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2016.

▲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2016. (포스터 제공 = 영화사 진진)
영국 노인 다니엘은 손재주가 좋은 독거노인이다. 그는 인터넷을 못 해 실업급여 신청도 못 하는 딱한 처지지만 자존심이 강하다. 그래서 개똥을 치우지 않는 이웃을 참지 못하며, 또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난해도 집안을 예쁘게 꾸미는 것이 그의 자존심이며, 자신의 처지가 힘들어도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그의 자존심이다. 평생을 열심히 일했다. 이제 아파서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 관공서를 찾지만, 온통 그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만 자꾸 일어난다.

그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야!”라는 외침에는 자존심이 온통 실려 있다. 그는 시민이다. 우리 모두는 다니엘 블레이크다. 시민은 의무를 다하고 그에 따라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자다.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시민 다니엘 블레이크는 당당하다. 그러니 복지혜택인 실업급여를 당연히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그에게 비굴함을 요구한다.

‘복지는 게으름의 원인’이라는 우리나라의 얼빠진 특정 세력들과 같은 자들이 선진국에도 있어서 그의 당연한 권리는 관료들의 답답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그것은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는가, 컴퓨터로 깔끔하게 이력서를 쓰는 강좌를 듣는가, 아픈데도 형식적으로 이력서를 넣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무신경한 의사의 진단에 절대적 권한을 부여하는가 같은 것들이다.

운이 없게도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 모든 기준에 맞지 않아 깨끗하게 실업급여를 거절당한다. 어느 날 자신보다 딱한 처지에 놓인 싱글 맘 케이티와 어린 남매를 만나 작은 도움을 주게 되고, 그는 가족의 위안을 얻는다. 그리하여 두 가족은 서로 의지하게 된다. 작은 기쁨이 영화에 넘친다. 깨끗하게 집안을 청소하는 것이 케이티의 자존심이며, 떨어진 신발 밑창 때문에 아이들의 놀림을 당해도 책을 읽는 것이 어린 소녀의 자존심이다. 가난한 환경 때문에 마음마저 아프게 되었지만 이웃 할아버지를 염려하는 것이 남자아이의 자존심이다.

▲ 자신보다 딱한 처지에 놓인 싱글 맘 케이티와 어린 남매를 만나 서로 의지하게 된다. (이미지 제공 = 영화사 진진)

열심히 살고 있기에 동정 받지 않아야 할 시민의 자존심을 뭉개는 비인간적인 관료 시스템은 저 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대다수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점점 더 비인간화되며, 점점 더 비굴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우산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문제다. 이 영화는 복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보편적 문제를 요란하지 않게 하나하나 펼쳐 보인다. 그 가운데 아픔과 유머, 그리고 뭉클한 감동이 하나씩 얼굴을 내민다.

과연 켄 로치다. 그는 ‘블루칼라의 시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영국을 대표하는 사회주의파 감독이다. 신자유주의의 대표 정책인 영국의 대처리즘을 끊임없이 비판하며, 노숙자, 노동자, 실직자들을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그의 영화에 흔히 등장했던 1980년대 직장을 잃어버린 광산촌 노동자처럼 수십 년이 지났지만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현실은 여전하다.

▲ 가난해도 집안을 예쁘게 꾸미는 것이 그의 자존심이다. (이미지 제공 = 영화사 진진)

켄 로치 감독이 정치적으로 잔인한 상황을 리얼리즘 스타일로 돌직구 비판을 하기 때문에, 그의 영화가 무거울 것이라며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여느 영국 사회주의파 영화들처럼 그의 영화에도 특유의 영국식 유머가 곳곳에 배치된다. 거대하게 선동하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카메라는 그들의 일상을 신선하게 담아낸다. 영화에는 영국 시민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거대하게 밀려오는 통증과 동시에 감동, 그리고 자각,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화 한 편이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도구임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올해 80살, 그러나 여전히 청년의 이상을 가진 켄 로치는 이 영화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에 이어 두 번째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신자유주의의 결과, 이기적이고 우경화된 사회, 그리고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며 이웃과 연대하는 ‘시민’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다. 나는 케이티다. 분명,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한신대 겸임교수.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