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65]

태양의 열기가 유리 벽을 몰래 통과해 공기의 질을 나른하게 바꾸어 놓는 한낮의 시간이다. 늦겨울이 내뿜는 입김은 아무리 차갑다 해도 유리창을 뚫지는 못한다. 달리는 차 안. 로는 낮잠을 자고 나는 라디오의 볼륨을 한 단계 올렸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메리와 욜라를 마중 가는 길. 아이들은 오후 두 시에 유치원을 마치고 도시 방향으로 가는 유치원 차를 탄다. 작년 말부터 다니기 시작한 학원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는 학원이란 게 없다 보니 나는 산골짜기에서 살면서도 매일 지방 소도시 쪽으로 출근하다시피 하고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스피커 쪽에서 한동안 웅웅 대며 머물더니 어느 순간 내 귓가를 지나 곧장 심장께 가닿았다. 심장박동 수가 약간 올랐고 그러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하지만 생각뿐. 이 길로 차를 몰고 하염없이 멀리, 아니 가까운 옆 도시에 새로 생긴 빵집에라도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면 오늘 나의 일상이 얼마나 어그러져 버릴 텐가. 유치원 차에서 내린 아이들이 엄마 잃은 미아가 되어 소매로 눈물을 훔치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데에 도저히 토를 달 수가 없잖아.

▲ 고구마를 먹는 소녀로 분한 로. ⓒ김혜율
노래는 내 심장을 지나쳐 흘러가고 신호는 마침 빨강이다. 있지도 않은 머나먼 곳이니, 새로 생긴 빵집이니 하는 건 잊어버리고 길가 상점 간판이나 구경하기로 하자. 새로 생긴 조명 가게가 한낮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게 보인다. 그 옆에는 망하지 않는 게 신통한 작은 서점이, 그리고 그 옆엔 약국이 있다. 감기약을 사고 카드로 결제하면 인사를 안 받아 주는 무표정한 약사가 오늘도 데스크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겠지. 겨울옷을 50프로 세일하고 있는 옷 가게에 눈길이 머물렀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끝났고 라디오 디제이가 말했다.

“네, 그래요. 인생을 살아가려면 때로 현실을 잊는 게 필요하다고 하지요.”

응? 잠깐, 이게 무슨 말이야? 인생? 현실을 잊는다? 클래식 음악방송 디제이인 그는 첼로와 바이올린이 섞인 음성으로 계속 말했다.

“현실을 잊는 그 시간이 있기에 우리의 인생은 한결 더 풍요로워집니다.
그런데 현실을 잊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누구에게는 방금 전 음악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순간이고, 누구에게는 춤을 출 때이며, 어떤 이에게는 친구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시간일 겁니다. 음,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게 각자의 현실을 잊고 계신가요?”

컥! 디제이는 노골적으로 청취자들이 자신의 현실을 잊어버리도록 격려하고 있는 중이다. 방금 그 음악도 현실을 잊으라고 부추기는 노래였나. 그래서 현실을 잠시 잊은 내가, 어쩌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걸 꿈꿨다는 건가. 그리하여 내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내 심장은 아까의 노래를 들을 때보다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뭔가 불편해진 로. ⓒ김혜율
그래 그랬어. 아이들이랑 매일 부대끼며 지낼 때보다도 나 혼자 친구 만나 놀고 온 날 아이들이 더욱 예뻐 보였지. 나랑 남편 둘이서만 맛있는 점심을 먹은 날 저녁엔 아이들을 위해 된장국을 끓이고 고등어를 구울 때도 힘이 하나도 안 들었지. 욜라가 그것 말고 스파게티를 해 달라고 즉석에서 신청을 할 때도 까짓 거 밥도 먹고 스파게티도 먹으라며 웃으며 면을 삶았지. 오전이고 오후고 내게 틈새 시간이라도 허락되어 자그마치 30분간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엔 아직 오지 않은 내일도 겁이 나지 않았지. 영어공부 한답시고 토요일마다 세 아이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이랑 단둘이 서울에 갔다 오는 건? 그건 나에게 현실을 잊는 가장 강력한 시간임에 분명한 것 같다.

강남역 빌딩가에 영어 천재 한 분이 영어를 가르쳐 주고 계시는데 그때 내가 영어공부를 딱 두 시간만 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그 이후에 룰루랄라 생의 마지막 자유시간인 것처럼 노는 잠깐의 시간들이 아마 내가 영어공부를 계속하는 핵심이라지. 만일 그런 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매일 반복되는 고단한 일상을 멀쩡히 견딜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예전에 집을 나갔을 것이다. 아니면 정신이 나가 미치광이가 되었거나. 그저 잘 하려고 한 것뿐인데, 내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에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인생은 서서히 망가지는 중일지 모른다. (여기서 인생을 망친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가슴 뛰지 않는 현실을 살아가는 행태에 대한 모욕일 뿐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지금의 나는 한창때의 엄마. 이는 현실을 잊을 수 없게 하는 최악의 타이틀이다. 엄마로 살다 보면, 엄마가 아닐 때의 나를 멀리 강 건너 둑에 놓고 온 것 같다. 내 자신이 마냥 아득해진다. 어찌하다 보니 나도, 아이를 낳아 아기 엄마가 되었구나 했는데 그 뒤로 줄줄이 아이 둘을 더 낳았다. 이렇게 해서 그냥 엄마도 아니고 엄마*엄마*엄마 해서 ‘엄마 세 제곱’인 사람이 돼 버린 것이다. 동시에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은 내 자신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해 보이는 것들 천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거울 앞에서도 ‘엄마’인 내가 먼저 보였다. ‘엄마 아닌 나’는 엊저녁에 숨어 버렸다.

▲ 총총총 뒤를 돌아 도망가는 로. ⓒ김혜율
어릴 때 동무들과 한 소절씩 번갈아 가며 불렀던 노래를 불러 보면 당장 이 사태를 실감할 수 있다. 노래는 동무1이 먼저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노래하면 동무2가 ‘나는 김아무개~’ 하는 식으로 제 이름을 말하고, 그럼 다시 동무1이 받아서 ‘그 이름 아름답구나.’하며 끝을 맺는다. 깔깔 대고 웃으며 서로 이름을 주고받다 보면 정말로 내가, 친구가 아름답게 보이는 노래다. 그런데 ‘엄마 세 제곱’인 신분으로는 그것도 쉽지 않았다. 동무2 파트에서 자기 이름을 말하는 대신에 ‘나는~ 아무개 엄마~’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게 되고 말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방금 전 라디오 디제이가 뭐라 그랬나. 인생을 더욱 잘 살아가기 위해 때로 현실을 잊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사심 가득하게 그 말을 진리로 여기게 되었다. 아우, 젠장. 이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육아휴직 중인 내 친구는 그걸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달은 것 같다. 내게 얼마 전 보내온 문자에서 그랬다.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애새끼 똥기저귀 가는 데 다 써 버리고 싶지 않”다고. “내 시간을 갖고 싶다.”고. 그래, 친구야. 네가 옳다. 너를 무조건 응원하고 싶어.

신호는 초록색으로 바뀌었고 나는 신나게 앞으로 나아간다. 메리 엄마이자 욜라 엄마가 로 엄마인 상태로 달린다. 하지만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심장을 억누르지 않으면서. 그리하여 내친김에 당장 내일, 현실을 잊어 보기로 마음먹는다. 현실을 잊고 파마나 하러 가기로 한다. (놀라지 마라. 아기 엄마란 현실을 잊어야 파마도 하는 법이다.) 나는 괜히 머리를 볶고 미용실에 돈을 뜯기겠지만 미용실 벽에 붙은 거울 속에서 잠시나마 무엇인가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무엇인가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그러면서 육아휴직 5년차에 접어드는 워킹맘이라는 복잡한 신분을 떠안고 있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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