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여성연구원과 가톨릭여성신학회 연합 심포지엄 ‘대화와 공감' 열려
- 대화와 공감, 존재의 회복, 신앙의 회복, 그리고 세상의 회복

지난 11월 20일, 정동 품사랑 갤러리에서는 가톨릭여성연구원과 가톨릭여성신학회가 주최하는 2010년 심포지엄 “대화와 공감”이 열렸다.

40여 명의 회원과 일반 참여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이은주 박사의 ‘장-뤽 마리온의 성상*대화론’, 최우혁 박사의 ‘에디트 슈타인의 공감이론을 중심으로 한 공감을 통한 하느님 경험’, 홍경자 박사의 ‘대화, 공감, 그리고 철학상담’ 등의 발제와 종합 토론이 진행됐다.

▲ 사진/정현진 기자

이날 심포지엄은 다양한 주제를 통해 ‘대화와 공감’이라는 주제를 살펴보면서, 나 자신과 다른 모든 이들의 고유한 주체성, 그리고 우리들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을 깊이 느끼고 바라볼 수 있을 때, 서로의 실존을 ‘공감’하고 서로의 가능성에 대해 ‘대화’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결국은 하느님과 ‘공감’하고 세상 모든 것과 ‘공감’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첫 번째 발제자인 홍경자 박사는 ‘철학상담’영역에서 어떻게 대화하고 공감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풀어갔다. 우선 ‘철학상담’은 생활세계 안에서 사람들이 겪는 실존적인 상황에서 물음이 던져질 때,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존재에 대한 철학이 실행되는 사고공간이라고 말하면서, 철학상담에서는 ‘내담자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는 어떤 체험과 현실을 말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며 대상이고 주제가 된다고 밝혔다.

내담자 스스로가 바로서게 하는 대화와 공감

▲ 홍경자 박사
“철학상담에서는 ‘대화’가 중심이고 궁극적인 본질이며, 상호이해와 소통, 상호해석의 과정이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상담자는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한계상황을 넘어서는 ‘창조적’사고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내담자로 하여금 자기 반성적 태도를 갖도록 만들고, 자신과 자신이 당면한 삶의 현실을 보다 잘 이해할수록 돕는다.”고 말한다.

또한 ‘공감’은 철학상담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로, 이는 내담자와 거리를 둔 이성 중심의 성찰방식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개입된 체험적 성찰 방식이며, 상호 수직적 권력관계가 아닌 수평적이고 쌍방향적 관계를 지향한다.

따라서 철학 상담자는 내담자들이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처지를 자신의 입장으로 생각하고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철학 상담자의 공감은 ‘동정을 포함하는 그 이상의 감정’이며, 상대방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내담자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며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런 능력을 통해 상담자는 내담자와 그 고통에 온전히 함께 있어주고, 내담자에게는 상담자의 존재 자체가 공감의 열쇠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상에서 성상으로의 회심, 성상과의 대화로 신의 부름에 응답해야

두 번째 주제인 ‘우상(Idol)에서 성상(Icon)으로’에서 이은주 박사는 시각혁명, 이미지 홍수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시각혁명이 사회 전반의 대화와 소통의 참된 진보를 제공하고 있는가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다양한 이미지들은 우리의 인식에 변화를 주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로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성과 개방성으로 민주주의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다소 부정적으로 접근한다면, 이를 ‘이미지 우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 이은주 박사
이를 위해서 장-뤽 마리온(J-L Marion)의 우상과 성상에 관한 현상학을 소개했는데 마리온은 근대와 탈근대의 사상적 흐름을 ‘우상에 관한 현상학’을 통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는 가톨릭 사상가로, ‘우상에서 성상으로의 회심’을 제안한다. 마리온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신(타자)을 향해 눈을 열어주는 것이 성상의 기능이며, 세계와 신(타자)의 얼굴을 가리고 개념, 이미지 등으로 타자를 환원시키는 것은 우상이라고 한다. 타자에 대한 확실성에 근거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우상이라면, 타자의 얼굴을 열어주고 그 얼굴을 통해 무한의 진리로 이끄는 것이 성상이며, 성상은 무한의 진리와 타자의 얼굴을 보게 하는 창, 대화를 열어주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또 “이미지는 원래 실재를 드러내는 표현이지만, 이미지들은 점차 실재로부터 멀어지고 스스로가 실재인 것처럼 포장되는데, 이런 이미지가 하나의 권력이 되는 과정은 우상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말하면서, 무엇보다 “이미지 우상의 폭력은 궁극적으로 ‘타자와의 대화’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폭력”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인간은 특정 이미지로 고착될 수 없고, 어떠한 개념도 생명현상의 풍요로움과 다의성을 온전히 담을 수 없는, 단독자로서 무한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러한 특성은 인간과 신이 공통으로 가진 속성이다. 따라서 모든 타자를 존중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적 지향인 사랑의 구현이라고 말하면서 이미지 우상은 현대인들에게서 이러한 사랑의 가치를 잃게 한다고 했다.

이에 반해 “성상은 신(타자)의 얼굴을 드러낸다. 성상은 의미나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고, 세계와 신을 향해 눈을 열게 되는 통로가 된다. 우상이 인간들의 욕망을 보게 하는 거울이라면, 성상은 신(타자)의 얼굴을 보게하는 기호다. 또 우상이 인간들의 고착되고 개념화된 정신의 마비를 드러내는 거울이라면, 성상은 신(타자)이 주는 무한의 진리를 바라보는 거룩한 시선의 깨어남이다.”라면서 “모든 타자의 얼굴은 성상이다. 모든 존재자들의 얼굴은 사랑의 현상으로서 ‘신의 기호’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사랑의 현상, 신의 기호는 결코 특정한 지식의 형태로 환원될 수 없기에 생명현상은 끝없는 대화를 요청한다. 신도 우리를 부르며, 우리도 신을 부른다. 곧 부름과 응답은 생명현상의 핵심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은주 박사는 우리의 신앙에 대해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가? 신에 대한 개념적 우상에 매여 있지 않은가? 이웃의 얼굴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으로 “그리스도교는 오랫동안 개념적 우상에 마비되어 있었으며 신(타자)의 부름에 역동적으로 응답하는 데 게을렀음을 고백하게 된다. 우리의 응답은 유예되어 있다. 더 이상 타자와의 대화를 요청하지 않는, ‘질문의 폐기’라는 권태의 시대에 ‘우상에서 성상으로의 회심’은 온 심장을 잃어버린 세계를 향한 신의 부름이다. ‘사랑의 성상’은 모든 관계 가운데 세워져야 한다. 생명이 소통하는, 궁극적인 사랑의 진보를 향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 우리는 ‘성상과 대화의 길’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Fiat(자발적 긍정)을 통한 온전한 공감, 세상을 회복할 근거

▲ 최우혁 박사
마지막으로 최우혁 박사는 ‘공감(Empathy)을 통한 신비신학의 현상학적 이해’라는 제목으로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의 공감이론과 ‘예수의 데레사’의 신비경험을 소개했다.

먼저 “에디트 슈타인은 진리를 향한 방법으로 ‘공감’의 문제를 다루는데, 여기서의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들어가 그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상호 관계성 안에서 인간은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인격과 인격 사이에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상대방을 또 다른 주체이자,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이 만남에서 인간 인격의 영적인 차원이 드러난다.”고 말하면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올 때, 비로소 자신과 통교하고 자신을 실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감에서 나아가 인간과 하느님의 공감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고 했다.

에디트 슈타인은 Fiat(자발적 긍정,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의 실천, 즉 계획에서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에 주목하고 ‘가능성이 계획에서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자발적 행동은 고유한 존재자로서 자유로운 의지에 근거하여 이뤄지며, 또 다른 주체적 존재자와 더불어 공동의 삶을 형성한다고 본다.

최우혁 박사는 “결국 이러한 ‘Fiat’은 예수 그리스도에서 드러나는 인간 존재의 신비에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를 완전히 드러내는데, 나자렛의 마리아에서 발설된 Fiat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현실화 하는 방법론의 원형이다. 한 여성의 응답(Fiat)을 통해 말씀이 사람이 되었고, 그 신비는 죽음을 앞두고 간절히 기도하던 십자가 위의 예수의 Fiat에서 완성되었다.”고 안내하면서, “Fiat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영혼을 머뭇거림 없이 하느님에게 맡겼고, 인간적 능력들은 신적 능력과 일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의 Fiat 역시, 그 일치 안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탄생은 신적 절대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죽음과 부활, 죽음을 무릅쓴 ‘공감’이며, 일치되는 그 순간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완전한 공감의 상태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에디트 슈타인은 ‘공감’을 통해 하느님과 사람이 인간의 실존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해명한다. 인간의 영혼, 그 안에서 이뤄지는 공감의 인식은 이성과 지성을 통한 ‘공감적 인식 능력’이 신적 존재에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신적인 삼위일체의 역동적 관계와 그 가능성을 창조와 함께 물려받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라면서 “성서의 전통은 인간의 이러한 공감능력을 <아가서> 안에서 표현했고, 그리스도교의 전통에서는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부’로 교회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이는 초월을 공감하는 인간의 열린 가능성을 재확인하고 이 가능성을 매개로 이뤄지는 선험적 관계의 세상을 회복할 수 있는 근거다.”라고 정리했다.

가톨릭여성연구원과 가톨릭여성신학회는 해마다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매 해, 3.8여성의날이 있는 주간 토요일에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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