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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방에 우리 넷이서[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64]

아이들을 잠자리에 눕혀 놓고 잠을 유도하는 시간. 꿈과 희망이 넘치는 마무리를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우리 소원 한 가지씩 빌어 보자. 누구부터 할까~”했더니 메리가 먼저 말했다.

“나는 세상에 ‘평화’가 왔으면 좋겠어.”

아닌 밤중에 웬 평화? 메리는 내 말을 잘 못 이해한 것 같다.

“음.... 메리야, 평화도 좋지만.... 지금 네가 가장 원하는 걸 말해 볼래?”

그러자 메리는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거 아니냐는 식으로 “응. 나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걸 제일 원해!” 라고 한다. 방이 어두워서 메리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메리의 실루엣을 보면서 생각했다. ‘만일 메리가 간디나 데레사 수녀처럼 살겠다고 한다면... 엄마로서 지켜보기 힘들겠지만 암, 그건 이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이니까.’ 하고 맘껏 뜬구름을 잡았다. 물론 누구나 유년기엔 다소 그럴 때가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추구해야 할 최상위 가치가 애국심 혹은 인류애라고 믿는. 그 앞에서 개인의 안녕과 영달을 바라는 건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어린 나의 소원도 ‘남북통일’ 아니면 ‘지구환경보호’였는데 결코 진심은 아니었다. 그게 그 당시 공교육이 의도 했던 바 혹은 어린이출판사의 판에 박힌 위인 선정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면 좀 분하다. 그런데 메리는 어디서 평화를 접했을까. 내가 말해 주지 않았으니 유치원에서 들었나 보다. 그런데 듣고 말지 왜 그걸 가장 원하는 것일까. 내가 메리에게 평화를 그토록 소원하게 만드는 주범인가? 혹시 메리에겐 하루하루가 전쟁과도 같은가? 아.... 골치 아픈 녀석. 마음을 쓰는 순간 그만 내 마음의 평화가 깨지려고 한다.

그건 그렇고 그 다음은 욜라. 욜라는 무슨 소원을 빌까?

욜라는 “난 메이블레이드 버스트 빨간색이랑 파란색.” 이라고 했다. 물론 여기서의 빨강과 파랑은 프랑스 국기에서 의미하는 ‘자유’와 ‘박애’가 아니라 순수 장난감의 색상을 말하는 것이다. 메리가 자신의 기도가 하늘에 가닿도록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세계 평화를 빌고 있는 사이 욜라는 생각난 김에 나 보고 버스튼지 포스튼지 하는 장난감을 사 달라고 졸라 댔다. 어림없는 소리! 난 “일단 엄마가 (사 주지는 못하지만) 기억은 해 둘게. (네가 잊어버릴 때까지)” 라고 욜라를 타일렀다. 욜라는 그 뒤로 조용해졌는데 메리 쪽이 시끄럽다. 아직까지 ‘소원’을 빌고 있다. 아까의 세계 평화는 미끼였던 듯 그 뒤로 오만 가지 소원이 계속 나오는 중이다.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았으면 좋겠고.... 그림을 잘 그렸으면 좋겠고.... 바이올린이 갖고 싶고.... 내친김에 자신의 ‘꿈’까지. 그런데 꿈도 어마하게 많다. 피아니스트, 발레리나, 화가, 디자이너, 손세차장 주인 등등. 불타고 있는 ‘야망의 세월’이 따로 없다. 나는 참을성 있게 메리의 소원 하나하나에 ‘오호!’ ‘아하!’ ‘이야!’하고 추임새를 넣어 주었다. 그러다 잠자코 있는 욜라가 생각났다. 욜라에게도 ‘꿈’을 물어 봐야지.

“욜라,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욜라는 꿈을 꾸는 듯 나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난 사람이 될 거야.”

아닌 밤중에 이건 또 뭐지? 사람이 되고 싶다니. 직업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겠다는 말 같은데?! 욜라가 다니는 유치원이 아이들 인성교육에 힘쓴다더니 그 말이 참말이었구나 하는 찰나 메리가 인정사정없이 끼어들었다.

“나 참,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경찰관! 선생님! 이런 걸 말해야지. 어우 넌 참 그런 것도 모르냐?”

이럴 때 메리는 악착같이 공을 빼앗아 약 올리며 달아나는 심술궂은 럭비 선수 같다. 하지만 곧이어 약점 잡힌 상대편 선수가 따라붙는 걸 볼 수 있다. 콧김을 씩씩 뿜으면서 몸을 날린다.

뭉게뭉게 싸움 구름 속에서 욜라가 소리쳤다.

“그냥 사람! 난 아무것도 안 되고 사람이 될 거라고!”

욜라가 변하고 있다. 묘한 도령의 기운이 감지된다. 집에서는 여전히 등짝을 후려 패도 시원치 않을 말썽쟁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의젓하기가 청학동 도령에 버금가는 것이다.

   
▲ 아이들을 잠자리에 눕혀 놓고, 꿈과 희망이 넘치는 마무리를 해 보고 싶어 소원을 한 가지씩 빌어 보자고 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며칠 전 욜라와 나는 유치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올해 6세 반으로 진급하는 욜라가 새 교실에 가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과 인사하는 사이 나는 별도의 장소에서 학부모를 위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밖에서 대기하던 아이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제 엄마 아빠를 찾아 난입하기 시작했다. 엄마 손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가자고 조르는 아이, 소리를 지르는 아이, 자꾸 들락날락대면서 시선을 끄는 아이들 천지였다. 엄마 앞에서는 긴장이 풀려 어리광이 피우고 싶을 터였다. 그런데 욜라는 어디에 있는가. 선생님을 따라 줄을 맞춰 강의장 앞자리로 이동하는 욜라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혹시 욜라가 뒤돌아보고 나를 찾을까 봐 욜라의 뒷통수를 예의주시했다. 하지만 욜라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바를 정’ 자세를 유지하며 앞만 보고 있다.

집에서는 뼈가 연골로 이루어진 것처럼 흐물거리는 녀석이 어찌 저리도 꼿꼿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지 의아했다. 잠깐 욜라가 뒤를 돌아본다. 나는 반가운 나머지 손을 흔들며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는 것도 모자라 과장된 표정을 지으면서 아는 체를 했는데 욜라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듯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욜라는 잠깐 동안 내게 ‘흐음, 엄마, 이런 게 뭐 별건가요. 난 이제 멋진 사나이가 되었어요. 그러니 엄마, 나는 이제 나의 길을 가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저 아이가 내 자식이 맞나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새로 욜라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 내게 오셔서 하신 말씀은 더욱 충격이었다.

“어머니, 오늘 아이들에게 요구르트를 한 병씩 나눠 줬는데 욜라는 요구르트를 안 먹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혼자만 요구르트를 안 먹었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오우, 요구르트 수영장에 빠져 며칠을 살래도 좋을 녀석이 요구르트를 거절하다니. 욜라는 얼마 전 내게 ‘과자 ‘따위’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왜 그런가는 묻지 않았다. 그냥 하는 소리거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과자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난 안 먹어.”라고 할 때 뭐가 있긴 있구나 했지만 유치원에 와서도 이럴 줄은 몰랐다. 그뿐 아니다. 욜라는 메리가 저녁밥을 먹은 뒤 같이 티비 만화영화를 보지 않겠느냐고 할 때도 자기는 티비를 보지 않겠다고 했다. 메리가 코웃음을 치며 그럼 넌 티비도 안 보고 뭐 할거냐고 묻자 욜라는 이렇게 말했다.

“밤엔 잠을 자고 낮엔 할 일을 해야지.”
“....”

하루는 욜라가 유치원에서 자기를 놀리는 친구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그 친구에 대해 무려 3년을 참았단다.(이제 안 지 1년 된 친구다) 나는 욜라에게 그런 경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알려 줄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해 줄 말을 벼르고 있는데 욜라가 저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이제 다 해결되었다는 듯이. 그것보다 좋은 결론은 없다는 듯이. 욜라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게 들렸다.

“음.... 안 되겠네, 안 되겠어. 결국 (그 애도) 태권도를 배워야 겠네.... 그래, 배우면 되겠네.”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악마의 구렁텅이에 빠진 그 친구의 개과천선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욜라였다.

이 일로 미루어 보아 욜라가 청학동 도령기에 진입한 건 인성교육에 혼신의 힘을 쏟는 태권도 관장님의 가르침 덕분인 게 분명하다. 욜라를 보면서 느끼는 건데 인성교육이 이래서 참 무섭다. 나는 욜라의 이런 변화를 앞으로도 적극 지지하며 그 추이를 가끔 육아일기로 보고하겠다.

싸움 뭉게구름도 걷히고 다시 각자의 잠자리로 돌아간 시간.

‘아무것도 아닌 그냥 사람’이 되고픈 욜라와 ‘야망의 평화주의자’ 메리는 그 이후 이어지는 나의 잔소리 퍼레이드- ‘10시 이전에 잠을 자야만 하는 7가지 이유’와 ‘이른 아침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채로운 여가활동’과 ‘형제 간에 우애 있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어른을 공경할 것 어쩌고저쩌고’-를 들어야 했다. 빠뜨릴 뻔했는데 내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서 잠들락 말락 하는 로도 있었다. 로는 자면서 마구 발길질을 하고 때론 주먹까지 날려서 나는 늘 급소를 가린 방어자세로 누워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자다가 맞고 아파서 깬다.)

일 끝내고 집에 오는 남편이 오늘 맛있는 간식을 사 오겠다고 했는데. 기다렸다가 뭐 사 왔는지 보고(먹지는 않고) 자야지. 불 꺼진 방에 세 아이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온다. 고로롱 고로롱 쌕쌕.... 안도감과 함께 내게도 피로가 몰려온다. 아함. 오늘은 이대로 잠들어도 좋을 것 같다.

   
▲ 어묵꼬치 먹고 있는 로, 욜라, 메리. ⓒ김혜율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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