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주의와 교과서
예수회는 그들이 운영하는 수많은 학교와 그들이 쓴 글과 책, 그들이 하는 선교사업 등등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창설자는 교회사에서 위대한 “무명”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냐시오 로욜라.
그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사람들은 그가 병사였으며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고 삶을 바꾸었고.... 그리고는 끝난다. 그의 벗이었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전설적 인물로서 성 하비에르 학교와 대학이 수없이 많다. 그런데 이냐시오는? 그가 회개한 뒤 그에게 어떤 일이 있던 것일까?
그것은 긴 이야기이고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나중에 또 얘기하자. 대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이냐시오 로욜라가 교회사에서뿐 아니라 서방 세계에서도 중요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고 기도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는 그가 한 두 가지 중요한 일을 통해 이뤄졌다.
그런데 우리가 이 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냐시오가 역사 속에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먼저 얘기하자. 그는 1492년, 그러니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유럽인들의 탐험 시대가 열리던 해에 태어났다. 그가 30살이었을 때 전투 중에 다쳤다. 그해가 1521년이었는데, 바로 그 해에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에 있는 성당 문에 교황에게 도전하는 글을 써 붙였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526년에 북인도에서는 한 젊은 터키인 사령관이 델리 근처에서 벌어진 파니파트 전투에서 이겼는데, 사상 처음으로 전장에서 대포를 쓴 결과였다. 그의 이름은 발부르로서, 무굴제국의 첫 황제다. 당시는 인도에서나 유럽에서나 동란과 변화의 시대였다.
나는 방금 이냐시오가 일반 역사에서도 중요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무엇을 했기에?
두 가지다. 첫째로, 그는 책을 한 권 썼는데, “영신수련”이라고 하는 얇은 책이다. 그리고서 그는 예수회라고 하는 남성 단체를 시작했는데, 이 단체가 자신들이 세운 학교들을 통해서 세상을 바꿨다.

예수회 신부들이 진행하는 피정에 가 보면, 진행자가 여러분에게 이 책에서 따온 실천 문제들을 줄 것이다. 이 연습의 목적은? 복음서에 나온 예수를 더 잘 알고,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인생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많은 선택에 부닥친다. 내년에는 무엇을 할까?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나? 저 광고물을 받아야 할까? 지금이 결혼해야 할 때인가? 내 돈을 어떻게 쓸까? 등등등등.
이냐시오의 이 책에서 우리는 “식별”하고, 올바른 결정을 하며, 하느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곳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다. 이 책을 통해 수많은 남녀가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을 인도하시고, “올바른 결정”을 보여 주시며, 평화와 큰 용기를 지닐 수 있도록 해 주시는 하느님을 알아 보았다.
“영신수련”은 현대교회에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이냐시오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했다. 그가 만든 남성단체는 곧 그들의 열정과 에너지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역사는 그들을 예수회원들로 아는데, 이들은 매콜리가 표현한 바로는 “유럽의 교장들”이 되었다.
예수회가 한 가장 위대한 기여는 그들이 가는 곳마다 학교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혁신이었고, 내가 과감히 말해 보자면, 현대 세계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 ‘예수회 학교’는 (예수회원보다) 더 젊고 더 폭넓은 대중을 위해 적용된 또 하나의 ‘영신수련’이었다.
예수회가 등장하기 전에는 학교에 간 사람이 없었다. 어떤 직업을 배우고 싶다면, 어떤 장인에게 가서 도제로 일해야 했다. 예수회는 처음으로 단계별로, 그리고 체계화된 형태의 지식을 가르쳤다. 그저 기술만 가르친 것이 아니고 생각들도 가르쳤다.
예수회가 이룬 혁신들 가운데 몇 가지만 간단히 말해 보자.
- 교과서를 발명했다. 이는 인쇄 기술이 발명되어 가능했는데, 이로부터 책이 공용으로 나오게 되었다. 오늘날에 우리는 교과서라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이게 얼마나 ‘새 물건’이었는지 깨닫지 못한다. 교과서는 참고할 글들을 골라 모아서, 단계적이고 체계적 형태로 정리함으로써 독자가 그 주제에 정통하도록 이끈다.
- 이러한 고전적 교과서 가운데 하나가 교리문답서인데 (요즘 우리는 FAQ라고 부른다), 어떤 주제에 관한 간단하지만 늘 나오는 질문들에 대해 표준 답변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 예수회는 처음으로 사전과 문법서들을 썼다. 그리고 처음으로 지도들을 디자인했다. 이 모든 것들은 인쇄된 페이지들이 계통적으로 정리된 것으로, 인쇄는 배움에 있어 혁명을 수행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달에 관한 첫 번째 지도는 예수회 학자인 클라비우스가 만들었다.
- 예수회의 교육은 교사와 학생의 접촉을 강조하는, 인격화된 상황에서 진행됐다. 그래서 지금에도 옛날의 학생들이 자신들이 배웠던 학과는 모두 잊어도 예수회 선생들은 경모하는 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예수회의 모토인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행해졌으며, 세계 곳곳 남녀의 향상을 위해 (예수회가 16세기에 표현한 것으로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행해졌다.
예수회가 처음으로 만든 학교는 이냐시오 생존 당시에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탈리아의 메시나에서 시작했다. 두 번째 학교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인도의 고아에서 열었는데, 성 바오로 대학이라 불렸고, 지금도 그 정면 벽의 잔해를 볼 수 있다.
이냐시오로부터 비롯된 것으로는 “신학교”(seminary)도 있다. 교육받은 사제가 되는 방법을 젊은 남성들에게 “단계적이고 체계화된 방식”으로 가르치는 제도다. 예수회가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회 교사들과 예수회 학생들의 유산이다. 귀중히 여기고 보전하며, 나아가 더욱 활성화해야 할 것들이다.
배움이란 책장 위의 책들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현장으로 나가 쇄신하고 실험하며, 발견하고 발명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인쇄 출판이 예전에 하던 것을 지금은 전자 미디어가 하고 있다. 전자 미디어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고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이 바뀌었다. 이미 교육을 바꾸어 놓았으며 세상 또한 그렇다.
이냐시오 로욜라가 지금 세상에 있다면 텔레비전과 라디오, 인터넷, 그리고 핸드폰을 갖고 무엇을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해야 할 것이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축일은 7월 31일이다.)
(마이론 페레이라 신부는 예수회 소속으로 인도 뭄바이에 있으며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기사 원문: http://www.ucanews.com/news/the-ignatius-you-didnt-know/76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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