들지 않으려고 스스로 작동하는 수많은 메커니즘을 떠올려 보자. 사회는 유기체이며, 우리도 마찬가지로 나름의 목소리를 가지고 활발히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라디오 사연이나 책으로 접하면 쉽게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느끼지만, 그 김지영 씨가 온라인 상에 댓글을 달거나 자신의 생각을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는 또 다른 낙인이 찍히고 만다. 바로 ‘프로불편러’라는 낙인이다.

편견을 깨고자 하는 노력이 프로불편러의 시덥잖은 불만이 된다

얼마 전부터 온라인에서 퍼진 ‘프로불편러’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가 사적 영역의 갈등을 공론화하는 작용을 얼마나 억압하는지 단편적으로 보여 준다. 아직 사전에 실리지 않은 이 단어를 몇몇 네티즌들이 정의했는데 아주 흥미롭다.

'프로불편러(pro+불편+er)'는 사이버 공간에서 '불편하다'는 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동조를 이끌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인 표현이 "이거 나만 불편한가요?"다. 형식적으로는 상대방에게 묻는 것 같지만, "이거 문제 있으니 함께 비판해 줘"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사회 안의 불공정, 불평등 문제를 예민하게 지각하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낙인이며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간단하게 돌려 버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출처 : 네이버 오픈 사전)

여성은 임금 대비 저효율의 노동자이기에 기업은 남성을 선호한다는 프레임. 여성은 육아와 출산으로 곧 회사를 떠날 이들이기 때문에 남성만큼 직업 충실도가 높지 않다는 프레임. 전업 주부가 된 여성은 남편 등골을 빼먹고 자신에게 명예를 가져다 줄 아이 교육에만 전념하는 맘충으로 전락한다는 프레임. 양성평등을 이야기하려고 보니 이미 견고하게 전제가 되어 버린 프레임에 부딪혀 논의를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그 프레임을 초래한 ‘불편함’들을 깨려고 보니 이제는 프로불편러라며 조롱을 받는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들이 편견이 아닌 사실이 되려면 이 요인이 반드시 유효해야 한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정말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라는 생물학적 요인이다. 정말 그럴까? 여성이 남성 대비 60퍼센트 대의 임금을 가져가는 게 ‘한국 여성의 염색체’가 열등하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이것은 사회적 성, 즉 젠더의 개념에서 접근해야 하며 그것은 공론의 장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사회적 문제임을 의미한다. 사적 영역에서 삭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여성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남성의 권리를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일을 잘 안 한다고? 그렇다면 그것이 생물학적인, 즉 귀속적 요인이 아닌 이상 원인을 밝혀야 하고 원인을 만드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93년생 변지영의 스트레스는 공론화될 가치가 있다

93년생 12학번 한국 여성 변지영은 졸업을 앞두고 유독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데, 다름 아닌 여성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이제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노동의 장에 뛰어들려고 보니, 아직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미 평가절하하는 것을 경험한다. 주로 온라인으로 뉴스를 읽다 보니 그 아래 달리는 댓글을 보면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한숨을 쉰다.

   
▲ 어떤 베스트 댓글은 "여자들은 결혼 출산 뒤에 전업주부가 가장 편하기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지난 5일에 연합뉴스에서 ‘10대 그룹 상장사 여직원 연봉 5400만 원.... 남성의 62%’라는 기사가 나왔고 포털사이트 ‘네이트’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그날의 랭킹뉴스에 올랐다. 그런데 그 기사의 베스트 댓글(다른 사람의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 즉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댓글)이 다음과 같았다. ‘유리천장은 여자들의 핑계다. 여자들은 애초에 일 욕심이 없다. 여자들은 결혼, 출산 후에는 전업주부가 가장 편하기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 경력 단절은 차별이 아니라 여자들의 선택이며, 오히려 남자들은 못하는 여자들만의 옵션이다’. 댓글은 그 자체가 의견이며, 댓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여론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임극격차에 대한 기사에 비슷한 댓글이 베스트 댓글로 수두룩하게 달리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즉, 적어도 포털사이트를 활발히 이용하는 20-30대 이용자들 중 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을 깨지 않는 한 우리는 논의조차 시작할 수가 없다. 이것이 수많은 김지영, 변지영이 이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자고 했을 때,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개인의 불편을 왜 사회의 불편인 것마냥 부풀리느냐’고 비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한국 남성이라는 요인 하나만으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징병 생활을 21개월이나 해야 하는 것도 반드시 우리가 다같이 논의해야 할 문제다. 마음을 열고 어떤 구조의 변화가 우리에게 자유와 평등을 가져올지 이야기하고 요구해야 한다. 서로를 비아냥거리고,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억압하는 문화 속에서 어떤 건설적 결과를 바랄 수 있겠는가?

대선 D-29, 우리의 김지영 씨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2012년 신입생 당시 정치학개론 수업에서 들었던 교수님의 의견이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격렬하나 동시에 가장 정치화되지 않은 문제는 바로 남녀갈등이라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점점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논의의 방향이 아주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남녀 대결구도로 귀결되고 어떤 건설적 결과도 내지 못하는 갈등 그 자체에 머물러 있다. 5년이 지난 2017년, 93년생 변지영은 25세가 되었고 곧 대학생의 신분을 뒤로하고 노동을 하는 사회 구성원이 된다. 생애 두 번째 대선을 앞두고, 네거티브 공방에 정책도 공약도 숨어 버린 현실 속에 답답함을 느끼며, 대선 후보들에게 예비노동자로서 요구한다. 앞으로 더욱 격렬해질 성별 노동 임금 격차 문제, 사회에 팽배한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초래한 수많은 김지영 씨 혹은 남성들의 고통을 반드시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 달라고. 그리고 우리는 그런 리더를 선출해 내야 한다. 한 사회의 지도자는 그 사회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말이 참이라면, 우리가 달라지지 않는 한 그런 리더는 앞으로 없을 것이다.

 
 

변지영(스텔라)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58대 의장
숙명여대 가톨릭학생회 글라라 57대 회장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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