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램스', 드리머 해커나르손, 2016.

▲ '램스', 드리머 해커나르손, 2016. (포스터 제공 = 인디플러그)
인구 33만 명의 북유럽의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 하면 얼음으로 뒤덮은 곳이라는 인상 외에 떠오르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겐 낯선 나라다. 1년 내내 겨울이어서 황량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여느 북유럽 국가들처럼 복지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으며 1인당 GDP가 5만 달러가 넘는 부유한 나라다. 인구가 적은 나라여서 그런지 1년에 고작 10편 정도의 영화를 만든다. 그런데 아이슬란드 영화의 힘이 만만치 않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램스’는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고, 전 세계 영화제에서 20여 개의 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는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설원이 펼쳐진 아름답고 평화로운 아이슬란드의 시골 마을에서 개최된 우수 양 선발대회로 시작한다. 애지중지 키우던 숫양과 대회에 나선 굼미는 2등을 하고, 아슬아슬한 차이로 이웃 키디의 양이 1등을 한다. 그러나 굼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1등을 못했다는 패배감 이상의 어떤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웃 주민인 키디와 굼미는 40년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는 형제 사이이기 때문이다.

▲ '램스'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 인디플러그)

자연 풍광은 대단하지만, 실제 녹지와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은 아이슬란드에서 양은 가축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양은 아이슬란드인에게 생활의 근간이며, 자식 같은 존재이고, 또한 정체성이기도 하다. 대회 때문에 속이 상한 굼미는 키디의 양을 자세히 살펴보고, 양이 치명적인 전염병인 스크래피에 감염된 것을 발견한다. 곧 이 마을 전체의 양을 모조리 도살해야 할 위기에 빠진다.

성질 나쁜 형 키미와 부지런하고 이성적인 동생 굼미는 다른 선택을 한다. 굼미는 자신의 손으로 양들을 죽이고, 키미는 끝까지 저항하지만 정부의 강압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굼미로 인해 소중한 양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키미는 틈나는 대로 굼미를 습격한다. 서로 죽일 듯이 달려드는 형제는 애처롭지만 때론 유머를 만들어 낸다.

▲ '램스'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 인디플러그)

두 사람이 왜 이 지경으로 고집불통이 되었는지 영화는 자세하게 보여 주지 않는다. 다만 아버지가 유산을 둘째에게 모두 남겨주었다는 단서로 보아, 아버지와 첫째 사이의 갈등이 형제 간의 갈등으로 이어졌으며, 그것이 땅을 둘러싼 소유권 문제로까지 이어졌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가족도 없이 홀로 양들과 살아가는 늙은 형제에게 같은 혈통을 가진 양들은 가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양들이 사라지자 형제만 남아서 서로 더 고통을 주기 위해 경쟁한다.

서로 대화가 없는 형제이기에 영화 전체에 대사가 거의 없다. 대신 아이슬란드 시골 마을을 보여 주는 거대한 풍광, 거친 날씨, 인물들의 행동, 소품 등이 이들의 변화된 심경을 표현한다. 동생이 아픈 형을 대신해 농장을 정리할 때 발견하는, 삼부자의 어린 시절을 찍은 낡은 사진 액자는 많은 것을 전달한다. 가족은 가족이다. 동생이 남몰래 숨기며 지켜 온 7마리의 양 가족을 대하는 형의 행동은 40년이 지나도 이들이 형제임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 '램스'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 인디플러그)

마지막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어서 가슴이 북받쳐 오른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 덮인 산 속에서 두 노인이 펼쳐 보이는 행동은 형제애가 인생의 난관을 헤쳐 나갈 힘을 될 것이라는 암시를 던진다. 대화가 없는 두 사람 사이에 메신저로 오가는 영리한 개와 두 집안을 왔다 갔다 하는 7마리 양 가족은 영화의 귀요미 담당이다.

고집스러운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이 마지막에 가면 더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뭉클하고도 뜨거운 영화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한신대 겸임교수.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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