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청춘 - 변지영]

가톨릭 학생회 ‘여름 생태 농촌 공소 활동’을 회상하며

가톨릭 학생회의 여름 방학은 농활로 시작한다. 작년은 메르스로 농활이 취소됐고, 우리의 마지막 농활은 2014년이었다. 대학 생활의 마지막 여름 방학인데, 이번엔 아쉽게도 농활에 참여하지 못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말고 살자던 다짐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느끼다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가톨릭 학생회 회원들이 농활에 참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농활을 회상해 본다.

▲ ⓒ변지영

2014년 농활의 기록: 갓 지은 밥이 그리웠던 자취생, 안동으로 떠나다!

드디어 종강이다. 바쁘고 치열했던 한 학기가 끝났다. 고등학교때 꿈꿔 왔던 캠퍼스의 낭만이라곤 없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3학년 1학기였다. 분명히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열심히 생활한 것 같은데, 왜 되돌아보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마냥 전전긍긍한 것 같은 기분일까. 다들 열심히 하지만,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게 왠지 양심 없게 느껴지는 각박한 우리 청춘들. 자취방에 굴러다니는, 언제 먹었는지 모를 라면과 빵 봉지들은 기말고사 기간 동안의 내 삶을 보여 주고 있었다. 문득 제대로 된 밥, 갓 지은 따뜻한 밥이 먹고 싶었다.

어쨌거나 방학은 시작되었고 숨 막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재충전할 필요가 있었다.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흙 속에서 자연의 생명력과 하느님의 창조 신비를 느끼라고, 농활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여름 생태 농촌 공소 활동’. 다시 없을 청춘의 여름, 생태의 일부로 돌아가 흙냄새 물씬 나는 농촌에서 공동체의 이름으로 사람 사는 세상의 정을 한껏 느끼는 10박11일간의 선물.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이 생명 농업을 추구하는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와 함께 생태 농활을 진행해 온 지 벌써 15년째다. 우리는 단순히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돕는 것을 넘어서 ‘가톨릭 학생회’라는 정체성을 삶에서 몸소 실천하고 있다. 또한 복음화를 위해 모인 젊은 신앙인들로서, 우리의 농활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함께 하며, 신앙 공동체로서 관계 속에서 기쁨을 느끼기 위해 일치와 겸손의 미덕을 행한다. 인스턴트나 가공식품,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먹을거리, 샴푸와 세제 대신 천연 비누를 쓰며, 일회용품과 화장품이 없고, 핸드폰과 모든 전자 기기로부터 벗어나 최대한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생태의 일부로 살아가자는 농활.

계절 학기도 포기한 채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사서 고생하려니 선뜻 나서기에 고민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농활을 다녀온 사람들은 다른 것을 모두 포기하더라도 다음 해에 또다시 농활을 가곤 했다. 왜일까? 나도 작년에 경험한 첫 농활을 통해 선배들이 다녀와야 안다던 그 이유를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 ⓒ변지영

우선,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 잊었던 우리의 참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요즘 우리는 모두 ‘꿈’이 비슷하다. 3학년이 되니 공무원 시험, 취업을 준비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분명 초등학교때 우리가 생각했던 20대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나는 그 이유가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 모습은 들여다보지 않고 세상이 말하는 ‘잘난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풀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아직 때 묻지 않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잔디밭에 누워 읽는 책과 해질 녘에 밥 짓는 냄새 맡으며 타는 자전거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고 있는 진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 길에서는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적응하려 노력해도 서울보다는 고향에 자꾸만 돌아가고 싶어 하는 나 자신과 나를 그렇게 창조하신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농촌 생활이, 이곳에서 우리 땅을 지키며 살아가시는 그분들의 삶이 ‘진짜’라고, 내 마음이 요동치며 외치는 것이었다. 나 자신에게 귀 기울일수록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또 매년 농활을 고대하게 되는 큰 이유는 ‘정’이다. 여름 생태 농촌 공소 활동은 초대 교회의 모습을 닮은 신앙 공동체의 모습처럼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열흘 동안 돌아가면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일과를 마친 뒤에는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기도로 마무리한다. 농활 첫날만 해도 어색해서 어쩔 줄 몰랐던 우리는 어느새 오랜 친구처럼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어르신들도 우리를 친자식처럼 대해 주시는데, 아낌없이 주시는 그분들의 모습을 통해 대인 관계에서 득과 실을 따지며 서로를 재는 우리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우리가 밭을 망치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고마워하시며 밥이며 새참이며 막걸리며 남아나는 것 없이 베풀어 주시니, 우리는 그분들의 농작물이 풍성한 열매를 맺길 바라며 정성껏 최선을 다한다.

▲ ⓒ변지영

보시니 참 좋은 세상을 위하여 배우는 시간

본디 사람 사는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게 창조되었을 것이다. 분명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돕고 아끼며 ‘보시니 참 좋은’ 공동체를 이루길 바라셨을 것이다. 이 공동체에는 인간만 포함되는 게 아니다. 우리의 형제 하늘과 땅과 나무, 흙, 그 모든 것이 서로를 위하여 살아가는 세상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 속에서야 비로소 우리들은 참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창조된 존재인데 현대 사회의 ‘부자연스러움’, 서로 싸우고 이겨야 하는 경쟁적 존재로 전락한 세태 때문에 손에 쥔 것이 많아도 행복을 느끼기가 힘든 건 아닐까.

그렇게 열흘 동안 따뜻한 밥을 실컷 먹었다. 처음엔 그렇게 밍밍하던 조미료 없는 음식들. 이제 그 맛이 그리워서 한동안 향수에 젖어 있을 내 모습이 보였다. 열흘 동안 정들었던 우리 공동체 사람들을 꼭 안으며 서울로 돌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깨달았다. 함께한다는 것,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본성으로 심어 놓으신 공동체적 가치를 잊지 말고 이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데워 나가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서울 가서도 연락하라고, 밥 잘 챙겨 먹고 다니라고 말씀하시는 어르신과 포옹하며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 우리 쌀을 샀다. 내가 먹는 음식들이 나를 이루고 나는 생태 일부로서 활동하고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나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단지 나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지켜나가야 할 아름다운 자연 공동체를 위한 작은 발돋움이기도 했다. 밥 짓는 냄새를 맡으며 농활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그곳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오늘도 감사 기도를 드린다.

 
 

변지영(스텔라)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58대 의장
숙명여대 가톨릭학생회 글라라 57대 회장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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