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청춘 - 변지영]

스스로 바리사이가 되지 말자고 다짐할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내 편의를 위해 옳은 것마저도 바리사이화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될 때가 많다. 사실 그 경계란 참으로 모호하고 주관적이다. 그럴 때 큰 지침이 되는 분들이 바로 성인들, 그중에서도 순교자들이다. 순교자 성월은 참 신앙이 무엇일까 묵상하기에 참 좋은 달이다. 더불어 물드는 나뭇잎과 날로 청명해지는 하늘이 그 묵상을 수월하게 한다.

지난 11일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서가대연)에서 대전교구 갈매못 순교성지로 순례를 다녀왔다. 충남 보령에 있는 갈매못은 마을 뒷산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못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갈마연’(渴馬淵)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제는 목마른 말이 아니라 지친 현대인들이 생명의 물을 마시는 생명의 땅이라 하여 그 이름마저 영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300-500명의 신자가 이 갈매못에서 순교당했다고 전해지는데, 10명의 순교자만 이름이 전해지고 그중 5명은 한국 교회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었다. 바꿔 말하면 조선 당시 꽤 죄질이 나쁜 중죄인들이었다.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의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성 오메르트 베드로 신부, 성 위앵 마르티노 신부, 성 황석두 루카, 성 장주기 요셉이 그들이다. 이 5명의 성인은 1866년 3월 3일 성 금요일에 동시 처형되었고 1984년 여의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성 황석두 루카가 위협당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이미지 제공 = 변지영)

지상의 과거를 포기하고 천상의 과거를 준비하다

아무래도 본격적인 사회 진출을 앞둔 마지막 학기 대학생이다 보니, 성 황석두 루카의 삶이 가장 와 닿았다. 충청도의 부유한 양반가 자제였던 그는 글 선생에 의해 천주교에 입교한 이후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 교리서 공부에 매진했다. 글로 쓰면 한 문장이지만,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면 그 때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관직에 오르지 않고 서학에 빠졌다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결심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목을 작두에 넣으라고 하는 등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마침내 황 루카 성인의 믿음에서 어떤 진리를 느끼고 자식을 따라 온 가족과 함께 입교한다. 1845년 페레올 주교가 조선에 도착한 후로 주로 선교사들을 도왔으며 20여 년 뒤 성 다블뤼 주교가 자수하자 그를 따라 자수해 함께 순교한다.

선교사도 온전한 성사도 없던 시대에, 학문으로 천주교를 접하게 된 우리 조상들은 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것을 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무엇이기에 그 진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목숨마저도 버릴 수 있다고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것을 머리로 이해할 수 없기에 신비라고 느낀다. 그 신비의 은총으로 지금까지 한국 천주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수많은 이들의 신앙의 뿌리가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이들을 위하여 십자가형에 처해졌기에,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되었듯 (2코린 5,15)이 말이다.

▲ 서가대연 갈매못 성지순례단. ⓒ변지영

순교는 못해도 순교를 청하며 살아가는 우리

나는 순교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순교란 무엇일까? 아주 작은 예지만, 때때로 식전 기도를 하기에 힘든 분위기를 만나면 합리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성호경을 긋는 행위가 비신자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지 않은가. 마음으로 기도해도 되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순교자는 충효예를 모르는 천하의 후레자식이요, 자기 밥벌이도 못하는 실패자요, 조선의 안위를 위협하는 범법자였다. 그래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아닌 것은 아니라 말하며 목숨을 바쳤다. 150년이 넘게 지난 오늘 그들은 성인 품에 올랐지만, 오랜 시간 여전히 사회부적응자요 아까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극단적으로 그 당시의 방법을 따라 순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의 순간 순간에 갈등의 상황이 찾아올 때 선에 가까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물론 어렵다. 국내 카페에서 파는 커피가 대부분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것이라 하여 카페에 절대 가지 않았던 선배를 보며 혼란스러웠었고 지금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것을 무조건 세속적인 것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신앙생활을 못하다시피 하는 사람을 보며 그 사람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이 세상은 복잡하고 어렵고 어느 한쪽이 무조건 악이고 선이라고 할 수 없는 곳이다. 더군다나 인간은 때론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지 않은가.

적어도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순교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에서 신앙의 의미를 찾는다. 그것이 삶의 방향이 되고, 가치관이 되고, 마침내 우리에게도 순교와 배교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신앙인이 되기를 청하며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다섯 명의 순교 성인은 모두 자수를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자수를 한 이유는 자신들의 처형이 곧 극심한 박해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해가 심해질 때마다 선교사들은 거의 자수를 했다. 성 다블뤼 주교는 목자가 어떻게 양 떼를 저버리냐며 다리가 으스러지는 고문 속에서도 한 사람의 교우의 이름도 대지 않았다. 타인을 향한, 세상을 향한 사랑도 때로는 순교다. 그 사랑 때문에 내가 곤란해지고 고통받더라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면 비록 목숨을 바치진 않을지라도 그것이 순교다. 많은 순교자가 흘린 피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신앙의 가치들을 일깨워 준다. 점차 진하게 붉어지는 단풍과 그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생각하며 이 가을을 값지게 살아가야겠다.

 
 
변지영(스텔라)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58대 의장
숙명여대 가톨릭학생회 글라라 57대 회장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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