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청춘 - 변지영]

“....공연을 보는 내내 울고 웃으면서 모든 감정을 쏟아 냈어요. 공연이 다 끝났는데도 차마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앉아 기도했어요. 뮤지컬 배우가 돼서 저 배역으로 무대에 서게 해 달라고. 어린 시절 이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봤어요.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제 인생을 180도 바꿔 놓은 게 ‘맨 오브 라만차’니까요.” (<객석> 2014년 1월호)

나에게는 아직 그런 극적인 순간이 찾아오지 않은 것일까? 그래서 무엇 하나에 열중해서 노력하지 않는 것일까? 그의 피나는 노력과 일에 대한 열정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그가 일찍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내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라는 인간적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도 그런 일을 찾아냈다면 지금보다 열심히 살고 있을 텐데'라는 스스로에 대한 변명과 함께. 소문난 노력파 배우 조승우의 인터뷰를 우연찮게 읽다가 든 생각이다.

평생 좋아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는 요즘 진로 고민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 나름대로 뚜렷하다고 느꼈던 진로 이전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겨 버려서 다시 고민 중이다. 졸업한 선배를 만나며 이런저런 조언도 듣곤 했는데 선배들의 조언은 대체로 이러했다.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 해야겠다고 느끼는 것. 흥미와 재능, 그리고 소명 이 세 가지 기준 속에서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오래도록 원하는 길을 걷는 데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의외였던 것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뭘까’에 대한 답이 가장 쉽지 않았다. 물론 일이라는 것이 좋은 것만 골라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흥미가 떨어질 때마다 때려치고 무작정 다른 일을 찾아 떠날 순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라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어떤 속시원한 대답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름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답은 꽤나 낼 수 있었다. 가톨릭 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끊임없이 묻는 질문, ‘나는 어떤 도구로 쓰일 것인가’는 소명의식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런데 소명의식에 대한 자긍심에 눈이 먼 것인지 무의식 중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는 상대적으로 한가한 질문으로 여겨 왔다. 그런데 이 질문은 정말 중요하다. 어쩌면 이 질문이 오늘날 가톨릭 학생회의 방향성이 돼야 할지도 모른다.

▲ 돈키호테. (사진 출처 = pixabay.com)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돌아보니 늘 ‘단체 행동’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우리가 가톨릭 학생회의 이름을 걸고 사회에서 유의미한 운동을 진행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지난 선배들의 역사를 읽을 때마다, 또 요즘 가톨릭 학생회원은 왜 어느 농성장이나 광화문에 가도 보이지 않느냐는 물음을 들을 때마다 체념한 듯이 생각하곤 했다. 이제 더 이상 가톨릭 학생회의 이름으로 사회 운동을 하는 것을 꿈꾸지는 말아야 한다고, 애초에 시대착오적 발상이었다고 말이다. 가톨릭 학생 운동에서 사실상 ‘운동’의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인데 붙잡고 있으니 이렇게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운동(movement)이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힘쓰는 일. 또는 그런 활동’. 운동의 정의에는 반드시 단체 행동이어야 한다는 말은 없다. 그간 운동의 의미를 혼자서 아주 좁게 해석하고는 그 의미에 걸맞지 않다고 우리 단체와 학생들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을까?

요즘 대학원을 준비하느라 바쁘다는 한 친구는 가톨릭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자기 적성을 찾았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지금은 그것에 열중하는 중이다. 취업 준비 중인 다른 한 친구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갈피를 잡고 그에 필요한 노력을 하는 중이다. 그것도 가톨릭 학생 운동이다. 그렇게 사회인이 되었을 때 자기 직분에서 우리 가치를 잃지 않고 살면 된다.

“가톨릭 학생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생활화에 있어야 한다. 학생 운동에 앞장 섰던 학생회 출신들이 학생 신분을 떠나 사회인이 되었을 때 가톨릭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가톨릭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고 사회에서 등불의 역할을 실천해야 한다.”

1997년에 선배들이 남겨 놓은 글이다. 사회의 등불은 매일을 땀 흘려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모든 이들이다. 행복 없이는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 길로 나아가는 것. 단, 그 행복이라는 게 나 혼자의 안위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공동체적 행복이라면, 행복 추구가 곧 사회 복음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운동을 잃었다기보다는 다른 형태의 운동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졸업을 앞두고 이룬 것 없는 4학년의 합리화가 아니다. ‘삶과 신앙의 일치’, ‘우리 사회의 복음화’.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라면 끊임없는 기도와 성찰로서 당신이 주신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물으며 행복을 찾아나서는 것은 훌륭한 방법이다.

▲ (이미지 출처 = <빅이슈> 소개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극적인 순간을 기다리던 나에게

비가 억수로 퍼붓던 며칠 전,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한 <빅이슈> 판매원이 엄청난 인파 속에서 어색하게 <빅이슈>를 들고 서 있었다. 그냥 지나가다가 도저히 그냥은 못 지나치겠어서 한 권을 샀다. 그분이 너무 고마워하셨다. 오늘 한 권 파셨다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왜 <빅이슈>가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을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지?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를 해 볼까? <빅이슈>가 다른 잡지들에 비해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분석글을 써볼까? 그분은 어쩌다가 홈리스가 됐을까. 사람들은 홈리스가 사회의 문제이기보다는 순전히 개인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공부를 더 한다면 이런 연구를 해보고 싶다.’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많으면서 하고 싶은 것은 찾지 못했다고 지난 대학생활이 허송세월인 것마냥 느껴졌었는데,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들 중에 반드시 좋아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찾았으면서 실천력이 없어서 꺼내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배우 조승우가 뮤지컬 무대를 보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던 그 순간처럼, 이미 내게도 몇 번이고 그런 순간이 지나갔을 것이다. 비 오던 날 <빅이슈> 판매원을 봤던 그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수많은 물음과 다짐들. 그런 순간이 내 인생에선 분명 몇 번이고 있었다.

‘당신은 꿈꾸고 있는가?’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우리에게 묻는 궁극적 질문이다. 행복을 찾아,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길을 향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 꿈이 마침내 이 땅에 사랑과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변지영(스텔라)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58대 의장
숙명여대 가톨릭학생회 글라라 57대 회장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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