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초야에 파묻힌 건 아니지만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현장을 누비지 않은 지 10여 년이 지났다. ‘황우석 사태’로 규정했던 2004년과 2005년 논문사기 사건의 여파가 잠잠해지면서 현장보다 일상에서 원고를 쓰며 서생의 본령에 침잠하려 노력해 왔는데,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세상이 뒤숭숭하기 얼마 전, 엉뚱한 뉴스가 의구심을 일으켰다. 하지만 후배들이 나설 거라 믿고 조용히 지냈는데, 그것 참! ‘최순실 국정농단’이었다니. 퍼즐이 풀린 느낌이다.

황우석 전 교수의 논문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건만 여전히 많은 사람은 체세포 핵이식 배아 줄기세포가 획기적 의료 성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현실은 어떤가? ‘황우석 사태’ 이후 10년이 넘었지만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능을 잃은 세포조직을 건강하게 치료하려면 면역거부반응은 물론 없어야 하고 부작용 없는 세포를 배아 줄기세포로 만들어야 하지만 아직 불가능하다. 앞으로 가능할까? 기대하기 몹시 어렵다. 그뿐 아니라 생명윤리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만큼 어떤 국가나 자본도 연구투자를 꺼린다.

황우석 전 교수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만들었다 믿었지만, 다른 연구소에서 다른 방식으로 만든 배아 줄기세포를 쥐의 복강에 넣어 ‘테라토마’를 얻었고 황 전 교수는 테라토마 사진을 조작해 논문을 작성했다가 그만 발각되었다. 씻을 수 없는 국가망신을 초래한 지 10년도 더 넘은 지금, 새삼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당시 조명된 테라토마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테라토마는 과학기술로 통제할 영역 밖의 암세포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테라’는 컴퓨터 저장장치 기억용량의 크기인 ‘테라바이트’를 염두에 두면 이해가 쉽겠다. ‘토마’는 암의 의학용어인 ‘튜머(tumor)’와 같은 말이다. 따라서 황우석 전 교수의 연구팀이 쥐의 복강에서 분화시킨 테라토마는 오만 가지, 무엇인지 모를 암세포를 의미한다. 배아 줄기세포를 쥐나 사람의 몸에 넣으면 오만 가지 암으로 분화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목표하는 세포조직으로 배아 줄기세포를 안정적으로 분화시키는 연구가 확보되지 않으면 결코 임상에 적용할 수 없다.

체세포 핵을 냉동하지 않은 난자에 넣어 얻을 거라 기대했던 황우석 전 교수 방식의 배아 줄기세포든, 불임클리닉에 보관된 잔여 냉동배아를 사용하여 얻는 배아 줄기세포든 관계없이, 많은 노력에도 현재까지 배아 줄기세포는 치료에 적용할 정도로 세포분화가 안정적으로 분화되지 않는 까닭에 세계의 어떤 연구자도 더는 연구에 목을 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예외인가 보다. 황우석 전 교수가 운영하는 수암연구소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리라 생각하는데, 예전부터 그 연구에 집요하게 매달렸던 차병원에서 결국 최순실을 앞세웠나 보다.

▲ 배아 줄기세포 배양은 난자 핵 제거 뒤에 체세포 이식 과정을 거친다. (이미지 출처 = SBS 뉴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배아로 만드는 줄기세포의 윤리 문제는 어제오늘이 아니다. 적어도 20여 년 전부터 윤리학이나 철학뿐 아니라 인문학, 법학, 종교학, 의학과 생물학, 그 이외 다양한 측면에서 복잡다단한 논의를 거쳐 배아 줄기세포의 윤리적 타당성을 논의해 왔고, 윤리적 타당성을 도저히 충족할 수 없기에 실용적 기대감으로 연구에 미련을 두었던 국가도 가능성을 접어야 했다. 배아 줄기세포의 안정적 분화를 도저히 유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연구비를 지속적으로 투자해서 배아 줄기세포 럭비공 분화 현상을 통제할 수 있다면? 황우석 전 교수가 한때 호언했듯, 한 국가의 흥망을 주도할 정도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까? 가능성은 물론 희박하지만 만에 하나 성공한다면 차병원은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까? 그 방법을 찾아낸 차병원의 생명공학자는 대한민국의 구원투수가 될까? 그럴 리 없다. 과학은 마술이 아니다. 숱한 선행 연구의 뒷받침이 없다면 시도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과학자는 늘 겸손해야 하고 그 결과는 성패와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와 같은 생명공학은 후손의 생명을 재료로 삼는다. 부가가치 여부와 관계없이 후손의 처지에서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배아 줄기세포의 연구, 특히 체세포 핵이식을 염두에 둔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생명윤리 차원에서 통제되어야 마땅하므로 전문가들의 오랜 논의 끝에 관련법이 제정되었다. 그럼에도 국정농단으로 특정 병원에 한정해서 연구가 허용되다니, 어처구니없다. 대통령 비선실세의 힘을 빌려 윤리적 검토를 생략한 채 연구하려는 과학자가 우리나라에 여전하다는 사실이 진정이란 말인가?

비동결이든 동결이든, 체세포 핵이식 배아든 냉동 잔여배아든, 생명윤리의 검토 없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후손의 처지에서 매우 위험하다. 국가 부가가치를 내세우든, 연구자의 연구 성과를 내세우기 위한 목적이든, 후손의 생명이 재료가 아닌가. 게다가 실용적이지 못하다. 십 년도 넘은 논의 내용을 다시 들춰내기 귀찮지만, 줄기세포 연구자들이 기대하는 세포조직의 치료는 성공하더라도 부가가치와 관계없다. 치료하겠다는 세포조직은 노화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화는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 나이 들어가는 자연스러움이다.

작업장과 교통사고 그리고 전쟁 원인으로 드물게 발생하는 젊은이의 세포조직 손상은 기존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예방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 차병원 관계자의 집요한 비동결난자 연구 욕심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이어졌다는 의혹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 차원에서 그칠 수 없다. 후손을 희생하려는 연구는 인류의 종말을 선도하지 않는가!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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