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룸', 레니 에이브러햄슨, 2015]

차마 입에 담기에도 힘든 이야기들이 있다. 실화를 바탕한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의 실체를 대면하기가 때로 고통스럽다.

영화 '룸'의 첫 장면은 24살 엄마와 5살 아들의 아침으로 시작한다. 작고 남루한 공간에 침대, 세면대, 변기, 싱크대가 모여 있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방에서의 아침이다. 아이는 방 안에 있는 물건들에게 아침 인사를 한다. 잘 잤니, 의자야. 잘 잤니, 세면대야. 잘 잤니, 달걀 인형아.

하지만 다소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작은 방의 실체가 점차 밝혀진다. 엄마와 아이가 사는 방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감금 시설이었다. 엄마는 7년 전 한 남자에게 납치되어 줄곧 이곳에 감금당했고 성폭행을 당해 아이를 낳았다. 방을 나가본 적 없는 아이에게 그 방은 세계의 전부였다.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방 바깥의 세계가 진짜 세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영화보다 몇 배 더 끔찍한 실화 자체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는다. 카메라는 다섯 살 아이의 시선을 따른다. 작은 방이 세상의 전부였던 아이가 엄마와 함께 결국 방을 탈출하게 되고 그 뒤 새로운 세계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과정이 의미 있게 그려진다.

▲ 카페트에 돌돌 말려 트럭에 실린 아이가 처음 바깥 세상의 하늘을 본다.(이미지 출처 = '룸' 유투브 예고편 동영상 갈무리)

엄마에게 이 방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고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아이는 그 사실을 부인하고 분노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알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거나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세계를 무너뜨려야 할 때, 죽음이나 상실과 같은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여야 할 때 제일 처음 반응하게 되는 감정과 태도가 바로 부정과 분노인 것과 마찬가지다.

엄마는 아이를 설득해 아이를 먼저 탈출시킬 계획을 세우고 죽음을 가장해 방을 빠져나가는 연습을 반복한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카펫에 둘둘 말린 채로 시체인 척 하면서도 아이는 1년 뒤 여섯 살이 되어 탈출을 하면 안 되겠느냐고 애원한다.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과정이 두렵고 힘들기에 주저앉고 미루고 싶은 것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나만의 방에서 쉽게 나가지 못할 때가 있다. 내 방은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인데 문을 열고 나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습관 하나라도 고치기 위해 거슬러야 하는 관성의 힘은 만만찮다. 하지만 힘을 내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안다. 익숙하고 편안한 나의 방은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 내가 지은 나만의 성채이며 나는 스스로를 그곳에 유폐시키고 감금시키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아이가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해 처음 만나는 ‘진짜’ 세계는 경이로웠다. 하늘, 구름, 나뭇잎, 거리.... 뺨에 닿는 바람과 가슴으로 들어오는 공기, 공기에 배인 갖가지 향기들, 맨발에 서리는 풀의 감촉 또한 놀라웠으리라. 용기를 내고 문 밖으로 나선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신비였을 것이다.

▲ 세상 밖으로 나와 살게 된 엄마와 아이.(이미지 출처 = '룸' 유투브 예고편 동영상 갈무리)

하지만 새로운 세계에 쉽게 안착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아이의 엄마는 극악한 범죄로 얼룩진 인생에 대한 억울함, 분노와 싸워야 했고, 생존의 이유인 한편 강간의 결과물이기도 한 아이에 대한 양가 감정으로 혼란에 휩싸여 자살 시도까지 한다. 그럼에도 결국 엄마에게 삶의 의지를 북돋아 준 건 아이였다.

그걸 모성애라고 부르며 한정시키고 싶지는 않다. 아이 할머니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나 남을 강하게 하며, 혼자 강해지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란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단지 모성이어서가 아니라, 엄마여서가 아니라 지극히 사랑하는 한 존재가 있기에 강해질 수 있는 것. 그 존재가 힘이 있는 존재이거나 힘을 주어서가 아니라 그저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에 강해질 수 있는 것. 온갖 고통과 시련 속에서 기어코 각자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사랑에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 준다.

새로운 세상의 끝없는 도전에 힘이 부칠 때 아이는 엄마와 단둘이 ‘아무 일 없이’ 지내던 옛날의 작은 방을 그리워한다. 엄마와 함께 그 방을 다시 찾은 아이는 그곳이 얼마나 작고 험한 공간이었는지 비로소 확인하며 조용히 말한다. 안녕, 1번 의자야. 안녕, 2번 의자야. 안녕, 세면대야. 안녕, 안녕....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