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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 표본집계 결과 - ‘천주교’ 분석 2[박문수가 본 교회와 사회 - 49]

1. 추정 이탈자 규모

천주교에서 정확한 이탈자 규모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 해서 간접 추정만 가능하다.

천주교에서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매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천주교 통계’를 내고 있다. 주교회의가 정한 양식에 따라 각 본당에서 작성한 데이터를 교구에서 1차 종합하고, 다시 이를 주교회의에 보내어 2차 종합하는 방식이다. 과거 이 통계에서 이탈자는 ‘냉담자, 행방(주소)불명자’로 분류하였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가 영구 이탈하였다고 가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행정 착오가 일어나 발생하는 허수, 신자들이 잠시 쉬었다 복귀하는 경우 등을 담아낼 수 없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주교회의에서 전국 본당의 협조를 얻어 일시에 전수조사하는 것인데, 봉사자 찾기가 쉽지 않으니 실현 가능성이 작다. 이 때문에 현재 통계에서는 새 영세자 수, 견진성사자 수, 혼인성사자 수 등과 같이 근거서류를 남겨 놓아야 하는 정보들만 신뢰할 수 있다.

그 근거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2016년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인구통계’(12월 31일 기준)에서 ‘100세 이상’ 인구는 1만 7562명(남자 4137명, 여자 1만 3425명)이었다. 그런데 ‘2015년 한국 천주교 통계’에서 ‘100세 이상’ 인구는 1만 2923명(남자 4447명, 여자 8476명)이었다. ‘100세 이상’ 천주교 신자 인구가 주민등록 통계에 나타난 남한 전체의 100세 이상 인구의 73.6퍼센트였다.

주민등록 인구통계에서 사망자 숫자는 강제 신고사항이라 틀릴 확률이 매우 낮다. 이 때문에 통계에 나타난 숫자가 거의 현실과 일치한다. 그러나 천주교 통계는 고령의 ‘나 홀로’ 신자가 냉담하다 사망하였을 경우, 그리고 이 신자가 주소불명일 경우 이 신자의 사망 여부를 본당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이탈자들은 정확한 통계를 내 달라고 본당에 신고하러 오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통계청 인구 총조사 결과가 반가웠다. 이 조사에서는 영세를 하고 교적이 있는 경우라도 이미 개종했거나 다시 돌아올 마음이 없으면 ‘천주교 신자’라 답하지 않아서다. 따라서 이들의 규모에다 방금 앞에 예를 든 냉담 중 사망 신자와 범죄를 저지르고 장기간 수감되어 있는 신자, 유학, 이민, 기타 사유 등으로 거주지를 장기간 떠나 있으나 신앙생활을 재개할 의사가 전혀 없는 신자 등을 합하면 이탈자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인구 총조사에 나타난 이탈자 수보다 더 많은 숫자가 이탈했을 가능성이 있다. 2015년 인구 총조사 결과를 신뢰한다면 ‘2015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나타난 총신자 수에서 인구 총조사에 나타난 신자 수를 뺀 비율과 추가로 2-3퍼센트 정도가 이 조사에서도 파악할 수 없는 이탈자 규모라 추정하면 교적 신자 수의 대략 33-34퍼센트 정도가 이탈자일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 숫자를 제외한 교적 신자 수의 66-67퍼센트 가운데, 판공성사 참여비율 31퍼센트를 뺀 35-36퍼센트 가운데도 이탈자가 숨어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보면 교세통계에서 집계하는 신자 수 가운데 최소 40퍼센트에서 최대 50퍼센트까지가 이탈자 규모일 것이다.

   
▲ 가톨릭 신자는 1년에 2번 있는 판공성사표를 3년 이상 한 번도 내지 않으면 냉담자로 분류된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2. 냉담 원인 분석

이탈자는 교회를 완전히 떠난 경우다. 냉담자는 이탈자와 소속을 포기하지 않고 복귀를 희망하는 신자들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두 집단 간에는 포괄하는 범위에서 차이가 난다. 그동안 이탈자 조사는 교회 안에서 시행된 적이 없고, 냉담자 조사만 일부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실시하였을 뿐이다.

전국 단위 조사는 ‘가톨릭신문사 창간 80주년 기념 신자의식조사’(2006년)가 유일하다. 창간 90주년 조사 결과가 곧 나올 예정이고, 조사 항목수도 늘었으니 최근 변화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80주년 보고서에서 ‘냉담 원인’에 대해 응답자들이 답한 결과를 확인해 본다. 이 조사에서는 ‘냉담 원인 1순위’에 ‘생계나 학업’이 42.4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앙에 대한 회의’ 12.1퍼센트, ‘기타’ 8.9퍼센트, ‘고해성사의 부담’ 7.4퍼센트, ‘가정 내 종교 갈등’ 5.8퍼센트, ‘성직자 또는 수도자에 대한 실망과 취미생활’ 각각 4.7퍼센트, ‘자녀양육 혹은 자녀문제’ 4.3퍼센트, ‘부부간 갈등’과 ‘본당 교우와의 갈등’ 각각 3.5퍼센트, ‘경제적 부담’ 2.7퍼센트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205쪽 참조)

그리고 이 조사에 응한 냉담 신자들 가운데 상당 비율이 신앙생활을 재개할 의사가 있다고 하였다. 결과를 옮겨본다.

“향후 신앙생활 재개 의사에 대하여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가 55.7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곧 재개할 것이다’ 30.3퍼센트, ‘혼자서 신앙생활 하겠다’와 ‘모든 종교를 포기할 것이다’가 각각 5.2퍼센트, ‘기타’ 2.6퍼센트, ‘개종할 것이다’ 1.1퍼센트 순으로 나타났다.

‘모든 종교를 포기할 것이다’와 ‘개종할 것이다’를 합한 비율 6.3퍼센트는 가톨릭 신앙을 포기할 의사를 확고하게,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와 ‘혼자서 신앙생활 하겠다’를 합한 60.9퍼센트는 유보적 태도를 밝힌 것이다. (....) 유보 의사 안에도 생각의 스펙트럼이 다양할 것이므로 ‘포기에 가까운 유보 의사’를 표현할 확률을 최대 1/3 정도로 보면 현재 ‘소극적 냉담자’(유보 의사+회두 의사) 가운데 적어도 네 명 중 세 명 이상은 신앙 재개 의사를 가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211쪽, 일부 문장은 필자가 수정)

이 조사 결과는 인구 총조사에서도 자신이 신자임을 밝힐 가능성이 큰 신자집단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신앙생활 재개 의사가 높다. 자신이 신자임을 밝힐 가능성이 낮은 집단을 대상으로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훨씬 더 깊은 원인이 드러났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개인적으로 실시한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냉담이나 이탈 원인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대체로 복합적이고 중층적이었다. 그래서 이탈 원인에 접근하려면 이탈자에 가장 가까운 냉담 원인 분석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순서다.

3. 이탈 직전 단계가 냉담이다.

냉담은 바로 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신앙생활에 복귀할 의사가 있는 ‘소극적 냉담’에서부터 개종과 종교 포기 의사가 분명한 ‘적극 냉담’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신자들의 입교 동기’는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에서 빠트리지 않는 변수(variable)다. 가장 최근인 2013년에 비교적 큰 규모(교구민의 1/3 표본조사)로 실시한 ‘천주교 의정부교구 설립 10주년 기념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본다.(2013년)

이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천주교에 입교하는 동기’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25.8퍼센트)를 첫째 이유로 들었고, 이어 ‘가족 친지의 권유로’ 21.1퍼센트, ‘유아 영세’ 17.1퍼센트, ‘신자와 결혼하기 위해’ 6.1퍼센트, ‘신자의 권유로’ 6퍼센트, ‘가톨릭 신자의 모범적 생활에 감명을 받아서’ 5.8퍼센트, ‘가톨릭의 전례가 좋아서’ 4.8퍼센트, ‘구원을 얻기 위해’ 4.6퍼센트, ‘기타’ 3.4퍼센트, ‘천주교회의 사회활동을 보고’ 2.6퍼센트, ‘가톨릭 교리를 알기 위해’ 2퍼센트,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어서’ 0.6퍼센트 순으로 나타났다.

4. 그런데 냉담과 이탈은 일차적으로 이 동기가 약해지는 데서 시작한다.

동기 가운데 하나인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를 예로 들어 본다. 만일 이 점이 일차 동기였는데 신앙생활을 하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는 하였으되 그리 충분하지 않거나 아예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경험을 자주 하면 오래지 않아 동기가 약해진다.

마음의 평화를 깨는 원인은 좁게는 자신, 동료 신자, 사제, 수도자에서부터, 넓게는 교회의 전체적 이미지나 특정 실천이 반복됨으로써 신자와 비신자에게 형성되는 부정적(또는 자기 생각과 충돌하는) 이미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만일 이런 생각과 경험을 하더라도 교회 내부에 이 신자를 지지하는 집단이 강력하면 이탈이 억제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탈을 막지 못한다.

5. 그런데 천주교는 입교 과정은 길고 어려운데 정작 입교 후엔 관리가 안 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입교과정이 짧지만 입교 후 관리를 잘하는 개신교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신자들의 다수가 이러한 평가에 동의하는 실정이니 원인을 교리에서만 찾을 수 없다. 신자관리체계에서도 찾아야 한다.

이백 년 이상 걸려 형성된 교회 문화도 새 신자들이 바꾸기엔 한계가 뚜렷하다. 이외에도 새 신자들이 적응할 수 없는 장벽들이 교회 안에 적지 않다. 그런데도 새 신자들이 교회에 머무는 일을 이러한 구조적 장벽들이 가하는 압력을 견뎌 내고서라도 얻어야만 하는 가치라 생각하면 괜찮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떠날 것이다.

   
▲ 신자들이 답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모습. ⓒ배선영 기자

6. ‘마음의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측면들은 신앙생활 전체와 연결돼 있다.

특정한 한두 가지 사건들이나 계기 때문에 냉담과 이탈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원인은 개인차가 있지만 대부분 여러 원인에 직간접으로 반복 노출될 때 냉담과 이탈이 일어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다음의 원인도 상호 중층, 복합적으로 연결돼 냉담과 이탈에 영향을 준다. ‘신앙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성직자, 수도자에게 실망해서’, ‘생계(직장)나 학업을 위해’, ‘본당 교우와의 갈등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아서’, ‘금전적 부담(예, 각종 봉헌금) 때문에’, ‘그냥 귀찮아서’, ‘고해성사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교회의 모습이 기대했던 것과 달라서’, ‘내가 원해서 입교한 것이 아니어서’, ‘교회의 사회참여활동이 못마땅해서(혹은 반대의 경우인 ‘사회참여를 안 해서’)’, ‘결혼 관련 일(혼인, 이혼, 재혼) 때문에’, ‘지킬 규율이 많고 가르침대로 살기 어려워서’, ‘교리나 가르침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서’, ‘교회의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 ‘사회적 죄를 지어 평판이 두려워서’, ‘교회의 본질과 거리가 멀게 사는 것 같아서’, ‘가톨릭은 특별할 줄 알았는데 다른 종교와 차이를 못 느껴서’, ‘시대 적응력이 떨어져서’, ‘공고한 성직주의와 권위주의에 실망해서’ 등이다.

7. 나의 체험으로는 사람마다 원인이 다 달랐고, 그 종류도 한두 가지에 국한되지 않았다.

처음 하는 표현은 앞에서 하나 또는 둘 셋을 들었지만 한 시간 정도 인터뷰가 진행되면 훨씬 많은 원인이 반복적으로 영향을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이 문제들은 과거엔 없었는데 최근에 생겼는가? 내가 보기엔 아니다. 과거에도 이 문제들은 있었다. 가톨릭교회사 안에서 이 문제들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그런데도 어떤 시기에는 신자들이 확고하게 소속감을 유지하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신앙 활동에 참여한다. 반면 어떤 시기에는 이런 요소들의 영향력이 크지 않음에도 신자들이 쉽게 소속을 포기하거나 신앙 활동에 소극적이 된다. 왜 그럴까? 아마도 이유는 그 환경에 있는 신자 개인 또는 제도의 관리자들이 외부환경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 그에 대응하였는지에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8. 이 관점에서 지난 삼십 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에 일어난 변화에 주목하게 된다.

한 가지 예로, 1980년대 중반에는 이탈자 비율이 교적 신자 수의 5퍼센트로 적었다. 그러다 최근으로 올수록 이탈자 비율이 급속하게 늘었다. 특히 중산층화 담론에서 비판하는 교회의 모습들이 뚜렷해지는 1990년대 말을 지나면서 이탈 비율이 급증하였다.

급속한 신자 인구 증가, 이로 인한 교회의 대형화, 신자 계층구조의 변화, 그로 인한 구 교우 문화의 쇠퇴와 중산층 중심의 교회 문화 형성, 교회 내부의 권력관계 변화, 신자 증가에 반비례한 교회의 사회적 역할 등이 지난 기간 나타난 이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현상이었다.

결국 교회의 압축 성장과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응 실패, 세계화된 한국과 이미 범세계적이나 세계화와는 거리가 먼 교회운영 간의 충돌이 신자들이 교회를 통해 얻고 싶은 답을 제공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결과는 당연하다. 이 정도 충격에도 지금의 숫자를 유지하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박문수(프란치스코)

신학자, <가톨릭평론> 편집위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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