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비밀은 없다']

청소년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일컬어 요즘 흔히 ‘중2병’이라 한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과중한 학업을 수행하며 청소년들은 그저 ‘사춘기’라 불러 넘길 수 없는 광폭한 시절을 보내는 듯하다. ‘중2병’이 무서워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라면.

영화 '비밀은 없다'의 중학생, 민진과 미옥 역시 무서운 소녀들이다. 민진의 아버지 김종찬의 국회의원 선거 유세 첫날, 민진이 실종된다. 경상도 지역 여당 후보 김종찬은 딸이 실종된 가운데서도 유세를 강행하고 민진의 엄마 김연홍은 홀로 민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얼마 후 민진은 주검으로 발견되고 연홍은 사건의 진상을 스스로 밝히기 위해 딸의 죽음을 쫓는다.

연홍은 민진이 죽고서야 민진에 대해 하나씩 알기 시작한다. 민진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것, 몰래 카메라 동영상으로 교사를 협박해 시험지를 빼돌리고 부당하게 성적을 올린 것. 연홍이 종찬에게 “우리 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착한 애가 아닐지도 몰라”라고 말하듯 진실은 놀랍기만 하다. 타인은 미지의 존재다. 가장 가깝다고, 잘 알고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여긴 가족, 연인, 친구에게서 어느 날 갑자기 벼락이라도 치듯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 배신당하고, 상처받는다.

▲ 영화 '비밀은 없다', 이경미, 2016.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예고편 동영상 갈무리)

연홍이 민진을 몰랐듯 아마 우리도 청소년들을 모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중2병’이라 부르면서 은연 중에 그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취해 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중2병’이라는 규정이야말로 부단히 노력해야 할 이해와 소통의 방해물일지 모른다. 우리는 소녀들을 정말 몰랐을 수밖에 없었을까.

곧 돌아올 생일에 받고 싶은 선물을 묻는 할머니에게 민진은 “저 생일 선물로 1억 주세요”라 대답한다. 가족들은 이를 철모르는 농담으로 웃어 넘기지만 민진의 죽음은 정말로 그 1억과 관계된 것이었다. 민진의 친구 미옥은 자신을 의심하고 다그치는 연홍에게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똥차 몰아요. 뒤에 똥 엄청 싣고 다녀요.”라 말한다. 중학생의 언어로는 저급하다 싶은 이 말에 연홍은 “그거 분뇨차라고 하는 거야”라고 정정해 준다. 하지만 미옥의 아버지는 바로 김종찬의 운전기사였고 미옥의 이 말은 종찬에 대한 평가와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중의적인 이 대사들은 물론 영화의 복선이고 장치다. 하지만 반쯤 가리며 진실을 말하는 소녀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무심했던가를 돌아보게 한다. 그들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의도에 집중하지 않고 표면만 보고 가르치려 했다. 거짓말 탐지기라도 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민진을 “묻었냐” “죽였냐”는 질문에 대한 미옥의 대답은 거짓말 탐지기를 속이지 못했으니까.

▲ 영화 '비밀은 없다', 이경미, 2016.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예고편 동영상 갈무리)

민진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뒤늦게야 밝힐 수 있던 건 연홍이 좁은 시야로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돌진했기 때문이다. 그런 연홍이 여느 ‘모성 복수극’의 캐릭터와는 달리 히스테릭하다는 의견에는 그러나 동의하기 어렵다. 딸의 죽음에 미치지 않을 어미가 있을까. 경찰의 수사 기록지를 가져 오라며 손을 자해하는 정도야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연홍이 유사한 영화의 인물과 달라 보이고 그것이 이 영화를 불편하게 느끼게 한다면 그건 바로 연홍이 중심과 주변의 대립항을 줄곧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이 영화에서 주변부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홍은 ‘대통령’이 아닌 ‘영부인’이 되길 꿈꾸어 온 ‘여자’다. 경상도 선거구에서 출마한 남편의 ‘전라도’ 출신 아내다.(전직 아나운서인 종찬은 가정이나 선거사무소에서는 표준어를 구사하면서도 선거 연설을 할 때에는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민진을 찾기 위해 최면술을 쓰고 무당을 찾고 굿판을 벌인다. 연홍은 종찬이나 종찬 세계의 남성 인물들은 물론이고 교사 손소라 같은 여성 인물과도 다른 세계에 사는 듯 보인다. 연홍은 딸 민진과 같은 청소년, 역시 주변인인 그들과 더욱 닮았다.

결코 중심이 되지 못할 연홍을 통해 드러나는 건 중심과 주변이 결코 정상과 비정상의 이항대립에 대응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후보자의 딸이 실종된 상황에서 선거사무소의 지역 정치인들은 민진의 평소 품행을 문제 삼으며 언어 성폭력을 마다하지 않고, 연홍에게 “정말로 전라도입니까”라 물으며 왜 속였냐고 다그친다. 연홍이 자신의 집에서 상대 후보의 도청 장치를 발견하자마자 관객이 알게 되는 사실은 종찬 역시 상대 후보 사무실에 끄나풀을 심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중심부의 비정상성을 균열시키는 주변부의 돌진을 결코 히스테리라 불러서는 안 된다. 그건 히스테리의 원인을 자궁의 이상에서 찾았던 그 옛날부터 중심부가 주변부를 억압하고 타자화해 온 방식일 테니까.

▲ 영화 '비밀은 없다', 이경미, 2016.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예고편 동영상 갈무리)

연홍이 딸의 죽음을 쫓다 알게 된 바, 민진과 미옥은 순진무구한 소녀들도, ‘중2병’으로 우스개 취급할 존재도 아니었다.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동영상을 빌미로 협박하고, 살인으로 복수한 ‘불량소녀’들이었다. 하지만 그 ‘불량소녀’들의 죄악과 불행의 근원에는 이 사회의 중심인 종찬과 기성 세대의 죄악과 무기력이 놓여 있었다.

민진의 죽음, 민진과 미옥의 우정은 그래서 가슴 아프다. 민진이 음반 재킷에 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친구 옥이에게”라는 문구에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는 아마도 ‘친구’가 아닌 ‘옥이’에게로 연결되는 말일 것이다. “엄마는 죽고 아빠는 새엄마 데려와서 줄줄이 동생만 만들고 나한테는 민진이밖에 없는데 내가 갸를 왜 죽여요”라고 외치는 미옥의 절규에는 이 소녀들이 고립이 사무친다. “우리는 진짜 행복했거든요”라던 그들 친구의 말에서도. 그들에게는 그들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죽은 민진을 두고 연홍과 미옥이 만났으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히스테리가 아닌, 정당한 분노의 페달을 밟고 돌진한 그들이 만났으니 그래도, 괜찮다. “엄마는 멍청하다고, 그래서 지가 지켜줘야 된다 그랬어요”라고 미옥이 민진의 말을 전했듯 그들은 서로를 지켜줄 것이다. 깨지고 다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결코 단번에 무너지지 않을 벽을 들이받는 ‘멍청한’ 그들에겐 서로가 필요하다.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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