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청춘 - 변지영]

‘자유학기제’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이번 학기에는 아르바이트로 학원에서 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자유학기제 도입으로 중간고사를 치지 않는다. 자유학기제란 박근혜 정부의 교육 공약으로 중간고사를 보지 않는 대신 토론, 실습수업이나 체험활동을 하는 제도다. 괜찮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생활이 좀 어떠니? 아이들은 시험 한 번 안 봐서 좋다고 했다. 사실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좀 더 편안하고 즐겁다고 하니 그만하면 됐지 싶었다.

그러나 이 제도의 현실을 학원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에는 아, 절망스러운 한숨이 나왔다. 선생님들이 말하길 1학년 때 자유학기제로 시험을 보지 않았던 아이들이 2학년에 진급하면 상대적으로 학업 기본이 너무 부족한 상태라고 했다. 자유학기제를 도입하면서 전체적인 교육 시스템이 바뀐 것도 아니고, 그 이후 학년에서 평가 기준이나 입시가 달라진 것도 아닌데 시험 보면서 바짝 공부라도 하던 게 없어지니까, 2학년 과정을 가르치기가 힘들 만큼 전체적인 수준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나마 1학년 때 학원을 다니면서 기초를 닦았던 아이들은 괜찮지만 학원마저 다니지 않으면 그것은 곧바로 실력 차이로 이어진다고 했다. 사교육을 없애고 아이들이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폭넓게 공부하길 바라서 만든 제도가 학원을 다니는 아이와 다니지 않는 아이의 격차를 벌려 놓았다. 이것은 한 지역의 사례이고, 이 사례 하나로 자유학기제를 실패한 제도라고 판단하기엔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교육 제도가 달라진 것은 없는데 1학년만 자유학기제를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참 사실이었다. 이것은 제도적 문제였다. 또 구조적 문제였다.

왜 학교에서는 알파벳을 가르쳐 주지 않나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의문이 참 많다. 이제 20대 중후반이 된 주위 친구들 중에 이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꽤 많은데, 그 첫 번째 이유로 아이들의 교육을 꼽곤 했다. 내 자식은 그 기형적 구조 속에 10대를 보내지 않았으면 한다는 마음.

우리나라에서 공교육으로 영어를 처음 가르치는 것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알파벳부터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아이들이 공교육 과정 전에 공부해 와야 할 단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사교육을 줄이겠다고 하지만 사교육이 없으면 안 되는 현실이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시스템에 문제는 있지만 이렇게 돼 버린 이상 언제까지 시스템 탓을 하고 있을 것이냐는 것이다. 그 정도는 부모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부분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 되는 집은 부모가 맞벌이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누가 그 아이를 공교육에서 요구하는 입학 전 수준까지 관리해 줄 것인가? 그렇다고 우리나라 학교 분위기가 수업을 못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괜찮다며 차근차근 수준 별 학습을 해 주는 편인가? 그런 아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는 곳인가? 그 문제로 아이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할 일이 절대 없는 곳인가? 부모님의 직업으로, 아파트 평수로 친구들의 그룹을 나누는 기막힌 일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학교에서, 알파벳을 모르고 입학한 아이들이 아무 상처 없이 지낼 수 있을까?

‘깨시민병’이라는 단어의 폭력. 위험한 문화

‘깨시민병’이라는 말이 있다. 이 용어는 처음엔 ‘선민의식을 갖고 진영논리에 빠져 정치적으로 상대방을 매도하되 자기편에겐 따뜻한 이중잣대를 구사하는 민주당계 정당 내 친노 지지자’를 가리키는 인터넷 상에서 만들어진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일상에서는 이것이 변질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왔다. 정치적으로 자신의 주관을 매우 뚜렷하게 표하는 사람, 어떤 일에 대해 정치적으로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 그렇다고 어떤 자리에서 눈에 띄는 실천을 하고 있진 않은 것 같은 사람에게 깨시민이라며 조롱하는 모습을 꽤 볼 수 있었다. 학원에서 선생님들과 자유학기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나라 교육이 이러이러한 건 정말 구조적인 문제 아니냐고 말하자 돌아온 대답은 ‘선생님은 정치학과 다니는 대학생이라서 그런가 본데, 나중에 꼭 정치인 돼서 바꿔 주세요’였다. 일단은 시스템 탓하기 보단 내 아이가 뒤쳐지는 걸 막아야 하니 학원을 찾아다니고 학원비를 마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실천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우리 스스로를 탓한다. 우리는 너무 바라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순박하고 겸손한 민족성이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유권자는 바라고 요구하고 주장해야 마땅하다. 우리의 대표를 뽑을 때는 그 대표가 어떤 정치관으로 어떤 공약을 들고 나왔는지 보고 평가하고 투표해야 한다. 그렇기에 시스템의 문제 구조적 문제는 우리의 대표자가 앞장서서 고민하고 피드백 받으며 매 선거마다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 기간 동안 우리는 그야말로 수많은 막장극들을 봤다. 이 기간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확실히 느낀 것이 있다면, ‘아, 저들은 우리를, 유권자를 정말 무시하는구나’라는 것이다. 그렇게 막장극을 보여도 뽑힐 사람은 뽑히고 국회에 입성할 사람은 입성할 테니 사회 문제나 마땅히 고민해야 할 것들을 들고 나와야 할 때, 정치적 거물에 줄서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유권자의 심판은 전혀 두렵지 않구나. 우리의 요구는 요구 같지도 않구나.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가 경향신문에서 말했다. “능동적 시민이 ‘거세된 대중’으로 바뀐 것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챈 것은 정치권력이다.”

대학생 사회만 해도 우리는 점점 요구하고 비판하는 이들을 극성스러운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이 문화 속에서 때로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항쟁이 심지어 부럽기까지 했다. 차라리 시대가 너무 암울하니까, 비판하고 요구하고 거리로 나가도 그들은 깨시민병이라 손가락질 받지 않았구나. 지금 이 세태는 민주주의에 아주 위험한 문화다. 그래도 당장 극성스러운 사람이 될지언정 거세된 대중이 되진 않아야 할 것 아닌가.

▲ 국회의원 선거 이틀 전인 4월 11일 서울 합정역 부근. 국회의원 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지금여기 자료사진

총선 D-2 그래서 누구 뽑으실 거예요? 모르겠어요.

얼마 전 학교 과제 때문에 일원동에 여론 조사를 나갔었고, 이것이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공천 진흙탕 싸움 속에 정책도 공약도 정당의 방향성도 모두 증발해 버렸다. 총선이 내일 모레인데, 정치인으로서 자신들의 정치 비전을 펼치며 유권자를 끌어오는 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번 총선의 정치적 쟁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낡디 낡은 정권 심판론마저 외치는 사람이 없고. 공천, 공천, 또 공천이었다. 우리는 그런 그들에게 점점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실망스러운 현재 사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정당 공천이 가장 큰 원인이니 이것은 정당정치의 폐해일까? 정당정치가 아니라 파벌정치가 문제다. 이 사태는 오히려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정당정치란 대의제 민주정치에서 정당의 정강과 정책을 기초로 행하여지는 정치다. ‘정강과 정책’은 없고 몇몇 인물과 그 인물을 중심으로 한 파벌을 중심축으로 돌아가는 것이 오늘날 한국 정치의 실상이다.

이젠 정치권에 실망하기도 지긋지긋하니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유권자는 세금, 복지, 안보 등에 대한 후보들의 정책을 궁금해 하고 그 정책이 유권자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관심 있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요구해야 한다. 정당이란 정치적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다. 정치 방향에 대한 기반을 다잡고 각 지역구 후보들은 그 기반을 바탕으로 지역구 상황에 대입해야 하는데 기반이 없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는 진정한 정당의 의미가 없다. 왜?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유권자가 날카로운 심판의 검을 휘두르지 않으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유권자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사람에게 깨시민병이라며 손가락질한 적은 없는가. 나는 나의 표 가치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요구하고 있는가.

교육이 미래다. 그 교육은 유권자가 이끌어 갈 수 있는 사안이다.

깨시민이라 손가락질 받든 말든, 그래도 나는 시스템 탓을 하련다. 투표도 하고 신문도 보고 내 주위의 우리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용기 내어 말하련다. 말한 것의 반이라도 실천하라는 비난은 달게 받고, 더 실천하고, 말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 내기 위해 노력하련다.

지난 8일, 사전 투표를 하고 나와 학원에 출근해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적어도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분에게 많이 부끄럽진 않은 것 같다고. 여러분이 유권자가 되면 꼭 투표를 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했으면 좋겠다고. 나도 어른이 되어 가나 보다. 똘망똘망한 아이들의 눈을 볼 때마다 미안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더러운 문화에서 좀 자유로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의 직업과 아파트 평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아는 교육을 받았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그 염원을 담은 이 한 표의 가치. 나 자신을 덜 부끄러운 어른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 준 것 이외에 당장의 가치를 체감하진 못하겠다. 그러나 그 염원들이 모이면 마침내 우리 아이들의 교육, 우리의 미래를 유권자들이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4월 13일이 이틀 남았다. 주장하고 바라고 요구하는 우리가 되자.

 
 

변지영(스텔라)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58대 의장
숙명여대 가톨릭학생회 글라라 57대 회장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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