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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그 이름이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백남기 형제의 죽음을 애도하며

“1947년에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부춘 마을에서 태어났다. 1968년에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지만 민주화운동을 했다가 박정희 정부 시기에 2회 제적을 당해 천주교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생활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복학해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아 1980년 5월 초까지 계속 민주화운동을 벌였지만 5.17쿠데타로 계엄군에 체포되었다. 중앙대학교에서 퇴학되고,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가석방 뒤 고향으로 귀향해 1986년에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여, 1992-1993년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밀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광주전남 본부의 창립을 주도하며, 1994년 공동의장으로 활동하였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도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오후 7시 30분에 구급차에 실려,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져 4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뒤 317일 동안 투병하던 중 2016년 9월 25일 오후 2시 15분,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다.”

위키백과에 실린 백남기 형제의 이력이다. 이력만 보면 강직한 의인이고, 그분의 모습을 보면 따사롭다. 죽음마저도 쉽지 않은 걸음이었다. 이분을 생각하면 이균영이 지은 소설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의 대목들이 아로새겨진다. 이 소설은 31년 7개월 동안 92만 킬로미터를 운행한 기관사 박석우의 기구한 사랑과 운명을 다룬 이야기다. 박석우는 가난했던 젊은 시절 한번 스친 첫사랑을 잊지 못해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눈시울을 적셔 가며 옛 기억을 더듬는 사람이다. 야간 운행을 하는 박석우의 심정을 이균영은 이렇게 묘사했다.

“선로에서 불빛이 희게 부서지고 있다. 어둠 속에 서 있는 나무들이 어두운 하늘의 높이를 짐작하게 하였다. 나뭇잎들 사이에서 불빛이 잘게 부서져 빛을 내고 있다. 하나의 잎이 하나의 불빛을 부수고, 하나의 불빛은 수십 불빛을 이루고, 다섯 개의 나뭇잎에 다섯 개의 불빛을 부수고, 다섯 불빛은 수백 불빛을 이루고.... 나뭇잎들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

백남기 형제의 삶을 고요히 이끌어 왔던 ‘그리운 불빛’은 무엇이었을까? 박석우는 어둠 속의 불빛을 바라보며 “그래, 안녕하신가? 나는 그저 그렇다. 별일 없다. 우리 인생의 일상이 그렇지.”라고 읊조린다. 그래, 백남기 형제 역시 평안한 일상을 꿈꾸었을 텐데, 그게 쉽지 않았다. 박석우가 종착역에서 인근의 저탄장을 바라보며 “저 산처럼 쌓인 석탄더미.… 어두운 땅속에 또 수천 수억만 년, ‘한번 불꽃을 이룰 희망’에 눈을 빛내듯 그 표면엔 불빛이 빛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백남기 형제도 첫사랑처럼 가난한 젊음이 경험한 ‘불꽃’에서 평생 자유롭지 않았다. 아니, 그 불빛 언저리에서만 자유로웠다.

부자처럼 라자로보다 부끄러운 이름들

2016년 9월 25일, 백남기가 이승을 떠난 그날은 농부처럼 평범한 연중26주일 미사가 봉헌되었고, 전례력에 따라서 읽는 주일 복음은 마침 ‘죽어서 저승에 간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였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서 봉헌된 미사 강론에서 라자로는 종기투성이로 부자의 문간에 누워 있었지만, 부자는 라자로보다 더 큰 병을 앓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의 세계는 화려한 옷과 성대한 잔치로 이루어진 세계였지만, 라자로가 누워 있는 자기 집 문밖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자처럼 심각한 실명 상태에서 고통받는 사람은 ‘사팔뜨기’ 같은 행동을 취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선망의 대상이 된 높은 지위에 속하고 유명한 사람들을 존경심을 갖고 바라보지만 오늘날의 많은 라자로들,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는 게 교종의 생각이다. 결국 하느님나라 잔치에 초대받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라자로였다. 그리고 잊혀진 사람은 라자로가 아니라 부자였다.

교종은 예수께서 수많은 비유를 드셨지만, 비유에서 구체적 이름이 나오는 사람은 ‘라자로’뿐임에 주목하셨다. 라자로는 “하느님이 도우신다”라는 뜻이다. 하느님께서 그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 비유에서 부자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교종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인생은 잊혀졌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역사를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그리스도인은 역사를 써야 한다”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역사를 쓰지 못한다”고 이르신다.

라자로가 이름을 얻었듯이, 역사에 이름을 얻는 이는 자신을 가두는 옹벽에 머물지 않고 “멀리 보는 사람들”이라고 교종은 말한다. 그들은 “이웃과 그의 필요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수많은 라자로들 앞에서 “내일 도와줄게요”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항상 머무는 사랑” 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백남기 형제는 이날 그 사랑 앞에 자신을 남김없이 목숨을 바쳐 봉헌했다. 남은 것은 부끄러운 이름들뿐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이름들이다.

   
▲ 백남기 농민이 '밀밭밟기' 행렬 앞에서 징을 치고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 가톨릭농민회 우리농 블로그)

인간에 대한 예의, “모든 죽음은 엄숙하다”

그 부끄러운 이름들이 지금 요구하는 백남기 형제의 시신에 대한 부검을 요구하고 있다. 최초의 병원이송 당시의 진단과 당장 서울대병원 측에서 밝힌 사안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병원 측은 입원한 지 317일이 지난 당장의 죽음에 대한 진단이니 ‘병사’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게 백남기 형제의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황당하다. 유족과 백남기투쟁본부가 밝혔듯이, “급성신부전으로 인한 심폐정지”의 최초 원인은 경찰의 물대포로 인한 외부 충격이다. 경찰이 해야 할 일은 ‘부검’ 요구가 아니라,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국민’에 대한 사과와 자백이다.

대통령과 경찰은 여전히 백남기 형제 등을 ‘폭도’로 규정하고, 그들이 폭도임에야 그의 죽음에 대해 사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설령 그들이 가당찮게 말하는 것처럼 백남기 형제가 폭도나 종북이라 해도 “한 인간의 죽음”은 여전히 엄숙한 것이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산55에 이른바 ‘적군 묘지’가 있다. 사망한 적군이라도 정중히 매장해 분묘로 존중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정에 따라 1996년 7월 우리 정부가 일부 극우단체의 반대에도 조성한 북한군과 중국군 묘지다. 이 무덤 앞에는 비석 대신 1미터 높이의 흰색 각목으로 된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계급과 이름이 적힌 것은 20여 기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명인’으로 적혀 있다. 이 가운데는 1.21사태 무장공비 등 한국전쟁 이후 북한 남파 공작원의 유해도 포함되어 있다.

이 묘지 앞에서 시를 지은 구상은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썩어 문들어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더 너그러운 것”이라고 했다.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미움으로 맺혔건만,/이제는 오히려 너희의/풀지 못한 원한이/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구름은 무심히도/북(北)으로 흘러가고,/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목놓아 버린다”고 했다.

이러한 마음이 ‘영혼 있는’ 사람의 마음이다. 혼이 ‘비정상’이 아니라면, 모든 논란을 넘어서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숙연할 줄 알아야 한다. 폭도도 국민이고 종북도 국민이다. 이유를 따지기에 앞서 혼이 ‘정상’인 대통령이라면, 국민의 안전을 책무로 하는 경찰이라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마땅하다.

병원 앞마당에 내리는 비, 그리운 이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마당에도 비가 내렸다. 문득 로마 제국의 황후 에우독시아의 허영과 탐욕을 비판하다가 유배당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이 생각난다. 요한은 아르메니아의 작은 마을로 유배되었으나, 그의 영향력을 여전히 두려워한 황후와 귀족들은 황제를 부추겨 흑해 동쪽 해안에 있는 한 요새에 유배시키도록 하였다. 요한은 넝마 조각으로 겨우 몸을 가린 채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며 맨발로 먼 길을 가야 했고, 결국 유배지인 피티우스로 가던 길에서 탈진하여,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이라는 유명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407년 그날은 9월 14일이었다.

요한은 12년 동안 사제 생활을 하면서 행한 강렬한 강론으로 유명하다. 요한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기득권 층의 고삐 풀린 사치와 부자들의 탐욕을 끊임없이 고발했다. “그리스도의 제대가 금으로 된 잔으로 가득 차 있지만, 정작 그리스도인 가난한 사람이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여러분은 먼저 배고픈 이들을 충분히 채워 주고 난 다음 그 나머지 것으로 제단을 장식하시오. 여러분은 성전을 장식할 때 고통받는 형제들을 멸시하지 마시오. 살로 된 성전이 돌로 된 성전보다 훨씬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에페소 종교회의를 열어 성직매매로 돈벌이하던 주교 6명을 면직시켰고, 세속적 욕심에 가득 찬 성직자들을 교회에서 쫓아냈으며, 부잣집만 골라 다니던 수도승들을 수도원으로 돌려보냈다. 병원과 학교를 늘리고, 교구청의 쓸데없는 장식품과 가구를 팔아서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였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 총대주교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냈지만, 요한의 개혁에 앙심을 품은 몇몇 주교들과 정치적 반대자들은 조직적으로 저항하며,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가려고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러나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어떠한 정치권력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통치자들이 하느님께서 뽑아 세운 자들입니까? 그렇다면 저들이 제정한 모든 법률과 규정이 선한 것이요 따라서 이의 없이 복종해야 할 텐데, 과연 그렇습니까? 대답은 ‘아니’올시다. 많은 통치자들이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여 거대한 재산을 모으느라 백성을 착취하고, 저들의 악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부당하게 처벌하며, 이웃나라와 불의한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저들의 법이 그릇되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것에 불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는 최고의 권위는 땅의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입니다. 만일 이 두 법이 서로 충돌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하느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결국 황후의 요청에 따라서, 평소에 요한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던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루스 주교 등 36명의 주교들만 참석한 403년 ‘참나무 주교회의’에서 요한은 주교직을 박탈당했고, 결국 유배당해 객사했다. 그가 군인들에게 붙잡혀 간 마지막 부활전야 미사에서 요한은 이렇게 강론했다.

“머잖아,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형제들과 누이들을 떠나야 할 것 같군요. 하느님이 주신 일터에서 나쁜 사람들이 나를 데려갈 겁니다. 나는 지금 슬픕니다. 비통합니다. 화가 납니다. 하지만 절망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희망을 느낍니다. 이 희망의 원천은, 비록 내가 육신으로 형제와 누이들과 이별하지만 영으로는 결코 헤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를 입증하십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뒤에 비로소 사도들은 깊은 가슴으로 그분을 알게 되었지요. 마찬가지로 내 육신이 형제와 누이들을 떠날 때 나는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게 그들을 알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느끼는 이 슬픔은 녹아내리고, 비통한 감정은 달콤하게 바뀌고, 분노에 찬 이 가슴 또한 어루만져지겠지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린 사랑을 깨뜨려 부술 수 없습니다.”

317일, 백남기 형제 역시 버티기 힘겨운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가족들 역시 녹아내리는 슬픔과 비통한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백남기 형제와 이별하기 위한 긴 애도의 시간을 이미 가졌고, 앞으로 더 많은 애도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부끄러운 이름들은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여전히 방자하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에 대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라자로가 누워 있던 문간 안에서 호의호식했던 ‘눈먼’ 부자와 똑같은 비(非)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선택하실 백성은 따로 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우편배달부와 광부들의 모습을 성인처럼 그려 넣었던 것처럼, 그분께서 오늘 보성의 한 농민에게서 당신의 사랑을 발견하신다. 이제 그 농민의 이름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 백남기 임마누엘, 그 이름 위에 영원한 복이 있으리라 믿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한상봉(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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