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한상봉]

인간은 누구나 평화로운 저녁으로 이어지는 평화로운 아침을 바란다. 그리고 이 평화를 위해 가톨릭교회는 매년 새해 첫날을 ‘세계평화의 날’로 기억하고, 교황은 간절한 호소로 인류에게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바라며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을 축복한다. 이참에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했던 비오 12세 교종이 “평화는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으로 모든 것이 상실된다”고 한 경고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

지난 7월 8일 한미공동실무단은 난데없이 주한미군의 한반도 사드 배치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국민적 합의와 진지한 토론도 없이 전격 발표된 까닭에 일부 정당에서는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당혹스러운 결정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는 단순히 미군이 사용할 무기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미군의 한반도 사드 배치는 새로운 동북아의 냉전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편 미군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서 한반도가 동북아에서 최우선적인 전쟁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를 두고 한국정부와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제한적 조치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사실상 가장 반발하고 나선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였고, 결국 사드미사일의 존재여부보다는 사드레이더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면 자신들도 군사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왔다. 덧붙여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전문가인 매사추세츠 공대의 시어도어 포스톨 교수는 “한국에 사드 시스템을 배치하면 핵전쟁시 한국이 중국의 첫 목표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한반도 사드 배치가 한반도의 전쟁 요인을 증폭시키고,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불확실한 북한의 공격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한반도를 상시적 불안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간의 화해와 대화를 도모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군사적 대치상태는 더 강화되고, 개성공단 폐쇄에서 확인했듯이 남북경협 등 일체의 남북관계는 더욱 심각하게 단절될 것이다. 더불어 중국과의 교역 및 러시아와의 관계 역시 한미일 군사동맹의 대가로 악화될 것이며, 그것은 당장에 국민경제를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이참에 박근혜 정부는 한미일 군사동맹과 전략이 다른 모든 국민적 삶보다 더욱 우선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는 사드 배치 문제를 북한미사일 요격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강변하고 있다. 북한의 공격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사드 배치에 따른 한국의 재정부담 및 기지 인근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질 위험은 말할 것도 없으며, 사드의 방어능력과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분명히 확인된 바 없다. 그리고 최근 정부에서 ‘수도권 방어망’은 별도로 세우겠다고 발표한 것처럼, 사드는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수도권 방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미사일 및 투발 수단이 많은데 굳이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기 위해 장거리 탄도탄을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드의 한반도 후방 배치 이유도 결국 사드 배치가 북한에 대한 방어차원이 아니라 미군의 군사전략의 일환임을 증명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이해관계에 한국정부가 이리저리 쓸려 다니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 (이미지 출처 = flickr.com)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군사증강이 결코 우리나라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한 23세 교종은 '지상의 평화' 1항에서 “지상의 평화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에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진다”면서 “경제적으로 더욱 발전한 국가들이 고도의 정신적 능력과 경제적 자원들을 모아 거대한 규모의 전쟁 무기들을 만들고 계속 그런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고통스런 일”(109항)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교종은 먼저 무기생산이 평화를 보장하는 계기가 될 수 없다고 천명하면서 “결코 평화가 ‘무기라는 힘’의 균형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한 국가가 무기를 보강하면, 다른 국가들도 더욱 크게 무기를 보유해야만 한다. 또한 한 국가가 원자 무기를 생산하면,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파괴적 원자 무기를 생산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110항)고 지적했다.

가톨릭교회는 그동안 사회교리를 통해 줄곧 무기 경쟁을 중단하고, 상호 간에 동시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무기들을 축소할 것을 촉구해 오며, 가장 완전한 해결책은 “평화를 위한 무장해제”라고 천명하고 있다. “전쟁 목적을 위한 무기 생산의 중지와 그 실제적 축소를 실현해야 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장 해제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인간들의 마음으로부터 무기를 제거하고, 전쟁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무장 해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전쟁 무기의 균형으로 평화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상호 신뢰에 의해서 참된 평화가 확립된다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113항)고 밝혔다.

결국 한반도 평화는 ‘방어’를 명분으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사드 배치와 같은 방법이 아니라, 지속적인 남북 대화와 협력 등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남북 대화의 물꼬를 다시 열고, 개성공단 재개 등의 조치를 통한 상호협력이지, 국민적 삶을 위험에 빠뜨리는 무기증강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2014년 방한했을 때 청와대 연설을 통해 “평화의 부재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온” 이 땅에서 정부의 “한반도의 화해와 안정을 위하여 기울여 온 노력”을 치하하며, “그러한 노력만이 지속적인 평화로 가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교종은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전제하며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 '카인이 아벨을 죽이다', 다니엘레 크레스피. (1618-1620)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교종은 외교는 “화해와 연대의 문화를 증진시켜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 가는 끝없는 도전”이며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결국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드 배치가 북한의 미사일 요격체제로서 도입되는 것이라면, 한국과 미국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했음을 절망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에 불과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부들은 '사목헌장'에서, “진실하고 숭고한 평화의 뜻을 해명하며 전쟁의 야만성을 단죄하고, 평화의 주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정의와 사랑에 뿌리 박힌 평화를 확립하고 평화의 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과 협력하도록” 열렬히 호소했다. “지상의 평화는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생겨나며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그리스도의 평화의 모습이며 결실”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랑 안에서 진리대로 살면서(에페 4,15 참조) 참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치하여 평화를 찾아 건설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실제로 군비경쟁은 전쟁을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인류의 막심한 상처이며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견딜 수 없게 해치는 일”이라고 선언했다.

2016년 세계평화의 날 담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구약성경의 카인과 아벨의 사례를 지적하면서, “최초의 형제 관계가 어떻게 손상되었는지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형제인 “카인과 아벨은 둘 다 한 모태에서 나왔고 그들은 동일한 존엄을 지녔으며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인의 형제 살해는 아벨을 형제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남북문제는 갈등에 따른 방어수단의 확보보다는 ‘형제애’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는 남북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미국의 군수산업과 군사전략에만 기여할 뿐이다. 그러니,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은 전면 취소되어야 하며, 이런 군사적 조치보다 한국정부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

 
 

한상봉(이시도로)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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