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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와 그리스도인 시민살이[시사비평 - 황종열]

사드 체계 배치 결정 과정에서 시민들

2016년 7월 7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종말단계 고고도 지역방어 체계)를 배치할 것을 최종 결정하였다. 다음 날 한국과 미국의 공동실무단은 이같은 사실을 공식 확인하였고, 국방부는 7월 13일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 있는 성산포대를 배치 부지로 결정하여 발표했다. 국방부에 의하면, 이것은 한미 양국의 국방부 장관에 의해 승인되었다.(기사링크) “한미 공동실무단은.... 사드체계의 군사적 효용성을 극대화하고, 지역주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건강과 환경에 영향이 없는 최적의 배치 부지로서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건의하였고, 이에 대해 양국 국방장관이 승인했습니다. 주한미군의 사드체계를 성주 지역에서 작전 운용하게 되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 전체의 1/2에서 2/3 지역에 살고 계시는 우리 국민의 안전을 더 굳건히 지켜드릴 수 있고, 원자력발전소, 저유시설 등과 같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설과 한미동맹의 군사력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게 될 것입니다.”(기사링크)

   
▲ 한민구 국방부 장관. (이미지 출처 = flickr.com)
그런데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7월 5일에 열린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사드를 한국에 배치할 것인지 여부와 배치 지역과 관련해서 “결정된 바 없다”고 답변하였다. 7월 5일까지도 사드 배치 여부와 부지 선정과 같은 결정적 사항에 대해서 국방부 장관이 결정된 것이 없다고 답한 것이다. 그런데 불과 이틀 후인 7일에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하고 그로부터 6일 후에 사드 체계를 운영할 장소를 최종 결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실제로 7월 11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6월 말에 그 자신이 구두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는 이미 7월 5일에 사실상 사드 배치와 관련한 결정 사항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한국과 미국은 2016년 2월 7일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었고, 한 장관이 직접 2016년 6월 4일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 공식 연설을 하는 가운데 사드 배치에 대해 한국의 안보와 국익의 관점에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확인한 적이 있었다.(기사링크) 그럼에도 그는 이토록 중대한 국가 정책이 논의되는 국회에서조차 저렇게 발언했던 것인데, 이것은 그와 사드 정책 결정자들이 국회와 시민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증거하는 한 단적인 사례다.

2015년 10월 29일에 사드 제작사 록히드마틴 부사장인 마이크 트로츠키가 한국과 미국의 당국자들 사이에서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하여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바로 다음 날 홍보부사장을 통해서 이를 번복하였다.(기사링크) 하지만 2016년 2월에 다시 록히드마틴의 미사일 담당 전략커뮤니케이션실장 셰릴 아메린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는 (이를 최종 결정하는) 한미 양국 정부가 정확히 답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한국과 미국에서 사드 배치에 대한 논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기사링크) 기업이 아는 사실을 한민구 장관이 모를 가능성은 없다. 결국 한 장관과 국방부 관계자들은 지금 권력에 붙들려서, 다른 나라들만이 아니라, 국민을 대상으로 해서조차 가치부전(假痴不癲)이라는 전술을 사용하듯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드 체계와 관련해서 군사 전문가들인 한민구 국방장관을 비롯하여 국방부 관계자들이 왜 그렇게 일관성도 없고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 진술을 하는지, 왜 그렇게 납득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는지 설명해 준다.

더불어민주당의 기동민 의원이 7월 13일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사드 배치 결정이 내려진 것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독단적 결정에 의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자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은 이 결정은 국가 기관들 가운데 유관 기관들과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검토하고 협의해서 내린 결과였다고 말하였다. 이 비서실장이 말하는 유관 기관과 전문가들이란 어떤 기관 어떤 전문가들인가? 사드 체계가 배치될 지역 국민들과는 어떤 절차를 밟으며 동의를 이끌어 냈는가? 정부가 이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성주 지역 관계자들과 시민들의 의사를 수렴하는 시도를 했다는 증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사드 체계가 들어설 곳으로 결정된 성주 지역 주민들이 가장 근본적으로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을 밀어내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국가 국방 정책 결정. 이것이 사드 문제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슬픈(sad) 사드다. 국민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작전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고, 성주 주민들은 그동안 믿어 온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과 정부 행정 관료들이 그들을 대하는 근본 태도가 어떤 것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 황교안 국무총리.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황교안 국무총리는 배치 지역 발표 당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서 장석춘 의원에게 “사드 배치 지역 선정 전 왜 지역주민과 협의가 없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되물었다. “어디에 (사드를) 전개할 것인지 사전에 협의를 하면 이것이 잘 진행되겠는가.” 그러면서도 그는 “지역의견을 수렴해서” 배치 지역을 성주로 결정했다고 진술하였다.(기사링크) 하지만 김항곤 성주 군수도 몰랐다 하고 성주 주민들도 몰랐다면서 많은 성주 시민들이 사드 배치 자체를 거부하며 존재를 걸고 반대하고 있다.(기사링크) 이들은 단순히 사드 체계에 있는 레이더에서 발산되는 전자파로 성주 주민이 얼마나 피해를 입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넘어서 사드 자체가 한국에 배치될 것인가를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들과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인사들과 언론들은 지속적으로 사드 배치를 성주 사건으로, 성주 주민에 대한 전자파 문제로 축소해서 성주 밖 한국민과 사드의 상관성과 사드 배치의 국제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데 주력해 왔다. 하지만 7월 15일 성주 주민들에게 이런 논리로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설명하러 갔던 황교안 총리가 6시간 동안 주민들 앞에 나서지조차 못할 정도였다. 성주 주민들은 단순히 사드 체계의 전자파 위험만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구촌 전체의 평화와 사드가 어떻게 상관되는지, 이런 틀에서 성주 주민들의 노년 장년 세대와 청년 세대와 청소년 세대와 미래 세대의 삶의 질에 이것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식별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그들은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애국심에 호소하는 가운데 주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는 황교안 총리에게 절차의 비민주성과 전자파 위험 축소, 북한 위험을 앞세운 도피, 말과 행동의 모순 등을 지적하며 격렬하게 비판을 가했다.(기사링크)

성주 주민과 전국의 시민들 가운데서 저항이 거세게 일자 박근혜 대통령은 8월 4일 새누리당 의원들을 만나서 “군에서 추천하는 지역이 있다면 성주군 내에 새로운 지역을 면밀하게 검토하도록 해보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국방부도 “사드 배치지역으로 결정된 성산포대 외 다른 부지 검토 가능성에 대해 일축해 왔던” 입장을 바꿔서 “해당(경북 성주) 지방자치단체에서 성주지역 내 다른 부지의 가용성 검토를 요청한다면 자체적으로 사드 배치 부지의 평가 기준에 따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기사링크) 하지만 성주 주민들 가운데 부지를 다른 곳으로 바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드 배치 자체를 반대한다는 입장이 나오고 청와대와 국방부는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성주 성산 포대 외에 다른 곳들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질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면서 국민과 함께 결정해 가는 정도를 걷지 않은 정책 집행이 21세기에 얼마나 어려운가를 대통령부터 여러 관료들과 국방 관계자들이 깊게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 정책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국방부 장관은 사드와 관련해서 전자파의 위험이나 배치 결정 과정에 대해서 아는 사항들도 모르는 척하고 있다. 그리고 국무총리는 시민 당사자들은 피력해 본 적도 없는데도 의견 수렴을 거친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그들이 결정한 것을 성주 주민들과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중이다.

참으로 저 나라 밖 외부에서 날아와서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국방부 장관도 모두 이상한 존재들로 만들어 놓아서 성주 주민들과 이땅의 뜻있는 시민들이 떨쳐 일어나게 만들고 있다. 4대강에 가한 폭력 사건으로 민족과 민중 가운데 생태 의식을 고양하고, 세월호 참극으로 민족 사회가 부정과 부패와 탐욕의 상관 구조를 직시하고 반성하며 새로운 질서를 그려가게 되었다. 이제 무기력하고 종미적이며 비전 흐린 집권자들이 사드 체계 배치 문제를 일으켜서, 김제동의 표현을 빌리자면 “종북이 아니라 경북” 성주 시민들이 앞장서서 반 민주 독단 세력이 누구인가를 드러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평화의 의미와 규모를 식별하여 보다 더 건강한 평화의 일꾼들로 깨어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사드 체계 배치 결정자들

   
▲ 주한미군사령관 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김종대 현재 정의당 국회의원이 2014년 11월에 쓴 글에 의하면, 같은 해 6월 3일 주한미군사령관인 커티스 스캐퍼로티 대장이 한국국방연구원이 주관하는 조찬 포럼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사드 배치를 미국에 추천했다고 밝혔다. 이보다 약 100일이 지난 9월 30일에 로버트 워크 미국 국방부 부장관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미국외교협회 간담회에서 “사드 1개 포대를 한국에 배치할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매우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면서 “부지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까지 말하였다. 그는 “사드 배치가 옳은 결정인지를 놓고 한국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까지 밝혔다. 워크는 사드가 “매우, 매우 중요한 국가적 수준의 결정”을 요하는 “전략적 자산”(strategic assets)이라고 진술하면서, 이것을 배치하는 결정은 “펜타곤 수준이 아니라 대통령 수준”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에 대해서 이미 러시아와 중국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고, 미국은 이 두 나라 핵심 세력에게 사드가 전략적 미사일방어체제가 아니라고 해명하며 계속 협의하고 있으나 “이들 나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진술하였다.(기사링크)

우리나라 국방부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응답했는가? 김종대는 이렇게 진술한다. “뒤늦게 한국 정부는 ‘그 어떤 협의도 한 적 없다’며 일체 이를 부인한다. 10월 초에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는 ‘사드에 대한 일체 논의가 없었다’고 양국 정부는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김종대는 “다시 사드 배치에 대한 신중론으로 돌아선 양국 정부는 지난 5개월간 전개된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사드 배치 논쟁을 이제 수습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김종대는 당시 “당장 배치할 무기체계도 아닌 것을 한, 미 간에, 또한 미, 중 간에 중요한 의제로 부각시킨 국제정치의 배후 논리가 과연 무엇이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여러 추론을 제시한 뒤에 결론적으로 말한다. 미국 정치권과 군부 세력이 “북한 핵 미사일 공포에 떠는 한국을 잘만 활용하면 사드 생산 재개에 소요되는 자금, 더 나아가 150억 달러가 소요되는 괌의 미군기지를 조성하는 데 한국정부가 돈을 댈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보는 데는 근거가 있었는데, 실제로 2014년 9월 15일 발간된 미국 의회조사국이 낸 ‘괌: 미군 군사력 배치’ 보고서에서 “한국정부에 괌 기지조성 예산을 대”게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김종대, 같은 글)

이런 맥락에서 김종대는 군사전문가로서 사드 무기체계의 성격과 이 무기체계가 갖는 여러 결함 등을 고려해서, 당분간이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이런 일은 당분간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한 데는 사드 무기 체계를 아는 한국의 국방부에 대한 신뢰도 작용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여러 차례 ‘고고도요격시스템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북한을 방어하는 적합하지 않은 무기체계’라며 이를 도입하지 않을 뜻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이 요격시스템을 도입하면 북한 미사일 기지와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오키나와 남방의 동중국해로 이지스함을 보내야 하는데, 이럴 경우 한국방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사드 도입에 사활을 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김종대, 같은 글) 그런데 2년이 채 못 된 시점에서 우리 정부는 사드 체계를 성주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정치적 답은 김종대 의원이 사드 배치가 공식화된 뒤 7월 26일에 가진 한 강연에서 사드 배치 결정과 박근혜 대통령과 상관성에 관하여 한 진술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7월 7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열렸는데 사드는 공식 안건에 없었다. 이 회의에 참석하는 장관도 몰랐는데 청와대의 긴급 안건으로 올라왔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말했다.”(기사링크) 미국에서 사드 배치를 대통령이 결단해야 할 중대 사안이라고 했다는 것을 위에서 보았다. 여기에 비추어 볼 때 배치될 지역 국가의 대통령의 결단 없이 이런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은 없다. 결국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사드 배치 결정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와 국방부와 군수업체가 주도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그리고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가 전격적으로 받아들여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실무를 맡았던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군사 전문가들과 가장 결정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외무부 장관과 외교 라인조차 최종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실질적으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 사드. (commons.wikimedia.org)

사드 체계 배치 이유

그러면 이들이 이렇게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은 북한의 핵 위협과 대량파괴무기와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체계 구축을 이유이자 목적으로 말한다.(2016년 7월 8일 국방부 발표) 박근혜 대통령은 8월 2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이 핵 능력을 고도화시키면서 핵 탑재 탄도미사일의 성능을 끊임없이 향상시키고 있는 상황인데도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멈추지 않고 있어서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원하는 우리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막는 데 지혜와 힘을 모아” 줄 것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이들의 이같은 주장의 정당성은 사드 무기 체계를 알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다.

사드는 인간이 추구하는 문명화의 맥락에서 보아야 깊이 보인다. 문명은 시간과 거리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 가는 과정이다. 인간이 지성의 연대를 통해 자연 안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을 통해서 자신들의 노동을 매개로 문명을 이루어 간다. 그런데 사드는 이런 문명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여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려는 형태로 작용하는 인간 욕망의 산물이다. 실제로 인간은 돌에서 도끼로 칼로 창으로 화살에서 총과 대포로 무기 체계를 발전시키면서 거리와 시간을 지배하는 능력을 통해 상대를 제압하고 지배할 수단을 정교화해 왔다. 여기에서 비행기와 무기가 결합되는 단계로 넘어가고 이어서 핵무기가 결합되었고, 여기에서 다시 비행기를 뺀 미사일로 발전하면서 핵탄두가 결합된 미사일 체계로 변화해 갔다. 이제 미사일 거리는 점점 더 길어지고 정교함 면에서 더욱 발전해 갈 것이다. 사드는 이런 문명화의 여정 속에서 무기에 대한 탐욕과 집착이 낳은 결과물이다.

김종대는 사드를 이렇게 설명한다. “40-150킬로미터 상공의 고고도에서 요격하며 사거리도 200킬로미터에 달”하는 사드는 “적의 미사일이 발사 및 상승단계(boost phase), 중간단계(mid-course phase)를 거쳐 대기권에 진입하는 종말단계(terminal phase)에 진입할 때 요격(intercepts)하는 무기체계다.... 이 때문에 대응시간이 40초에 불과한 패트리어트보다 적 미사일이 종말단계에 진입하는 130초 정도로 늘어난다. 패트리어트가 특정시설과 같은 거점(Spot)을 방어한다면 사드는 비행장이나 기지와 같은 지역(Area)을 방어한다.”(사드(THAAD) 한국배치라는 '유령논쟁') 이 사드 체계가 갖추고 있는 레이더의 정찰 가능 범위는 현재로는 반경 2000킬로미터에서 5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기사링크) 하지만 이 범위는 앞으로 개발에 개발을 거치면서 더 늘어날 것이다.

사드 한 개 포대는 통제소와 사격 통제 레이더 1대, 발사대 6기, 요격미사일 48발을 갖추게 된다. “미 육군의 기술교범을 보면 사드 레이더 AN/TPY-2의 위험반경은 130도 범위에서 최대 5.5킬로미터에 달한다. 이 안에는 항공기와 전자장비, 항공기 조종사와 정비 인원 등의 출입이 통제된다. 전자파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레이더 전방 100미터까지는 위험 지역으로 모든 사람의 출입이 차단된다. 전방 3.6킬로미터까지는 허가받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는 구역이다.(기사링크) 사드 체계의 핵심 장치인 레이더를 가동하는 데는 현재 일본 교가미사키 엑스밴드 레이더 기지를 기준으로 하자면 발전기 6대, 발전기 1대에 엔진 2개씩, 총 12개의 엔진이 가동되어야 한다. 이 엔진들이 내는 소음은 매우 강력한데, “발전기 소음은 미군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곳 주민 가운데 “전자파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기분이 나빠진다는 사람들도 있”고, “소음 때문에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잔다고 호소”하는 주민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기사링크)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한 것인가는 사드의 이같은 기능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좀 더 충실하게 판단할 수 있고 배치 지역 주민들의 직접적 관련성과 장기적 안목에서 통찰한 관련성 역시 보다 더 객관적으로 식별할 수 있게 된다. 단적으로 위에서와 같은 존재 이유를 갖는 사드 체계는 특히 성주에 배치될 경우 무엇보다도 먼저 북한이 보유한 고도가 낮은 단거리 스커드 미사일이나 장사정포로 수도권 지역을 공격할 때 사용될 가능성 자체가 없다. <시사인> 편집부가 최근 내놓은 기사에 의하면, 경상북도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과 관련하여 이메일로 질문하였다. 이에 대해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경제연구소 아시아전략센터 소장 게오르기 톨로라야와 미국의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존 페퍼, 전 국무부 정보분석국 분석관이자 동북아팀장을 지내다 2년 전 은퇴한 존 메릴 박사, 그리고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현재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인 브루스 클링너가 응답하였다.

   
▲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 브루스 클링너. (이미지 출처 = heritage.org)
브루스 클링너는 “서울 및 수도권 방어와 무관한 이곳에 사드를 배치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하는 물음에 이렇게 답하였다. “여러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다수는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기를 원한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국과 한국을 지키기로 약속한 미군이 더 취약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하지만 존 페퍼는 이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가장 큰 위협은 비무장지대(DMZ) 북쪽에서 서울을 겨냥한 포격(방사포)이다. 사드는 이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사드가 한반도 동남쪽에 위치한다는 것은 대다수의 한국 인구보다는 인근 지역의 미군기지를 지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존 메릴 박사도 이와 유사한 입장을 보이면서 이렇게 진술한다. “성주는 DMZ에서 멀기 때문에 북한이 새로 설치한 정확도 높은 다연장 로켓포(MRLs)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드 배치의 목적은 전시 비상사태에 미군 증강이 필요할 때 부산과 한반도 끝부분의 군사기지를 보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불행하게도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서울을 보호할 방법은 전혀 없다. 지리적으로 그렇다.”(기사링크)

페퍼와 메릴의 견해가 타당성을 띠고 있다는 것은 최근에 주한미군 측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 구상을 언급한 다음과 같은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한미군은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할 경우 수도권이 적 공격에 취약해진다는 지적을 보완하기 위해 경기 오산, 전북 군산, 경북 왜관 기지 등에 배치된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을 수도권으로 전진배치할 계획인 것으로 (2016년 8월 3일) 알려졌다. 또한 패트리엇과 사드가 형성하는 방어망 보완을 위해 고도 150-500킬로미터 고도에서 적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이지스함용 요격미사일 SM-3를 한반도 인근 해상에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기사링크) 이것은 사드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얼마나 군비 확장과 군비 경쟁을 발생시킬 것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군비 틀에 갇힌 한국. 우리에게는 이것이 한국 민족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복음적으로 질문하고 사목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사회 생태적 감각이 필요하다.

북한이 2014년 3월에 사거리 1300킬로미터의 노동미사일을 높은 각도로 발사해서 사거리의 절반 가량인 650킬로미터를 날아가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미군은 북한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주한미군을 공격할 수 있다고 보고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위에서 소개한 것과 같은 성능을 갖는 사드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2014년 6월 3일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 필요성을 처음 제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기사링크) 하지만 북한은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안 후 8월 3일 오전 7시 50분경 황해남도 은율군 지역에서 2014년 3월에 발사한 것과 같은 사거리를 갖춘 노동미사일을 발사하였다. 이것은 북한 지역 상공을 지나 약 1000킬로미터를 날아가서 일본 아키타현 오가반도 서쪽 250킬로미터 지점 해상 배타적 경제 수역에 떨어졌다. 북한은 이번에는 각도를 높이지 않고 정상 각도로 발사해서 “성주 인근 상공에서 미사일은 150킬로미터 이상의 고도에서 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기사링크) 이것은 성주에 배치한 사드로는 북한이 발사한 노동미사일을 요격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데, 사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사일의 종말단계 고도가 40-150킬로미터일 때 요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연구위원 고영대가 지난 6월 10일에 기고한 글을 맺으면서 진술한 다음과 같은 내용은 이런 관점에서 주목된다. “사드 한국 배치와 한국의 동북아 엠디 참여로 한국이 얻을 것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유사시 일본이 제공할 북한 탄도미사일 정보는 한반도의 짧은 작전 종심 탓에 북한의 탄도미사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는 데 무용지물에 가깝다. 앞에서 언급한 미 의회 보고서(2015년 4월 3일)조차 한국이 동북아 엠디 참여로 받을 혜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얻는 건 없을지언정 사드의 한국 배치로 우리가 떠안아야 할 부담은 분명하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에 설 것인지를 묻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미 의회 보고서에 쓰인 문구는 섬뜩하다. 대결과 전쟁 위험을 높이는 길을 배척하고 지역 국가들이 평화 공존하는 상생의 길을 가야 하지 않을까.”(기사링크)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 정부 정책 결정자들은 사드 배치를 택했다. 그리고는 국민에게 이것이 북한 공격에 대한 방어를 위한 선택이라고 통보하고, 그렇기 때문에 차이나와 러시아에게는 사드 체계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는 불행하게도 한국민들은 잘 모른다. 일반적으로 그렇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한국 관료나 군인 가운데 누구도 이 무기 체계를 통제할 수도 없다.(기사링크) 2016년 7월 13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송기헌 의원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게 “사드 배치는 한국과 미국 중 누구의 필요에 따라 결정된 것인가”를 질문했다. 이때 그는 “한국에 사드 배치를 요청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판단은 미국이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판단은 미국이 하고 “우리는 받아들였다”는 것인데, 그의 이러한 답변은 이같은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이런 상황에서 성주에 배치될 사드 체계가 한국과 북한, 차이나와 러시아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실제로 우리로서는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것에 대해서, 차이나와 러시아 역시 그 영향을 가장 면밀하게 조사하고 연구해 왔다고 하더라도, 가장 정확하게 아는 존재는 미국이다. 이것은 미국의 무기 개발 체계와 한국에 배치할 사드 체계가 상관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을 비롯해서 여러 나라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20세기 중반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미시 무기 체계를 정교화해 가면서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추구해 갈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과 공간을 한편으로는 보이게 다른 한편으로는 보이지 않게 더욱 확고하게 장악해 가려 할 것이다. 인공지성과 정보혁명을 통합한 그야말로 4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신 무기체계의 개발, 드론과 로봇의 미세화를 통한, 그리고 인터페이스를 통한 무기의 정교화가 시도될 것이다. 여기에 자연 생태를 이용한 생물화학전 역시 고도로 발전된 형태로 준비해 갈 것이다. 국가 단위에서 이 모든 것을 가장 선진적으로 도모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 나라는 현재는 미국이다. 러시아와 차이나 역시 이것을 추구한다. 이 가운데 러시아와 차이나는 우리와 인접해 있고,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질문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 러시아와 차이나는 우리와 인접해 있고,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 (이미지 출처 = en.kremlin.ru)
사드 문제는 이렇게 미래 군사 전략의 맥락에서 보아야 그 목표와 영향 관계를 보다 더 종합적이고 총체적으로 볼 수 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미국의 무기와 전술체계에서는 궁극적으로는 차이나와 러시아를 겨냥한 방어와 공격체계로 작용하게 할 수 있다. 미국에게 사드는 장거리와 중거리 미사일 공격과 방어체계 안에서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차이나와 러시아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이것이고, 이것은 우리나 미국이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견해는 단순히 러시아나 차이나 관료들이나 정치학자들이 피력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이를 통한 지구 단위의 평화를 바라는 미국의 군사 전문가들이 이번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하여 명시적으로 표명한 견해에 근거해 있다.(기사링크)

사드가 특정 지역과 기지 등을 방어하는 체계인 점을 놓고 볼 때, 사드 배치 목적은 근본적으로 평택과 왜관과 대구 지역에 있는 미군기지와 미군의 보호에 있는 것이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방어에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위에서 보았다. 이것은 미국의회가 요청해서 미국 국방부가 한국과 일본과 대만에 대한 탄도탄 방어체계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구성 요소들과 관련하여 수행한 연구 결과를 담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전구 탄도탄 방어 구성 옵션에 대한 의회 보고서’가 명시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사안이다.(기사링크) 미국이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고 사드를 배치하려는 것은 미국이 판단에 따라 북한을 핵으로 공격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예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기사링크)

미국이 한국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는 그들의 말로가 아니라 행동과 정책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고 승전국들 사이에서 한국의 영토와 주권 문제를 결정할 때 한국을 위해서, 한국민을 위해서 행동했는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했는지는 보면 안다. 미국은 북한을 소련의 통치 아래 있게 하는 대신 남한에 군부대를 배치하였다. 그때 이래 지금까지 미국은 남한을 자국의 이익을 위한 기지로 삼고 있다. 일본이 한국 지배와 한국 자산의 착취를 위해서 한반도를 약탈 기지로 삼았던 것처럼,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도구 수준에서 한국의 개발을 지원해 왔다. 미국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가장 먼저 공격할 지역 가운데 한 곳이 북한이고, 이것이 만일 현실화된다면 미국의 이 전쟁으로 가장 처참하게 전쟁의 영향을 받게 될 나라는 북한 이외에 우리나라다. 이런 전략에 따라 21세기에 미국이 한국에서 수행할 절대적 과제 가운데 하나, 그것이 미국이 전 세계에서 주도하고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함께 구축하려 하는 미사일방어체계의 완성이다. 한국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는 것은 바로 미국의 이 전술적 계획과 행동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2011년부터 유럽에서, 2012년부터 중동에서, 2012년부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MD 체계를 구축해 왔다.(기사링크)

정화의 길

   
▲ 1944년 연합군은 베네딕토 성인이 세웠던 몬테 카시노 수도원을 폭격했다.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모든 전술은 맞전술을 낳고 맞전술은 맞맞전술을 낳는다. 이것은 군비 예산과 전쟁의 위험을 동시에 높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는 무기 체계와 구조의 악순환으로가 아니라 무기 없는, 아니면 적어도 무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상호 신뢰와 상호 정의의 선순환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모든 경우에 전쟁은 합리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성을 파괴하면서 수행한다. 이성적 대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동원한 폭력으로 하는 것이다.

그 한 실상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4년 2월 15일에 미군을 비롯하여 연합군이 실시한 한 작전에서 볼 수 있다. 이들은 유럽 문명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베네딕토 성인이 530년대에 세웠던 몬테 카시노 수도원을, 이것은 577년에 롱고바르도족에 의해 파괴된 이후 717년에 다시 세워졌는데, 폭격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이들은 당시 그야말로 유럽 문명의 거점 중의 한 거점인 이 아름다운 생명의 자리에 1150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독일군이 이 대수도원을 기지로 사용하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전을 마치고 확인한 결과 단 한 명의 독일 군인도 수도원 안에서 발견할 수 없었고 대신 수도원으로 피신했던 230명의 이탈리아 피난민의 주검만 확인하였다.(기사링크) 이 작전을 반대하는 장군들이 있었으나, 이들의 견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는 작전을 결행하기로 한 장군과 군인들과 여기에 동조하는 언론인들의 폭파 당시의 환호와 작전 후의 부끄러움, 그리고 하느님의 살림에 가까운 문명과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의 파괴로 나타났다. 이것이 전쟁이다. 전쟁은 발생하면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 그래서 전쟁에 이를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참으로 복음적인, 공동선을 지향하는 사회 생태적 투신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이성을 도구로 동원한 비이성적 폭력이 정상인 것처럼 작용하는 전쟁은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은 물론이고 차이나와 러시아 역시 발생시킬 수 있다. 이것은 차이나나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정당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가능성을 말하는 것인데, 실제로 이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를 상대로 해서는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해서도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드 체계를 성주에 배치한다는 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그 나라가 가장 먼저 이 사드 체계를 무력화하기 위해 성주를 공격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일본과 미국은 그 피해를 당하더라도 덜 당할 것이고, 가장 직접적이고 치명적으로 피해를 당할 나라는 한국이다. 이것은 한국인들 가운데서도 권력에 가깝고 미국과 일본에 가까운 0.1퍼센트 약 5만 명, 1퍼센트 약 50만 명을 제외하고 성주 시민을 비롯한 99퍼센트, 99.9퍼센트 한국 시민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이 무참히 죽음을 겪거나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지금 사드 배치를 주장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장관과 정부 관료들과 국회의원들과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은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과 미국으로 떠날 수 있는 재력과 인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의 주장에 동조해서 사드 배치를 주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물론 이를 반대하는 국민 가운데 99퍼센트는 폭탄 세례를 당할 때 혹은 최악의 상황에서는 핵폭탄 공격에 직면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돼 있다. 이들은 지금 성주 사람들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은 배신감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 한국 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과 그를 따르던 관료들이 서울을 떠난 뒤에 한강 다리를 폭파해 버렸을 때보다도 더 처참하게 존재 파괴를 겪게 될 것이다.

다시 물음은 이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지배 세력은 그렇다 치고,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김관진, 한민구, 윤병세 외무부 장관, 그리고 새누리당 대다수 의원들과 지식인과 언론인들 가운데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할 것을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세계 사회 생태에 대한, 그리고 인간의 존재 구조에 대한 무지와 그 무지에 따른 종속적 사고와 연계돼 있다. 또한 자신들이 현재 획득해서 누리고 있는 권력과 기득권을 확장 지속시키려는 욕망과 연결돼 있기도 하다. 사드 배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를 두려워한다. 한국 전쟁 당시 박정희의 친일 전력이 가려졌던 것처럼 전쟁은 이들의 기만과 불의와 착취와 반 생명 행태들을 드러나지 않게 만들고 평화는 오히려 이것들이 드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이 형제애를 회복하여 이루는 깊은 화해와 일치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는 미군의 해체와 철수를 발생시키고 이것은 미국이 동아시아 최전방에서 차이나와 러시아를 내다볼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 관계에서 대결 구도를 전제하는 한 미국이 이 가능성을 잃는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치명적 손실이 된다. 일본에게는 강력한 차이나와 강력한 러시아와 강력한 한국 앞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싶은 세력과 존재들에게는 자신들의 지배욕과 지배 과정, 친일과 독재를 주도했거나 여기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범한 과오들을 철저하게 질문당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도 이런 세력들은 오히려 평화를 파괴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미국이 원하지 않아도, 현재로서는 그럴 리가 없겠지만, 사드 체계를 도입해서라도 북한과 대치 상황을 악화시키려 할 수조차 있다. 선거 때만 되면 끊임없이 다양하게 북풍을 조작하려는 세력에게 사드는 도리어 선물과도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두려워하는 세력은 불의와 악행과 폭력을 먹고 산다. 이것은 차이나와 러시아와 북한, 미국과 일본과 한국 모든 나라에서 마찬가지다. 이들은 형제애의 규모를 끊임없이 좁혀서 파당화한 집단에 종속시키고, 파당 밖의 존재들의 존엄은 파괴하고 생산물은 착취하려 한다.

   
▲ 프랑스 혁명의 정신인 자유(Liberte), 평등(Egalite), 박애(Fraternite)에서 박애는 사실 '형재애'이며 이 세 이념 가운데 핵심이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프랑스 혁명 정신은 “Liberte, Egalite, Fraternite”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이것이 프랑스 혁명 정신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일반적으로 “자유, 평등, 박애”로 번역해 왔고, 또 여기에 근거해서 프랑스 혁명 정신을 이렇게 알아 왔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정신 가운데 “Fraternite”는 “박애”가 아니라 “형제애”다. 그리고 실제로 이 세 이념 가운데 핵심은 Fraternite다. 자유는 있어도 형제애는 없을 수 있고, 평등은 있어도 형제애가 없을 수 있어도, 형제애가 있으면 자유와 평등은 형제들 사이에서 당연히 그들 가운데서 솟아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오늘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민주사회의 영성의 핵은 “형제애”다.

여기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미국과 한국이 사드를 한국 땅 성주에 배치한다는 것은 그들 말대로 북한을 형제의 범위 형제의 규모 형제의 관계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차이나와 러시아를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우방”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적방”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70년대에 적방이었던 차이나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차이나는 그당시나 지금이나 형제국이었지 않은가? 일본은 또 어떤가? 일본이 적국이어도 형제국인 것은 단순히 의무가 아니라 신학적 실재가 아닌가? 다만 거리가 멀 수도 있고 서로 다투어서 등을 지고 있을 수는 있어도 형제는 형제 아니었는가?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도 이런 의식을 이미 갖고 살지 않는가? 바로 이것이 Fraternite가 의미하고 발생시키는 참으로 깊은 신학적 영성적 사목적 역동성이다.

이것을 거부하거나 외면하거나 억누르는 존재들은, 그래서 “우방”과 “적방”을 빨리 구분하는 존재들은 그들의 형제 범위와 규모와 관계가 그만큼 좁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언제나 정당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이유를 갖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주체들은 분노할 거리들을 만들어 가기 쉽다. 그러나 분노할 이유가 있는 것과 분노할 이유를 건강하게 극복할 역량은 구분해야 한다. “박애”는 박애를 실천할 주체의 의지와 선택과 역량과 연결돼 있다. 그러나 “형제애”는 형제애를 실천할 주체의 의지와 선택과 역량과 상관되어 있기는 해도, 궁극적 의미에서는 이런 요소들과 실제로 무관하게 작용하고, 또 그렇게 작용하도록 해나갈 과제를 발생시킨다. 형제애는 부모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형제 관계에 들어서 있는 모든 존재에게 요청되는, 선택적, 부분적, 임의적, 제한적 가치가 아니라, 필연적, 전면적, 불가항력적, 무제한적 가치다. 부모에게서 천부적으로 주어진 형제의 의를 끊지 않는 한, 이것은 모든 형제들에게, 그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행동하였든 관계 없이 요청되는 절대적 가치다. 인간 조건을 갖는 인간에게 어떤 것도 절대적일 수 없어도 형제애는 절대적 가치다. 이것을 놓치면, 우리의 존재 가치는 놓치는 그만큼, 멀어지는 그만큼 떨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햇볕 정책”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형제의 영성적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극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정책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우월의식이 배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형제는 그가 어떤 존재 상태에 있든 무조건 사랑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혁명 정신과 연결하여 형제애를 강조했는데, 이것은 북한이나 차이나나 러시아가 형제애를 파괴하지 않았다거나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체험해 온 것처럼, 일본과 미국이 그래 온 것처럼, 북한과 차이나와 러시아가 우리 역사 안에서 어떻게 폭력을 가하며 형제애를 파괴할 수 있었고 또 지금 역시 그럴 수 있는가를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실재들을 근거로 종국적으로 형제애를 제한하고 그 범위를 좁히고 그 규모를 작게 만드는 존재들은 필연적으로 한국 사회 내부에서 다시 형제애의 범위와 규모와 관계를 축소시키게 되어 있다. 독재를 통해서, 독점을 통해서 그들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형제애의 규모를 좁히면서 “적방”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쓰는 존재들은 하느님께 받은 숨으로 하느님이 바라시는 생명의 숨을 죽음의 숨으로 뒤집는다. 이런 존재들을 우리의 지도자로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런 존재들이 더 이상 이렇게 할 수 없게 할 것인가. 적방을 만드는 존재들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어려움 속에서도 형제애의 규모를 실질적으로 확장해 가는 존재들을 택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 7월 18일 '사드 가고 평화 오라', '한반도 평화는 우리 손으로'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사람들이 캠프캐롤 미군기지를 향해 걷고 있다. ⓒ강한 기자

평화를 두려워하는 세력은 권력을 추구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권력이든 권력을 과용하고 남용하고 오용하며 부패시킨다. 언론을 부패시켜야 그들의 불의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만큼 잘 아는 존재들이 없고, 국회의원들을 부패시켜야 자신들의 불의한 권력을 지속시켜 갈 수 있다는 것을 그들만큼 잘 아는 존재들이 없다. 국회의원들의 특권은 바로 이들을 부패하게 만드는 장치의 핵인데, 그들이 부패와 불의와 폭력에서 돌아서게 하고 그들을 복음화하는 데 필요한 것은 그들이 하느님께 받은 숨의 존엄은 철저하게 지켜 주면서 불의한 권력에서는 철저하게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프란치스코 교황은 명시적으로 제시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인과 사회 시민들 모두 복음적 형제애에 기초하여 건강한 시민적 사랑을 갖추고, 이 시민적 사랑에서 비롯된 거룩한 연대력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찬미받으소서' 228-231항)

권력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하느님께 멀 수 있고, 하느님께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권력에도 가까울 수 있는 이중성을 띨 수 있다. 하느님께 가까우면서 권력을 정화할 역량을 가질 수 있고 권력에 가까우면서 하느님께 가까울 수 있는 이중성 역시 띨 수 있다. 전자는 악화시키는 이중성이고 후자는 순화시키는 이중성이다. 이 두 이중성은 그 정도에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모든 개별 존재 모든 집단 모든 공동체 모든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주체 한 단위체 안에서도 때에 따라서 이 두 이중성이 상호 작용하는 형태는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위에서 말한 복음적 가치를 따르는 시민적 사랑과 연대를 통하여 순화시키는 이중성이 악화시키는 이중성을 정화해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권력을 추구하면서 불의하고 부패하며 폭력적일 수 있는 현실을 있는 대로 보고 고백하고 정화해 가는 사회적 정치적 정직과 영성적 겸손을 통해서만 비로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신학과 영성과 사목의 주체들은 사회 생태에 대해서 할 수 있는 한 총체적이고 통합적 비전을 갖고 하느님의 살림을 복음적으로 설계하고 공유하고 제시하며 실천할 역량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과 '찬미받으소서'가 우리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한국의 가톨릭 신앙 공동체에게 요청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고, 사드 문제는 이같은 신학적 영성적 사목적 통합력을 높여 가도록 우리를 재촉하고 있다.

황종열(레오)

대구 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
대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생태영성”과 “교육신학,” “종교와 사회” 등을 강의하고 있다. 광주 가톨릭대학교와 대전 가톨릭대학교에서 생태영성과 교육영성 강의 등을 맡고 있기도 하다. 2015년 12월에 "한국 가톨릭 교회의 하느님의 집안살이"를 대구 가톨릭대학교총서 8번째 권으로 출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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