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보성, 광주 영결식 거쳐 망월동 구묘역 안장

“불의에 맞서 일어서고, 이웃과 함께하며, 먹을거리를 일구던 하느님, 우리는 또 어떤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까.”

350여 일 백남기 투쟁의 온 과정을 함께한 정현찬 가톨릭농민회장(미카엘)은 “권력은 백남기 농민의 육신은 죽였지만, 그의 정신마저 짓밟지 못할 것이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밧줄을 당긴 그 정신은 우리 농민 가슴 가슴에 새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5일 명동성당 장례 미사에 이어 광화문, 보성역 영결식을 거친 백남기 씨의 운구 행렬은 6일 350여일 만에 찾은 집과 밀밭을 마지막으로 돌아본 뒤, 마을 주민들이 마련한 아침 밥상을 마지막으로 광주 금남로에 도착했다.

▲ 11월 6일 광주 시내를 지나는 백남기 씨의 운구 행렬. ⓒ정현진 기자

금남로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광주대교구 정평위 부위원장 김명섭 신부는 추도사를 통해 “평생 농부로 생명을 보듬고, 이 땅의 죽어가는 농업을 살리기 위해 경찰의 살인적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삶은 예수의 길과 너무나 닮았다”며, “지금 우리는 온갖 기만과 허위, 폭력의 세상 한복판에 서서 절망하고 있지만, 불의가 세상을 비웃더라도 끝까지 불의한 권력에 항거해야 하며, 백남기 농민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부당하고 폭력적인 정권을 끝장내서 평화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백남기 농민이 열고 간 생명과 평화의 길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며, “백남기 농민은 죽지 않았고, 부활해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인이 꿈꿨던 날이 가까웠다. 우리와 함께 우리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백남기 씨의 유해는 화장된 뒤,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 묻혔다.

이날 안장 전 봉헌된 미사에서 이영선 신부(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장)는 “350여일 간 우리가 버틴 것은 백남기 농민이 나누고자 한 삶이 있었고, 그의 삶이 우리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권력을 양보한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 살기 위해서는 꿈을 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이들의 피값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은 우리가 역사의 주인이 되는 것이며, 권력자들이 두려워하는 ‘연대’로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 11월 6일 광주에서 열린 백남기 씨 장례식 참석자들에게 백 씨의 둘째 딸 백민주화 씨가 인사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 11월 6일 광주에서 백남기 씨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이 망월동 구묘역을 향해 걷고 있다. ⓒ정현진 기자
▲ 11월 6일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서 백남기 씨의 유해 안장에 앞서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정현진 기자
▲ 백남기, ‘생명과 평화 일꾼’으로 잠들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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