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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낯설고도 익숙한 그녀 '죽여주는 여자'[주말영화]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2016
정민아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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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7  17: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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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생, 38따라지 양미숙이 쏘~영(소영)이 되었다. 가정부, 공순이에서 기지촌 여성을 거쳐 지금은 탑골공원에서 영업(?)을 펼치는 ‘박카스 할머니’. 전쟁에서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넘어 신자유주의 시대인 지금까지 어떻게든 살아왔다. 그녀는 성 노동자다. 

   
▲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2016. (포스터 제공 = 정민아)

그녀가 하는 일은 공원에 서서 지나가는 잠재 고객에게 “나랑 연애할래요? 잘 해 드릴게.”라거나 “박카스 한 병 드실래요?”라고 미끼를 던진 뒤, 싸구려 모텔로 들어가 정성스럽게 서비스를 하고 푼돈을 손에 쥐는 일이다. 낡은 양옥집들이 다닥다닥 들어선 종로 어딘가의 작은 방이 그녀의 거처다. 밥을 챙겨 주며 돌보는 길고양이, 집주인인 트랜스젠더 티나, 옆방의 장애인 청년 프리랜서 노동자 도훈이가 그녀의 이웃이다. 어느 날 소영은 성병 치료를 위해 들른 병원 앞에서 코피노 소년 민호를 우연히 만나고 소년을 돌보게 된다.

악착같이 성실하게 살았지만 남은 것은 별로 없다. 빈병이나 폐휴지를 줍지 않고 여전히 영업을 뛸 수 있는 육체와 까만 혼혈인 병사를 보면 밀려오는 막연한 죄책감이다. 그녀의 삶은 고백하지 않아도 그려지는, 광폭의 시대를 견뎌 낸 흔한 한 여성의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빈민이고, 노인이고, 여성이고, 혼자다. 이 사회의 시스템의 부재를 온몸으로 견뎌 내야 할 완벽한 약자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하다. ‘임질 걸린 양공주 출신’이라고 쏘아붙이는 영업 경쟁자에게 ‘퍽큐’를 날리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접근하는 청년에게 “할머니라고 하지 마세요. 듣는 할머니 기분 나빠요”라고 톡 쏘며, 어쩌다 들어온 돈이 있으면 이웃과 함께 다 써버린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 그러다가 특별한 누군가의 죽음이 그녀의 일상으로 들어온다.

소영은 단골 고객이었던 연금 받는 멋쟁이 송 노인으로부터 제발 죽여 달라는 부탁을 듣고 돌아서지 못해 갈등한다. 그리고 점점 대담해진다. “우리 아버님 돈 없어요”라며 접근을 달가워하지 않는 남자 노인의 자녀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다.

   
▲ 어느 날 소영은 병원 앞에서 코피노 소년 민호를 우연히 만나고 소년을 돌보게 된다. (이미지 제공 = 정민아)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다. 낡은 양옥집과 좁은 골목, 전선줄이 다 드러난 전신주로 뒤엉킨, 서울 아래 어느 동네는 예전부터 봐 왔던 익숙한 공간이다. 대단지 아파트나 빌라촌에서의 삶이 평균적인 삶의 모습이 되어 버린 현실에서 그곳은 오래된 낯선 공간이다. 그곳에 무뚝뚝한 얼굴로 서 있는, 싸구려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할머니의 모습은 주변에 잘 눈에 띠지 않지만 다시 둘러보면 꽤나 익숙한 모습이다.

이곳에는 타자들이 살기 위해 찾아온다. 영화는 핏줄로 맺어진 혈연 가족의 이상이 더 이상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 준다. 서로 과거는 묻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 모습 그대로를 존중한다. 누가 누구와 성관계를 맺든, 누가 누굴 데려오든, 참견하지 않고 인정해 주는 쿨한 관계다.

아름답지는 않아도 삶의 진정성을 가진 소영의 얼굴은 많은 것을 내포한다. 그녀의 가녀린 육체가 견뎌야 했던 지난하게 앞만 바라보며 속도를 내었던 긴 세월, 그 뒤에도 남은 것은 별로 없어 여전히 비루하게 살아가야 하는 하층민의 삶은 이 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문제적인지를 보여 준다. 인간이라면 젊으나 늙으나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성적 욕망은 오직 젊은이들만 발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평하지 못한 세상에서 나이 든 이들의 관계는 돈에 대한 욕망으로 오인받는다.

   
▲ 소영은 이제 누군가의 품위 있는 죽음을 도와줘야 한다. (이미지 제공 = 정민아)

사소하게 던지는 영화 속 대사들은 현실의 민낯을 그대로 비치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성적 기술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고 늙은 노인도 만족시켰던 한 할머니가 이제는 누군가의 품위 있는 죽음을 도와준다는 상황은 깊은 슬픔을 남긴다. 길고양이를 거둬 먹이고 오갈 데 없는 코피노 소년을 돌보듯이, 병마 앞에서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누군가를 돕지만 그녀의 남은 삶은 곧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전쟁고아로 살아남은 그녀가 존재했었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는 퉁명스러운 방식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화두를 던진다. 품위와 자존감으로 빛나는 한 가난하고 거친 여자가 거기에 살고 있었다.

 
 

정민아(카타리나)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한신대 겸임교수.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출신.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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