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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서울역' 떠도는 사람들의 지옥도[주말영화] '서울역', 연상호, 2016
정민아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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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26  10: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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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연상호, 2016. (이미지 제공 = NEW)

1000만 관객을 동원하여 올 여름 최고 흥행작이 된 '부산행'과 나란히 놓인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은 원래 애니메이션으로 출발한 감독으로, 리얼리즘 사회비판 애니메이션이라는 영역의 실험을 꾸준히 이어 오다가 '부산행'을 통해 실사 영화로 선회했고, 그의 어둡고 무지막지하고 날카로운 세계관은 좀비 장르를 만나 상업영화계에서 대폭발했다.

좀비 스릴러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부산행' 사건의 이전 이야기인 프리퀄로 소개되고 있다. 두 영화의 소재는 같지만 이야기나 캐릭터가 연결되는 것이 아니며 '서울역'은 '부산행' 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의 다른 이야기를 담는다. 적당한 웃음과 눈물 코드가 있고, 어쨌든 결말을 희망으로 마무리한 '부산행'에 비해, '서울역'은 연상호 감독 특유의 거칠고 묵직한 감각으로 대한민국 지옥도를 묘사한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을 걷어 버린 채 어른들이 보라고 만든 '서울역'은 신랄하고, 비관적이고, 어둡고, 잔혹하다.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은 작화의 아름다움을 버리고 최소한의 선으로 배경과 인물을 만들어 낸다. 그림체는 단순하고 거칠지만 그의 스토리텔링은 깊고 풍부하다. 잔인한 세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분노와 폭력이 서사 구조 안에 유려하게 녹아든다. 따라서 그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재미나 미학적 즐거움을 발견하기 보다는 세상을 향한 섬뜩한 시선을 느끼고, 마초적 가부장제 구조가 얼마나 사회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끔 한다.

   
▲ '서울역'. (이미지 제공 = NEW)

'부산행'에서 좀비 감염은 심은경이 KTX에 올라타면서 시작되고, 곧 심은경은 좀비가 되어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진 좀비 소녀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서울역'에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역'은 19세 가출 소녀 심은경이 주인공이다. 어느 날 서울역에 정체가 불분명한 부상자 노인이 나타난다. 좀비가 되어 다시 살아난 그는 삽시간에 서울역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한편 가출한 딸 혜선(심은경)을 찾아 나선 아빠(류승룡)는 그녀의 남자친구 기웅(이준)을 만나러 왔다가 좀비의 습격을 당한다. 서로를 찾으려는 세 사람의 분투 속에서 좀비로 뒤덮인 서울역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진다. 삽시간에 이상 바이러스가 퍼지고 서울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계엄령이 선포된다.

바이러스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영화에 충분히 나오지 않는다. 어떤 질병이나 재난의 원인을 명확하게 찾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서로 물고 잡아 뜯어 모두가 똑같은 괴물로 변해 가는 세상에서 개인 각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이기적이 되어 가고, 세상은 더욱 지옥이 되어 가는 바로 지금 현실을 직시한다. '부산역'에서도 경험했듯이 일단 나부터 살고 보기 위해 더더욱 잔인해지는 인간이 좀비보다 더 무섭다.

영화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근대화와 도시 개발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는 서울역이라는 역사적 공간에 무게를 싣는다. 정부 주도로 개발이 진행된 도시화로 인해 고향을 잃은 수많은 이들이 노숙자가 되어 서울역에서 살아간다. 늘 우리 주위에 있지만 애써 관심을 두지 않는 타자인 이들은 당연히 저마다 사연이 있다.

   
▲ '서울역'. (이미지 제공 = NEW)

아직 10대 소년, 소녀인 혜선과 기웅은 서울역 근처의 싸구려 여인숙에 기거하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원조 교제에 달려든다. 어쩔 수 없다기보다는 애써 살아 보려 노력하는 것의 의미조차 잃어버린 이들이 찾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정해진 거처는 없다. 여인숙에서 생활하며, 지하도를 전전하고, 몸을 숨기는 곳은 모델 하우스다. 영화 속 ‘집 없는 청춘’이라는 존재는 앞으로 집을 소유할 가능성이 없는 현재 청춘들의 초상이다.

혜선을 찾아 나선 아빠의 진짜 정체가 영화 중간에 드러나며, 영화는 잔인한 마초 가부장의 맨얼굴과 그를 중심으로 증식하는 자본의 본질을 보고자 한다. 서울역에서 조금만 더 가면 있는 재개발지 용산의 아픔을 아는 우리로서는 용산 근교에 재빨리 퍼지는 좀비 바이러스와 아수라장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역시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기 위해 공권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을 정부는 사회 불순분자로 몰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정의로운 시민들의 연대가 무력해질 지경까지 악의 세력이 창궐하는 가운데 우리는 아비규환의 도시를 체험한다. 그리고 실제로 좀비는 존재하지 않지만, 무지막지한 좀비처럼 무한증식하며 민초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자본의 탐욕이 진정 재앙임을 깨닫는다.

 
 

정민아(카타리나)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한신대 겸임교수.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출신.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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