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지난 7월 말에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 한 성당에서 벌어진 인질극으로 신자들의 사랑을 받던 노사제 자크 아멜 신부님이 살해당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음에도 이웃종교에 대한 어떤 예의도 없이 테러범들은 거룩한 장소와 거룩한 미사 시간을 모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2014년 이래 소위 IS(이슬람 국가)라고 불리는 집단이 세계적으로 온갖 테러를 일삼고 있는데 이 테러 사건도 그중 하나 혹은 그 단체의 테러 기법에서 영향받은 유사 범죄로 여겨집니다.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영토도 있고, 그 안에 거주하는 민간인들도 있기에 어느 정도 ‘국가’가 가져야 할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이 단체 혹은 무장 세력은, 이슬람 '국가’라고 그들 스스로 주장하지만 아직 국제적으로 국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적 정체가 불분명한 대신, 그들은 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테러 소식을 접할 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슨 폭탄 테러만 벌어지면 '오사마 빈 라덴', ‘알카에다’를 떠올렸지만, 최근에는 IS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나마 알카에다는 무슨 맥락이라도 있는 테러를 행했다 싶을 생각이 들 정도로, IS의 테러는 맥락없이 세상에 폭력을 휘두르는 양태를 보입니다. 주로 유럽 사회에서 테러를 벌이는 듯하지만, 아프카니스탄 같은 이슬람 신앙을 믿고 있는 국가 안에서도 죄없는 다수의 민간인을 겨냥한 폭탄 테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이 그저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 목적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 집단의 주장은 그들이 과거 칼리프의 통치를 받았던 이슬람제국을 부활시키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분명 그들 대부분도 쿠란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슬람인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슬람인들에게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쓰는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이 휘두르는 폭력을 다른 이슬람 형제자매들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폭력 앞에서, 과연 종교는 폭력적이어도 되는지를 되묻게 됩니다. 자신들의 진리만이 옳다고 내세우는 태도는 그 자체로 폭력을 담고 있습니다. 극단주의나 근본주의의 위험이 거기에 있습니다. 참된 종교라면 사람을 위협하여 울타리 안에 가둬 버리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다양함을 허용하고, 함께 형제자매적 사랑을 나누며, 자비를 실천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 안에서 개인은 두려움을 떨치고 성장하며, 함께 공동선 혹은 평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합니다. 적어도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수받아온 신앙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참된 종교의 면모를 거기에서 찾습니다.

▲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세 종교가 가지는 역사적 맥락으로 봐서는 숭배대상이 같은 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셋 있습니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입니다. 이 세 종교가 숭배하는 신. 즉, 야웨, (삼위일체)하느님, 알라라고 서로 달리 불릴 수 있는 이 신은 과연 같은 존재일까요? 인간의 능력으로 신이란 존재에 대해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다고 해도 세 종교가 가지는 역사적 맥락으로 봐서는 세 종교의 숭배대상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의 야웨가 그리스도교의 아버지 하느님이고, 가장 나중에 생긴 이슬람교도 아브라함(더 정확히는 그의 아들 이슈마엘)을 그들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있기에 그러합니다. 즉, 그들은 구약의 야웨 하느님을 ‘알라'라고 부르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각자가 어떤 하느님의 모습을 마음 안에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유대교와 이슬람의 하느님은 징벌에 능한 모습을 보여 주는 인상이 강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용서하지 않는 알라를 믿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폭력을 정당화, 심하게는 미화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결국 모시는 신이 이름만 좀 다를 뿐 본질은 같다고 하더라도, 그분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에 현실에서는 다른 신으로 드러납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나 존중이 없습니다. 이웃 종교에 대한 예의도 없습니다. 평화를 위한 노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웃과 양립할 수 없다는 태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행되는 폭력을 바라보면서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그 적대감과 증오의 틀에 저들처럼 갇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 틀에 갇혀 버리는 순간, 우리는 참된 종교를 포기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우리 역시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세계는 전쟁 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전쟁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는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라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전쟁은 돈, 자원과 같은 이익을 얻기 위한 전쟁일 뿐입니다". 탐욕을 종교라는 포장지로 감추지 않도록 자신을 잘 돌봐야 합니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 폭력을 일삼는 이들이 촉발하는 분노에 먹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프란치스코 성인이 알려 준 ‘평화를 구하는 기도’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폭력을 막는 것은 더 큰 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받으려 하기보다 이해하고, 사랑받으려 하기보다 사랑하고자 마음을 바꾸는 데 있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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