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1. 문제는 평화다

7월 18일 왜관 성 베네딕도수도원에서 생명평화미사가 처음 봉헌되었고, 이어 23일에는 성주 4개 본당이 주관하는 생명평화 미사가 열렸다. 여러 언론에서 ‘사드 반대 미사’라고 적었지만, 왜관과 성주에서 봉헌된 미사들은 단지 ‘사드 반대’의 뜻을 미사의 형식으로 드러낸 집회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미사들의 방점은 ‘생명 평화’, 그러니까 성주뿐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 나아가 세계 평화가 실현되기를 기원하는 데 찍혀 있었다. 미사에 함께 해 주신 성주 교우들의 뜻도 그러했다. 이날 미사에서 누구도 사드로 인해서 떨어지는 땅값을 보상하라, 혹은 전자파 때문에 입게 될 피해를 물어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왜관과 성주의 신앙인들이 바친 신자들의 기도는 지역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평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평화의 길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은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이들 또한 평화를 지향한다는 역설 때문일지 모른다. 찬성 측이건 반대 측이건 간에 모두가 평화를 원하고 있는데, 한쪽은 강력한 무력을 통해서, 다른 한쪽은 무력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서 목표를 추구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 또 최근 남중국해 갈등에서 불거진 국제 정세를 감안할 때, 하나라도 더 좋은 무기를 더 갖추는 게 왜 잘못되었느냐는 주장은 일견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래선지 강력한 압박과 첨단 무기가 평화를 보장하는 수단이라는 의견이 신앙인들의 입에서도 심심찮게 나온다.

2. 강력한 압박이 낳은 결과

하지만 남북 관계, 특히 핵 문제를 놓고서는 강경책이 능사가 아니라는 반증이 수두룩하다. 사실 분단 이후로 강경책 말고 변변한 화해와 평화 프로세스가 가동된 기간이 대체 얼마나 되었나.

혹자는 이른바 ‘햇볕 정책’ 기간 동안 북한에 퍼준 돈 때문에 한반도에 위기가 온 것이니만큼 이제는 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북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핵무기 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에 이어 노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한반도를 전쟁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것은 1993년이었다. 사거리 1650킬로미터의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을 지나 태평양에 낙하함으로써 한일 양국에 특히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 역시 대북지원이 시작되기도 전인 1998년의 일이다. 애초에 북핵과 미사일 문제는 강경책이 득세하던 시기에 시작되었고, 냉전의 차가운 적대관계가 날을 세울수록 더 심각해진 것이다.

▲ 사드 미사일 발사대.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2005년 9.19 공동성명이 겪어온 과정은 어떠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대북 에너지 지원, 평화체제 등을 약속하는 이 선언은 6자 회담의 쾌거였다. 그러나 이 합의 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바로 다음날부터 미 재무부가 방코델타아시아 문제를 터뜨리며 북한 자금을 동결시키는 압박을 가했다. 그 결과는? 6자회담은 급속히 냉각되고 이듬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며 핵 폭파 장치 실험을 벌였다. 강력한 압박이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를 이룰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적어도 남북 관계에서는 아직 실증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3. 무기가 더 필요하다는 사람들이 보여 준 모습들

그럼에도 ‘핵’이 워낙 위험하니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지난 세월 우리 사회가 군사비에 들인 공을 돌이켜 보면 그러한 주장도 곱게 들리지 않는다. 2012년 세종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국방비 지출이 북한의 2배를 넘어선 지 20년이 넘었고, 특히 2000년대 중반에 이르면 한국이 북한에 비해서 약 43배의 돈을 군사비로 썼다. 2012년 북한군의 입대 기준 키높이가 142센티미터인데, 한국 초등학교 5, 6학년 여학생 평균 키에도 못 미치는 이 ‘무시무시한’ 북한군을 상대하기 위해서 여태 엄청난 돈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걸로 모자란다니! 그렇게 무기가 중요하다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방산비리를 ‘생계형 비리’라고 칭하는 국방장관의 발언도 겨우 넉 달 전이었던가. 개인장비부터 첨단무기 도입 사업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퍼져 있는 방산비리는 어쩌고 또 다른 첨단 무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단 말인가.

게다가 전쟁이라는 최후의 수단 이전에 마땅히 기능해야 할 정치, 외교적 수단들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드 배치 결정이 발표되던 그날 오전, 백화점에 바지 수선을 맡기러 갔다는 외교통상부 장관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4. 칼을 잡은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예수께서 겟세마니에서 기도를 마치고 잡혀가시던 수난의 밤에 한 제자는 칼을 빼어 들고 대사제의 귀를 잘라 버렸다. 그때 예수께서는 분명히 이르셨다. “칼을 잡은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평화가 무력을 통해서 얻어지지 않는다는 이 말씀은 더 많은 무기를 갖추고 더 많은 국민을 희생시켜야만 평화가 오리라는 세간의 억측을 뒤엎는 말씀이다. 과연 평화는 더 긴 창과 더 두꺼운 방패가 보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 없이 실현될 수 없다.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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