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2016년 영화계 결산과 2017년 영화계 전망

우리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많은 과제들을 안고서 2017년을 맞이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낡은 것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많은 아픔이 뒤따르지만, 새벽을 맞이하기까지 짙은 어둠을 경험해야 한다는 자연의 진리를 되새기며 이 고통의 시기를 견디고 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자면, 역사적으로 사회가 위기에 빠질 때 영화계는 흥했다. 유럽에서는 1차 대전을 즈음하여 무성영화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1930년대 대공황기에 할리우드 영화가 활짝 꽃피웠다. 우리의 사례와 다르지 않아서, 1996년 IMF 체제와 함께 한국영화는 신르네상스를 맞으며 국경을 벗어나 아시아에서 ‘한류’라는 새로운 문화 상품을 통해 확장되었다.

영화는 단순히 오락물이거나 테크놀로지 발전의 소산물로만 볼 수는 없다. 그 위에 한 나라의 경제적 발전 정도와 규모,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 가치관과 예술적 특수성 등 많은 것을 총체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 영화다. 영화는 동시대 사회의 반영이자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집단 무의식의 반영체이면서 다수의 소망 충족 기제다. 따라서 한 사회의 영화, 특히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영화는 그 사회를 읽을 수 있는 열쇠가 된다.

▲ '부산행', 연상호, 2016. (이미지 제공 = NEW)
그 어느 때보다도 충격과 변화가 함께한 2016년 한 해 한국영화계는 풍성했다. 바야흐로 시민의 주도권이 공고해지는 결정적 전환기인 지금, 2016년 영화계의 키워드를 살펴보고 2017년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2015년 한국의 영화계를 주도했던 키워드가 ‘부성애, 복고, 가족’이었다면, 2016년 한국 영화계의 키워드로 ‘여성, 역사, 사회비판’을 들고 싶다.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처럼 사회반영성과 징후적 예지력이 빛나는 장르영화가 대거 등장하였다.

2016년 유일한 천만 관객 영화이며 최고 흥행영화인 ‘부산행’은 좀비영화라는 B급 장르를 통해 무한 경쟁사회의 비인간성과 국가의 무능함을 꼬집는다. 이와 같은 계열의 사회비판 의식을 가진 영화로 ‘터널’과 ‘판도라’, ‘마스터’, ‘아수라’ 등이 있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또한 현재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는, 현 정부에 의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 등 집단적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굵직한 사건들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복잡한 상징들을 활용하고 있는 ‘곡성’ 역시 이 계열의 영화다.

위 영화들은 오랫동안 쌓인 적폐, 불의에 눈감는 사회, 무능한 국가 시스템 등에 맞서서 생존해야 하는 개인의 분투를 그린다. 이렇듯 사회에 대한 예리한 비판 의식을 가지며, 동시에 장르라는 틀 안에서 감독 개인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 준 영화들이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2016년 가장 논쟁적인 단어가 된 ‘여성혐오’를 놓고 페미니즘 논쟁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와 함께 여성 이슈를 담은 영화들이 관객의 관심을 받았다. 해외에서의 호평과 동시에 국내 관객에게서도 사랑받은 ‘아가씨’를 필두로, 여성감독의 영화들인 ‘비밀은 없다’, ‘미씽: 사라진 여자’, ‘우리들’이 여성 주체의 시각에서 젠더 이슈를 부각시킨 작품이다. 또한 여성스타의 반영적 재현을 통해 결혼, 출산, 육아 문제를 되짚는 코미디 ‘굿바이 싱글’도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역사,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특히 2016년 관객의 커다란 사랑을 받았는데, 이는 국정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행한 ‘역사 바로 보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무수한 문제가 친일파 청산의 실패 및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집단적 자각은 영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밀정’, ‘덕혜옹주’, ‘귀향’, ‘동주’ 등의 영화는 흥행적으로 크게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마냥 진지한 시각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역사가 훌륭한 예술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무능함을 체험하고 있는 현실은 일제강점기를 소환하게 만들었다.

▲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2016. (포스터 제공 = 정민아)
‘4등’, ‘죽여주는 여자’, ‘우리 손자 베스트’ 등 어린이와 노인,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주인공인 비주류영화는 신자유주의의 경쟁 체제와 사회 복지 시스템의 미비가 불러오는 개인의 불행 등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2016년 한국영화는 훌륭한 장르영화와 훌륭한 비주류영화의 조화를 통해 풍요로웠고, 볼거리,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외국영화의 경우, 슈퍼히어로 영화의 젠더, 인종, 문화적 진화를 한 편으로, 그리고 신자유주의 슈퍼모더니즘 시대에 더 척박하진 양극화 상황을 빗대는 인디영화들이 구축한 또 다른 한 편을 즐겁게 목격할 수 있었다.

현재 극장가에는 지상 최대의 경제사기를 그리는 ‘마스터’, 스타워즈 팬들을 즐겁게 해 주는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오디션과 경제적 불평등을 연결한 감동적인 애니메이션 ‘씽’, 고전 뮤지컬의 향수를 활용한 ‘라라랜드’,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에코 블록버스터 ‘판도라’가 흥행순위 상위권을 점하고 있다. 관객은 현재 한국영화를 통해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외국영화를 통해서 영화 관람의 순수한 즐거움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으며 새로운 체제가 등장할 2017년은 또 어떤 영화들이 관객을 즐겁게 해 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베테랑’, ‘내부자들’, ‘아수라’ 등의 정치 스릴러가 대중적, 비평적 성공을 거듭하여 한국영화의 대표 장르로서 정점을 찍고 있다는 느낌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사이트의 2017년 한국영화 제작 상황판을 살펴보면 정치 스릴러 제작 경향이 여전히 주류를 차지한다. 21세기 들어 한국영화의 중심을 남성스타들이 확고히 차지하고 있는 현재, 남성 투 탑 캐릭터의 조합이 두드러지는 브로맨스 플롯은 정치 스릴러 장르와 공고하게 결합되고 있다.

남북 형사들의 공조수사를 다룬 현빈, 유해진, 김주혁 주연의 액션영화 ‘공조’(김성훈), 조인성, 정우성 주연의 정치 스릴러 ‘더 킹’(한재림), 설경구, 임시완 주연의 액션 누아르 ‘불한당’(변성훈), 김수현, 성동일 주연의 액션 누아르 ‘리얼’(이사랑), 류승룡, 장동건 주연의 스릴러 ‘7년의 밤’(추창민), 장동건, 김명민, 이종석 주연으로 북한의 VIP의 살인과 비밀공작원, 국정원과 특별수사팀이 공조하여 활약하는 ‘V.I.P.’(박훈정)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치 스릴러 장르에서 강한 내공을 입증한 ‘내부자들’의 추창민 감독과 ‘신세계’의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 기다려진다.

▲ '군함도', 류승완 감독, 2017 개봉 예정작.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그러나 현실 정치가 더 복잡하고 반전을 거듭하며 막장스러운 가운데, 영화가 이보다 더한 자극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러한 경향 가운데, 여성 캐릭터가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영화가 드물다는 점이 아쉽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영화로, 몇 주 전 타계한 홍기선 감독의 차기작이자 김상경, 김옥빈 주연의 군 내부비리를 소재로 하는 ‘일급기밀’(홍기선), 이병헌, 공효진 주연의 미스터리 ‘싱글라이더’(이주영), 김혜수, 이선균 주연의 범죄 액션 누아르 ‘소중한 여인’(이안규)이 있다. 브로맨스 스릴러 영화가 한국 고예산 영화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중에 여배우가 플롯을 끌어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례가 드물어 위 영화들을 특히 눈여겨보게 된다.

2017년에도 영화가 역사를 콘텐츠로 활용하는 경향은 지속될 것 같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가까운 과거를 다루는 시대극 영화가 거장 감독들의 손에 의해 제작된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문제를 다루는 류승완 감독,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주연의 ‘군함도’, 광주민주화운동 시기 택시 운전사의 활약상을 그리는 장훈 감독, 송강호, 류준열 주연의 ‘택시운전사’가 특히 주목된다. 임금과 사관이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조선시대 배경의 추리 활극으로 이선균, 안재홍, 주진모 주연의 ‘임금님의 사건수첩’(문현성),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주연의 조선시대 배경의 ‘남한산성’(황동혁), 선조와 광해 시대를 다루는 이정재, 여진구 주연의 ‘대립군’(정윤철) 등이 있다.

웹툰 원작을 영화화한 대작들도 보이는데,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주연의 저승세계를 다루는 판타지 ‘신과 함께’(김용화), 제피가루의 웹툰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가 원작인 백윤식, 성동일 주연의 ‘아리동’(김홍선)이 대표적이다.

2017년에는 사회의 위기를 열정적인 참여로 뛰어넘는 시민의 성공 스토리가 완성되길 희망하며, 영화가 개인의 고난의 삶 가운데 작은 여유와 즐거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한신대 겸임교수.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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