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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광화문, 2016년 여름 탈핵순례를 마치며- 조현철

광화문에 서니, 우리 사회의 현안들이 연이어 떠오릅니다. 진상규명도 없이 그냥 덮어 버리려는 세월호 참사, 세월호 참사를 빼다 박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물대포 직사로 200일이 훌쩍 넘도록 사경에 빠져 있는 백남기 농민과 농업, 노동구조 개편, 국사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밀실 합의, 개성공단 폐쇄, 사드, 설악산을 비롯한 전국적 산지 개발 사업, 그리고 핵발전소와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문제.

이 모두가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엄중한 문제들입니다.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정부가 있습니다. 헌데, 문제의 해결사가 아니라 문제의 원인으로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현 정부는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는 데 이골이 났습니다. 신고리 5, 6호기는 우리나라 탈핵을 앞으로 100년은 능히 지연시킬 문제, 해당 지역 주민 대다수가 결사반대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세 번의 회의로 건설을 허가했습니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은 무늬만 공청회를 한 번 열고, 정부 마음대로 하겠답니다.

도대체 제대로 된 해명이 없습니다. 어떤 건 무능해서 못하고, 어떤 건 책임이 있으니 안 합니다. 불리한 게 드러나면 묵살하고, 자기 뜻과 다르면 호통칩니다. 사람들 몰아붙이느라 들이대는 게 경제고 안보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국가의 안위가 달린 문제라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합니다. 다른 의견을 말하면, 불순세력이고 외부세력입니다. 자기들을 위해선 대단히 뛰어난 정부지만, 국민들에겐 정말 고약한 정부입니다.

복음에도 고약한 인물이 등장하곤 합니다. 돈을 종들에게 맡기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여기에 해당됩니다.(마태 25,14-30) 이 사람은 큰 사업가인 듯한데, 정상적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사람이지요.(마태 25,24) 전형적 사기꾼, 협잡꾼입니다. 여기에 폭력이 더해지면, 강도가 됩니다. 가능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보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늘, 비정규직 노동과 외주화로 수익을 최대화하려는 정부와 기업과 닮았습니다.

   
▲ 핵 폐기물.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이제 주인이 세 명의 종에게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를 맡기고 여행을 떠납니다. 탈렌트는 단위가 큰 돈입니다. 한 탈렌트를 대략 5억 원이라 하면, 주인은 25억 원, 10억 원, 5억 원이란 큰돈을 맡긴 것입니다. 돈을 그냥 맡겼을 리가 없지요. 가능한 많은 이익을 남길 것,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주인의 암묵적인, 그러나 추상 같은 지시입니다.

두 종은 주인의 뜻대로 일을 잘해서, 원금을 모두 배로 늘렸습니다. 자본이라곤 거의 땅과 가축이었던 당시에, 돈을 그렇게 많이 벌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돈을 그렇게 많이 늘렸을까? 주인은 돈을 그대로 땅에 묻어 놓은 종에게 이렇게 호통을 쳤습니다.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대금업! 주인은 아마 고리대금업자로 잔뼈가 굵었는지 모릅니다. 두 명의 종도 아마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늘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동족을 상대로 한 돈놀이는 금지되어 있었습니다.(신명 23,20-21) 하지만 효율적 돈벌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심지 않은 것을,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려는 주인이니, 이익만 많다면 율법이야 문제가 아니었겠지요. 두 종은 이 고약한 주인의 충실한 하수인이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주인에게 충실한, 사람들에게 고약한 하수인들은 지천으로 널렸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하느님나라를 설명하는 데 왜 이런 고약한 인물들을 예로 드셨을까요? 아마도 예수는 이들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려는 곳의 현실을 제자들에게 일깨우려고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못 되고 힘 있는 사람들이 행세하는 곳이 예수가 처해 있던 현실 세계였습니다. 하느님나라를 거스르는 세상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토록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내용과 방식은 아니지만, 그 노력만은 정말 배울만 하지 않은가. 하느님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바로 이런 사람들과 맞서야 합니다.

한 탈렌트를 받아 그대로 땅에 묻어두는 종처럼 하면, 우리는 영락없이 집니다. 최선을,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돈이나 귀중품을 땅에 묻어 보관하는 것은 당시의 관행이었습니다. 이 종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한 것이니,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하느님나라를 실현하려면, 반드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예수께서 이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 오는 메시지입니다.

한데, 의문이 듭니다. “그래, 그렇게 결심했다고 치자. 하지만 과연 우리가 저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핵없는 세상’을 내걸고 순례에 나선 우리의 행색과 저들의 위세를 비교해 보십시오. 저들은 매년 100억이 넘는 돈으로 “깨끗하고 안전하고 경제적인” 원자력을 홍보합니다. 사람들을 세뇌합니다. 힘으론 도대체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 예수도 그런 처지가 아니었나요? 예수는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지만, 당시에는 갈릴래아, 유대 변방의 예언자 정도로 알려졌을 뿐입니다. 빌라도나 헤로데 같은 정치 권력자들, 율법학자, 바리사이, 사두가이 등의 종교 권력자들의 힘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 1,27)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방식은 ‘역설의 원리’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일을 이루기 위해 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강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믿고, 자신들의 뜻을 추구합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생존과 번영의 수단으로 자신의 힘에 집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은 상대에게 패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친히 보호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으면,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이스라엘은 이겼습니다.

   

▲ 2016년 여름 탈핵 순례 중인 조현철 신부. ⓒ장영식

내 자리를 떠나고 내 것을 놓으면서, 순례가 시작됩니다. 순례는 하느님을 믿고 떠나는 것입니다. 순례는 약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런 우리를 선택하십니다. 내 것을 내려놓은 나는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뢰에서 오는 힘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역설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니,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땅 파서 내 것을 안전하게 챙기는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우리도 두 탈렌트나 다섯 탈렌트 받은 사람들처럼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저들이 돈과 힘으로 자신을 채우면 채울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비워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더욱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 사랑의 역동성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비우고 타자를 채울 때, 충만해지는 역설적 존재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저들의 거짓 속임수,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됩니다. 죽음의 길을 생명의 길로 착각하지 않게 됩니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첫째, 개인적으로는 “검소함으로 되돌아가는 것”, 검약과 절제의 덕을 생활화하는 것, “작은 것들의 진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222항) 둘째,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생태적 회개는 바로 이런 모든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연민과 연대의 삶, 관심과 돌봄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개인의 생태적 회개를 사회의 변화로 이어가려면, 하나가 더 필요합니다. “사회 문제들은 단순히 개인적 선행의 총합이 아니라 공동체의 협력망을 통하여 해결해야 한다.”('찬미받으소서', 219항) 개인의 회개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공동체 차원의 노력, 협력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다양한 공동체의 협력망을 통해서, 우리 개인의 변화를 사회 변화로 이끌어 내야 합니다.

내년에 대선이 있습니다. 우리 삶을 위해 너무나 중요한 선거입니다. 우리 모두 전력을 다해 개인의 변화, 공동체의 협력망으로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비롯한 주요 사회현안이 대선 공약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동시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 취소 소송에 참여하는 것,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태양광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 확충을 촉구하고 소형이라도 직접 사용해 보는 것, 검약과 절제의 삶으로 에너지를 적게 쓰는 쪽으로 변화하는 것.

전력을 다해 햇빛과 바람을 모을 때, 우리 마음과 힘을 모을 때, 세상이 변화하고 하느님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신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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