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숨진 지 41일 만에 백남기 씨 장례

▲ 11월 5일 백남기 씨의 장례가 치러졌다. 영결식이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백 씨의 대형 영정. ⓒ정현진 기자

11월 5일,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지 350일 만에 장례가 치러졌다.

장례식 전날인 4일 저녁, 백남기 씨가 41일간 잠들어 있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백 씨를 떠나보내기 위한 마지막 미사와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미사에는 1979년 ‘오원춘 사건’의 주역 오원춘 씨(알폰소, 안동 가농)도 참석했다. 그는 백남기 씨가 4-5년 후배로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인연을 맺었다며, “백남기 형제와 많은 것을 함께했다. 오늘의 백남기가 무엇을 남겼는지 많이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오원춘 씨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세상을 원망했지만, 결국 하늘은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이라는 것을 알았다”며, “40년 전과 다를 게 없고, 정책조차 없는 농업은 망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사업이고, 결국은 (백남기의 뜻처럼) 나눔으로 극복해야 할 하느님의 사업”이라고 말했다.

또 이애령 수녀(예수수도회)는 “마지막 9일기도를 하면서 연대의 힘에 감동받았다”며, “아무리 험악해도 부검영장 문제가 나오자 시민들이 몰려오는 것을 봤다. 가슴 아프지만 백남기 농민이 우리에게 주고 간 것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전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연합 대표 박순희 씨는 “백남기 씨의 희생은 이 사회의 정화를 위한 것”이라며, “세상적으로 고통받고 이룬 것이 없더라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룬 것이 많다. 그것을 어떻게 세상에서 펼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그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이라고 말했다.

▲ 11월 5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가운데) 주례로 백남기 씨의 장례미사가 봉헌됐다. (사진 제공 = 백남기투쟁본부)

5일 오전 8시 잠들어 있던 서울대병원 영안실을 나온 백 씨의 시신은 오전 9시 서울 명동대성당으로 옮겨졌고,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와 염수정 추기경,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사제단이 공동 집전하는 미사를 시작으로 영결식을 치르고 6일 광주 망월동 구묘역에 안장됐다.

서울 명동대성당은 1974년 백남기 씨가 교내 유신철폐 시위 주도로 수배를 당해 피신해 있던 곳이자,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곳이다.

“얼마나 자주 하늘을 올려다봐야 사람은 진정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귀를 가져야 타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희생돼야 죽음을 알게 될까.”

1000여 명이 모인 이날 미사에서 김희중 대주교는 “과연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모순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며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 가치를 묻지 않는 것은 죽은 사회”라며, “백남기 형제의 삶과 믿음으로 우리도 하느님께 삶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백남기 형제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김 대주교는 “우리 먹을거리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외침이 죽어야 할 정도로 부당한 요구였나,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라며, “공권력으로 한 생명이 죽었는데 아직 사과도 없는 처사가 이해되지 않는다.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백남기 농민의 사태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으며, 컴퓨터칩을 팔아 살 수 없고, 농사를 지어서 사람답게 살자는 농민의 외침을 외면한 결과였다며, “우리 먹거리를 제공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고, 법과 제도적 보완을 해달라”며, 백남기 농민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또 그는 “백남기 농민의 삶을 기억하는 이 자리는 슬픔을 넘어 분노로 채워진 자리이기에 마음이 아프다”며, “그를 다름 아닌 우리가 떠나보낸 것이 아닌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날 명동대성당 장례미사 뒤, 운구 행렬은 백남기 씨가 쓰러졌던 종로 르미에르 건물 앞에서 추도식을 하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광화문 광장에서 영결식을 치렀다.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장례위원으로 참여한 농민단체, 박원순 서울시장과 야3당 대표를 비롯한 정치권, 시민 약 1만 5000여 명이 참석했다.

▲ 11월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백남기 씨 영결식에 참석한 이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현진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 대표 등은 추도사에서 백남기 농민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특검을 도입해 모든 사실을 밝혀 책임자를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도 경찰이 물대포를 위한 소방수를 사용하겠다고 했지만 불허했다며, “우리가 상식과 정의의 나라를 세우고, 불의한 권력의 정적 박근혜 정권 퇴진”을 이루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유가족 대표로 인사에 나선 백남기 씨의 장녀 백도라지 씨(모니카)는 “아버지를 끝까지 지켜준 시민들에 대한 감사는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이라며, “앞으로 특검을 통해 아버지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울 것이며, 경찰, 검찰 그리고 부검 논란을 일으킨 서울대병원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했다.

또 백도라지 씨는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와 시위를 하게 된 이유인 농촌, 농업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장례위원 등 120여 명은 오후 4시 쯤 광화문 영결식을 마치고 백남기 씨의 고향이자 생가인 전남 보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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