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전례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성찬의 전례에서 빠질 수 없는 두 요소는 빵과 포도주입니다. 언뜻 하나는 먹고 다른 하나는 마시는 것이니 식사의 차원에서는 매우 잘 어울린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속성에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라는 의미를 담아 성찬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찬례의 전조라고 보이는 오병이어의 기적에는 포도주가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빵과 물고기입니다. 어떤 사연이 있길래?

빵은 밀이 땅 속으로부터 자라나 양식이 된 형태입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나와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또 다른 생명입니다. 둘 다 어떤 희생을 통해 이웃에게 생명을 주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빵과 물고기에 성찬의 의미를 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빵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등장한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물고기는 또 다른 맥락에서 중요한 소품으로 보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만 아는 상징으로 물고기의 형상을 나눴기 때문입니다. 초기 교회 안에서 신자들 사이의 비밀스런 신앙고백이었던,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예수(Ιησουζ), 그리스도(Χριστοζ), 하느님의(Θεου), 아들(Υιοζ), 구세주(Σωτηρ))라는 말의 머리글자만 모으면 이크투스(IXΘΥS)라는 단어 곧, 물고기가 됩니다. 그 낱말의 철자를 풀어 해석하면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신자들은 물고기 그림만 보면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이가 있음을 알아챈 것입니다. 그래서 빵이 육신의 양식이라면 여기의 물고기는 그리스도 곧 육신은 물론 영혼과 영원한 삶을 위한 양식이 됩니다.

▲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의 머리글자만 모으면 '이크투스', 곧 물고기가 된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첫 제자로 부르신 이들이 어부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들이 물고기를 낚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백성들을 위한 양식을 마련한 이들이었고, 그들의 운명은 결국 "그리스도라는 물고기”(이크투스)를 잡게 된 셈입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티베리아 호수라고도 불리는데, 그 호수의 물가에 형성된 큰 도시가 벳사이다(Bethsaida)입니다. 그 뜻은 "수렵의 집" 혹은 "물고기 잡는 집"입니다. 물가에 있었으니 당연히 물고기 잡는 집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추정컨대 예수님께서 부르신 첫 제자들은 이 도시 근처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요한 복음 마지막 부분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바로 티베리아 호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밤새 물고기 한 마리도 못 잡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백쉰세 마리 물고기가 잡힙니다. 여기서 153이라는 숫자에 대해 여러가지 이론이 분분한데, 그중 하나가 당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잡혔던 모든 종류의 물고기 숫자였다는 설입니다. 그런 이론을 신학적 맥락에서 보면, 모든 민족들 혹은 모든 종류의 사람들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물고기들이 잡혔는데도 그물이 터지지 않았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주님 안에서 일치하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느님의 백성들을 모을 이들이었다는 것이 첫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찬례의 초기 모델은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빵과 물고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고기를 먹으면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을 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 제자들이 지녔던 어부라는 세상의 직업이 영적인 직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경이롭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바로 하찮게 취급당할 수 있는 이들을 통해 위대한 일들 꾸미신다는 점입니다. 과연 하느님은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을 가지고 "귀퉁이의 머릿돌"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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