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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임마누엘 스러지다, 하느님나라 피어나다- 조현철

지난 9월 25일, 백남기 임마누엘 농민이 돌아가시고, 병원 주변에는 경찰 병력이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부검을 이유로 고인의 시신을 탈취하려 한다는 소식에 시민들이 서울대병원으로 몰려왔고, ‘백남기 지킴이’가 되었습니다. 경찰에 고립된 채 수백 명이 밥을 굶고 있다는 소식에, ‘희망포차’가 장례식장에 나타나 밥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자, 물품후원을 요청하는 알림이 나갔습니다. 몇 시간 만에 택배차량이 줄을 섰고, 후원 물품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후원 물품을 내리고 쌓는 일로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당분간 물품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알렸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유족과 대책위는 넘치도록 쌓인 물품을 전국에서 싸우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보내겠다며 깊은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들불처럼 순식간에 일어나 번져 나간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 능동적 참여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을까?

전혀 없던 것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원래 다른 이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보듬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타자 지향성. 평소에는 기존의 질서 속에서 공감과 연민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억눌려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고통과 참극이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리면, 우리를 짓누르던 질서도 함께 무너집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도록 해 줍니다.

   
▲ 먹을 것이 부족하자, 후원 물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진 제공 = 백남기대책위)

지옥같은 재난의 현장, 바로 거기서 섬광이 번득이듯 천국이 생겨나곤 합니다. 레베카 솔닛이 말한 ‘재난 유토피아’입니다. 엄청난 고통과 상실의 아픔은, 우리가 함께 겪고 공감할 때, 긍정적인 힘으로 변합니다. 이타심과 동정심, 관대함과 용기, 자발적 연대와 참여, 즉흥적인 위기 대처의 능력이 서로를 향해 쏟아져 나옵니다. 고통스러운 재난의 현장에서, 놀랍게도, 우리는 경이로운 기쁨과 희망을 맛봅니다.

재난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적대시할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서로를 돕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상호부조의 정신을 발휘합니다. 그렇게 해서, 피해자 자신들이 재난의 현장에서 유토피아를 일구어 냅니다. 대체로 정부는 재난에 대처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을 꺼려 하고 방해합니다. 자신들이 누리고 행사해 온 권력의 정체가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그 권력이 현장의 시민들에게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1980년 광주항쟁. 정부는 광주가 무정부 상태에 빠져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정부의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지만, 당시 광주에 넘쳐난 것은 무질서와 폭력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 상호 부조였습니다. 기간은 짧았지만,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해방과 평등의 공동체를 이루어 냈고, 경이로운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배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한 사람들을 구조한 사람들은 해경이 아니라 민간 어부들이었습니다. 다수의 시신을 구조한 사람들은 민간 잠수사들이었습니다. 참사 소식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으로 몰려왔습니다. 기꺼이 자신의 힘과 시간을 내어놓고,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이렇게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의 고통을 견뎌 낼 수 있는 희망을 만들어 냈습니다.

정부는 시종일관 방해했습니다. 사건 초기, 경황 중의 피해자 유가족들의 지근거리에서 누구는 컵라면을 먹었고, 누구는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정부는 세월호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들었고, 세월호 특조위를 무력화시키더니, 조기에 해체해 버렸습니다. 선체 인양은 아직도 감감 무소식입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헌신과 참여는 함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과 기쁨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2015년 백남기 농민. 정부는 수많은 반대에도 노동자와 농민을 사지로 내모는 정책을 밀어붙여 왔습니다.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은 뒷전이고, 대기업에게만 편의와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펴 왔습니다. 백남기 농민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직사 물대포를 맞고 쓰러짐으로써, 쓰러진 이후 317일간 정부의 철저한 외면을 받음으로써, 이제는 자신의 주검으로, 현 정부의 정체를 극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재난의 근원은 바로 정부였습니다. 정부가 재난의 주체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재난입니다.

우리들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한 개인과 그 가족만의 불행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닥친 사회적 재난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그날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대병원 농성장을 찾았고, 이제는 장례식장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농성장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미사가 봉헌되었고, 이제 장례식장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들이칠 것 같다니까, 밤중에 사람들이 달려왔습니다. 음식이 모자란다니까, 음식이 넘치게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우리 자신의 일로 여겼고, 자신의 힘을 형편껏 보탰습니다. 그렇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쓰러진 백남기 농민 주위에도 재난 유토피아가 생겨났습니다.

재난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하나가 되게 합니다. 기존의 질서와 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웁니다. 자발적 참여와 연대와 상호부조의 수평적인 질서가 들어섭니다. 성서에 나병 환자 열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루카 17,11-19). 아홉 명은 유대인, 나머지 한 명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놀랍게도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식구가 된 것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함께 살도록 엮어 주었을까? 나병! 바로 끔찍한 천형이 이들을 묶어 주었습니다. 나병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 친족, 부족 공동체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재난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병이라는 공동의 불행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을 갈라놓았던 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재난으로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소외와 배제, 억압과 지배의 자리에 연대와 포용, 공존과 섬김이 피어났습니다.

이들은 나병으로 사회에서 소외되었지만, 그 소외를 통해서 더 뿌리 깊은 소외를 극복했습니다. 소외됨으로써 소외된 이들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철저히 버림받음으로써 버림받은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나병을 앓고 있었지만, 나병보다 더 고질적인 병에서 이미 치유되었습니다. 나병이란 재난이 이들 안에 있던 타자지향성을 일깨워,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함께 어울리는 유토피아가 생겨났습니다. 이 타자지향성은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그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시민이 모여들었다. (사진 제공 = 백남기대책위)

재난이 수습되면, 재난 유토피아는 점차 사라져 갑니다. 나병이라는 재난이 없어지자, 사마리아 사람과 유대인들은 헤어져 각자 갈 길을 갑니다. 재난이 수습되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기뻐하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아홉 명의 유대인처럼. 하지만 재난으로 생겨난 유토피아의 체험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혼자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처럼. 사마리아 사람은 깊은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필시 병의 치유에 감사했을 겁니다. 동시에 천국을 체험한 것에도 감사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이루었던 소외와 배제와 차별의 극복, 연대와 포용과 평등의 체험은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선포한 124위의 복자 중에 백정 신분의 ‘황일광 시몬’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에겐 두 개의 천당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후세의 천당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양반들과 함께했던 천주교 공동체였습니다. 차별과 배제와 단절의 벽이 허물어진 공동체, 그에게는 바로 천국이었습니다. 천국을 경험한 사람은 ‘지금 여기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대략 3000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 지진은 당시 여덟 살 난 한 여자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깁니다. 엄청난 지진의 재난 속에서 피어난 “인간적 따스함과 친절함”의 순간들이 이 아이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졌습니다. 이 아이는 재난 속에서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우리 내면의 가능성, 그 인간적 따스함과 친절함을 실천하는 데 나머지 75년의 삶을 오롯이 바쳤습니다. 이 여자 아이가 바로 ‘도러시 데이’입니다. 마음 속 깊이 새겨진 기억으로 도러시 데이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고, 밖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재난 유토피아는 사라지지만, 흔적을 남깁니다. 도러시 데이처럼, 그 흔적은 평생 지속되기도 합니다. 재난은 우리 안에 있는 ‘참된 무엇’, ‘진짜 인간’을 깨워서 밖으로 나오게 합니다.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새로 난 그 길을 우리가 계속해서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기억에 달렸습니다. 도러시 데이는 지진 속에서 보았던 인간적 따스함과 친절함을 평생 잊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가 쓰러지고 난 이후의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우리 사이에서 일어난 따뜻한 공감과 연대, 자발적 헌신과 능동적 참여, 온갖 형태의 타자지향성을 기억합니다.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야훼를 섬기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이스라엘의 흙을 가지고 갔듯이(2열왕 5,17), 함께 일군 유토피아의 흙을 기억 깊은 곳에 담습니다.

이 기억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때, 유토피아가 솟아납니다. 도러시 데이를 만들어 준 기억입니다. 예수를 만들어 준 기억이기도 합니다. 이 기억이 우리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바로 거기, 하느님나라가 있습니다. 백남기 임마누엘이 스러지고, 하느님나라가 피어납니다.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신부, 서강대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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