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선 신부, 우리의 운동은 무엇을 향해야 할까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의 적일까? 정부가 적일까? 아니다 우리의 적은 다름 아닌 우리가 만들었고 또 살고 있는 ‘문화’다”

백남기 씨의 빈소가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영선 신부(광주대교구 정평위원장)는 “불의와 싸운다는 이들이 무엇에 맞서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세월호참사 900여 일,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뒤 350일 그리고 ‘최순실 국정농단 스캔들’까지. 정신없이 벌어지고 확인되는 정부와 공권력의 폭력 앞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시간, 이 신부는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를 분명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늘 해법과 대안을 찾지만, 사실상 그것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만 가능하다.

이 신부가 그간의 사건을 겪으면서 뼈아프게 짚어 낸 싸움의 대상은 다름 아닌, “폭력을 내면화한 우리 자신, 그래서 주변의 폭력마저 허용하고 있는 우리의 문화”다.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설명하는 군사문화, 서열문화 등의 계급성은 홀로 작용하지 않는다”며, 이 신부는 “특별히 관료사회 조직의 폭력성과 계급성은 심각한데, 문제는 그것을 우리가 이미 그 폭력성을 내재화하고 용납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이영선 신부는, "300여 일, 우리가 서로 후원하고 연대한 모습이야말로 우리의 본성이었다"며, 이 본성을 일상에서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그는, “살인에 이르는 공권력의 폭력이 가능한 것도, 이미 폭력에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이며,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은 하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며, “양심선언의 경우에도, 이미 조직의 비리가 우리를 배신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고발하면 배신자라고 한다. 그런 폭력의 문화가 바로 우리의 적”이라고 말했다.

“우리 앞의 폭력,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을 제거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가 허락하고 있는 폭력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지 못한다면, 적은 계속해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짓이 가능하도록 하는 문화가 있을 뿐이다.”

“종교인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거겠지만....”이라면서도, 혼돈의 세상에 이 신부가 건네고 싶은 말은 “존중하고 존중받고 싶어하는 본능, 평등의 회복, 평등을 지향하는 관계 맺기의 회복”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남을 돌보지 말라”는 무언의 명령에도 길들여져 왔다. 하지만 350일 백남기 농민이 또 다른 백남기들과 이어온 싸움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사실 ‘돌봄의 힘’이었다. 이 신부는 힘의 관계에서 비롯된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등하게 친해지고,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근본적 운동”이라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저항은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권력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경쟁의 대상으로 구조화되고 친구가 없는 것이라면 보살피고 협력하면서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내가 백남기다" 장례식장에 걸린 연대자들의 사진. ⓒ정현진 기자

“나에게 그들과 같은 힘이 있다면, 나는 다를 수 있을까?”

이영선 신부는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에게서도 똑같은 방식을 발견한다고 했다. 운동의 방식조차 ‘너를 바꾸기 위한 것’이라며 답답함을 느꼈다는 그는, “폭력으로 폭력을 없애고 싶어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고민을 시작했고 말하고 싶었다. 이 말의 대상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우리 모두”라고 말했다.

“핵심은 내가 쓰는 에너지를 남이 아닌 나를 향하게 하는 것이다. 남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 박근혜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나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운동의 방식,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이 신부는 예수의 십자가 희생과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같은 꼴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자식의 죽음을 오롯이 지켜봐야 했던 비극, 예수를 희생시킨 사람이 아닌, 희생된 예수를 구원자라고 고백하는 사건. 이 신부는 그렇다면 이미 백남기 농민의 희생은 우리에게도 ‘축복’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권력과 힘으로 희생되는 구조 속에서 더 많은 힘을 갖고자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더 많은 힘을 갖게 된다면 나는 저들과 다를 수 있을까”를 성찰해야 한다면서, “이 사건이 온전히 축복이 되려면, 불의함에 대해 새롭게 깨닫고 자신을 불의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불의가 무엇인가, 폭력이 무엇에서 비롯되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영선 신부는 마지막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은 폭력과 감동인데, 결국 감동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며, “사람은 자기 머리를 잡아채는 사람이 아니라 발밑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받아들인다. 상대방의 발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 안의 폭력성을 거둬 내는 출발점이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운동의 영성”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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