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21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 안보분야 대정부 질의 과정에서 북한 핵실험과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문제로 공방이 이어졌는데 그동안 여당의원들이 제기했던 한국의 핵 무장론을 야당의원들이 주장하고 나서 여당의원과 황 총리가 이를 반박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는 보도다.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한두 달 사이에 뒤바뀐 모양새다. 한반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문제에 국회와 정부의 태도가 갈팡질팡하는 것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정부와 국회의 여야가 사드 같은 중차대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미국의 정책을 따르다 빚어진 부끄러운 현상이다. 동맹 관계가 항상 이해를 같이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도 미국의 국익이 한국에는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점들을 미리 검토하고 조율했어야 하는데 그걸 간과해 국민 여론을 하나로 묶지 못했다.

사드 문제에 관해서 박근혜 정부나 “관영방송” 보수신문들은 이 요격미사일 체계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방어무기라는 미국의 설명을 100퍼센트 믿고 있는 인상이다. 사드가 북핵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 요격미사일체계는 북한의 핵위협을 예방하는 기능보다는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에 필요한 무기로 이용되고 있는 것 같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과 동유럽에 배치될 미국의 사드와 이지스 어쇼어(유럽판 사드)가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점을 간과하고 한국 정부나 여당 보수 언론이 사드가 방어무기인데 중국이 왜 불평이냐고 비판하는 것은 문제의 한 면만을 본 협소한 관측으로 보인다. 러시아 주변 국가들에 배치된 이지스 어쇼어 미사일의 역할도 사드와 차이가 없다고 본다.

미국이 동유럽과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시기가 비슷한 것도 흥미롭다. 유럽은 한국보다 두 달 빠른 5월 12일 루마니아에 이지스 어쇼어 미사일 기지를 정식으로 배치했다. 루마니아에 이지스 어쇼어 미사일이 배치되자 러시아는 즉각 미국 요격미사일 배치는 러시아의 안보에 새로운 “직접적 위협”이며 핵전쟁의 위협을 제고시켰다고 반발했다.

미국 미사일 역할의 핵심을 찌른 반응이다. 사드는 미국이 핵전쟁을 가상하고 핵전쟁에서 러시아나 중국을 제압할 무기로 개발한 미사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부인하지만 핵전쟁의 논리로는 러시아와 중국의 비판은 정설이다.

▲ 이지스 어쇼어 갑판실. (이미지 출처 = flickr.com)

핵무기는 폭발력이 재래 폭탄과는 비교가 안 되게 막강하다. 따라서 먼저 핵미사일을 발사해 상대방의 핵 미사일망을 파괴하는 쪽이 이기게 돼 있다. 그러나 선제공격을 받은 쪽이 빨리 대응해서 보복 미사일(second strike)을 발사할 수 있으면 선제공격한 쪽도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결국 핵전쟁은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게 된다는데 미국, 소련 지도자들이 동감하게 되고 어느 쪽도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게 자제시키는 조약을 체결하게 한다. 그것이 1972년 미, 소 간에 체결된 역사적 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 treaty)이다. 한마디로 공포의 균형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모스크바에서 체결한 ABM조약은 아주 특이하다. 1960년대까지 미국과 소련은 가능한 한 상대방 국가에 더 많은 피해를 줄 핵폭탄과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경쟁을 벌였다. 핵 군비경쟁이다.

그런데 이제 달라졌다. 미 국무부가 발표한 ABM조약 해설을 읽어보면 핵무기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미, 소는 각각 요격미사일 기지를 두 개만 설치한다. 전국적인 요격미사일 기지를 설치할 수 없다. 미.소는 상대 국가의 보복미사일이 침투할 능력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한쪽이 선제공격을 했을 경우 상대국에 보복공격의 기회를 주게 하자는 취지다. 그래야 보복 타격이 두려워 선제공격을 자제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공포의 균형”을 통해 세계평화를 유지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공포의 균형에 의한 평화가 30년 유지됐다. 그런데 1991년 소련이 붕괴해 해체됐다. 소련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 이렇게 4개국은 핵전쟁을 막을 ABM조약의 연장에 동의했다. 그러나 미국이 2002년 조약 만기 6개월을 앞두고 소련이 붕괴됐고 이제 핵전쟁의 위협이 없어졌고 대신 핵테러의 위협에 대처할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생겼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약에서 탈퇴했다. 유엔총회에서 ABM조약을 존속시키자는 결의가 제출됐지만 미국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은 어떤 핵미사일 공격에도 피해를 면할 수 있는 ABM체계를 15년간 꾸준히 연구할 수 있었다. 사드는 그 성과다. 만약 사드의 요격 기능이 완벽해지면 미국은 어떤 외국의 핵미사일도 공중에서 저지할 수 있게 되고 외국의 핵미사일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만큼 보복의 공포없이 어느 나라(러시아나 중국)에 대해서도 핵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사드와 이지스 어쇼어가 배치되자 중국과 러시아가 자국의 안보위협과 함께 핵전쟁 가능성이 커졌다고 우려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드의 등장으로 세계가 다시 핵전쟁을 걱정하게 됐다. 사드 문제는 북핵 문제를 훨씬 넘어서는 세계적인 위협을 되살렸다. 미국을 다시 ABM체제로 복귀시키는 것이 핵전쟁으로부터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됐다. 세속 정치인 중에는 사드를 개발한 미국 지도층이 다시 ABM조약으로 복귀하도록 설득할 만한 권위를 가진 지도자가 안 보인다. 세계적 평화의 지도자로 각광을 받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교황이 미국을 ABM조약체제로 복귀시킨다면 사드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핵 문제 해결의 길도 어렵지 않게 드러날 것 같은 예감이다.

 
 

장행훈(바오로) 
언론인.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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