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여론의 도마에 올라 있는 최순실 게이트 의혹에 관해서 처음으로 대통령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미르, K스포츠재단 ‘사유화 의혹’에 대해 "만약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단 설립 배경에 관해서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초고속 설립이나 ‘강제 모금’, 대통령 측근 최순실 씨의 개입 의혹 등 이 사건을 <최순실 게이트>로 확대시킨 핵심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여론이 권력비리로 비판하고 있는 "대통령 최측근" 최순실 씨의 두 재단 모금행위와 관련해서 "의미있는 사업에 대해 의혹이 확산되고 도를 지나치게 인신공격성 논란이 계속되고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청와대 비서실을 동원해 전경련을 압박해서 최순실 씨의 재단 설립자금을 강제 징수한 행위를 간접적으로 옹호한 인상마저 주었다.

전체적으로 수석비서관회의 발언은 그와 핏줄보다 더 가깝다는 최순실 씨가 비판여론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게이트가 강의 둑을 무너트릴 위험을 막기 위해 우선 위기를 피하고 보려는 응급처방의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 언론의 비판이다.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비판의 표적인 최순실 씨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다. 강제모금이나 지금 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있는 두 재단의 불법 자금유용에 대한 지적은 없고 “의미있는 사업”이라고 변명했다. 공적인 책임보다 사적인 관계를 앞세우기 잘하는 대통령의 평소의 행태가 드러난다. 대통령의 엄벌발언에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 주요 언론의 전반적인 반응이다.

여기서 언론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문제가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다. 모든 언론이 거의 하나같이 "누가 진짜 대통령이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질문이지만 두 사람의 그동안의 관계를 보면 그렇게 엉뚱한 질문도 아닌 것 같다. 한때 청와대 주변에서는 권력의 제1인자는 최순실이고 제2인자는 최순실의 남편이자 국회의원 시절 박근혜 의원 비서였던 정윤회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세 번째라는 농담이 돌았다고 한다. 물론 이런 루머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만약 그런 유언비어가 몇 분의 1일이라도 사실과 부합한다면 국가적으로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게 된다. 박근혜와 최순실 관계에서 상식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떠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뉴스타파>에서 발굴한 '최순실과 박근혜 40년 우정' 동영상 중 한 장면. (이미지 출처 = youtube.com)

역사적으로 그런 예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때 “미친 사제”로 악명이 높았던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황후와 황제의 신임을 얻어 정치 외교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러시아의 역사를 바꿔 놓은 일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라스푸틴은 러시아 귀족과 지식층의 증오 대상이었고 결국 암살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21세기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세계적으로 권력자는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사람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으로 지금도 인용되고 있는 인물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지금까지 드러난 권력형 비리만으로도 대통령의 몇 마디 원칙 발언으로 잠잠해질 수 없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수준급 스캔들이다.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하는 것에서 끝나는 스캔들이 아니라 아무 직위도 없는 평민이 대통령의 사적 친분을 남용해 호가호위하면서 국가 최고권력자를 조종한다는 점에서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될 스캔들이다. 그런 점에서 워터게이트보다 더 파국적인 권력비리가 될 수도 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국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개인적 측근의 영향을 받는다면 이보다 더 위험한 민주주의의 타락이 또 어디 있겠는가?

청와대나 새누리당은 최순실 게이트에 관해 여론조사 기관인 에스티아이가 지난 9월 22일과 23일 이틀간 전 국민 만 19살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심각하게 봐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에 관해 50.0퍼센트가 “대통령 측근들이 부당하게 개입했을 것”이라고 대답한 반면 “대통령 측근들의 부당한 개입은 없었을 것”이라는 응답은 20.0퍼센트에 그쳤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20.0퍼센트였다. 이 무렵 박 대통령에 대한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한국 갤럽이 지난 18-20일 전국 남녀 유권자 1018명(신뢰수준 95퍼센트±3.1퍼센트포인트)을 상대로 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5퍼센트를 기록했다. 9월 둘째 주 33퍼센트에서 5주 연속 하락했다, 2013년 2월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주보다도 1퍼센트 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대통령 직무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64퍼센트로 전주보다 5퍼센트포인트 상승했다. 취임 후 최고치다. 새누리당 지지층 63퍼센트만 국정 수행을 긍정적으로 보았고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92퍼센트, 국민의당 지지층은 91퍼센트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에서도 부정 평가(59퍼센트)가 긍정 평가(16퍼센트)를 3배가량으로 높았다. ‘최순실과 K스포츠, 미르재단 의혹(4퍼센트)'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기록됐다. 2013년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이 새누리당과 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에 관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검찰에 맡겨서는 안 된다. 결과에 국민이 공감하지 못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대표가 모이는 국회의 국정조사나 특검에 맡겨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 조사와 그 결과에 대한 승복과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가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은 두고두고 역사의 부관참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었습니다.

 
 

장행훈(바오로) 
언론인.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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