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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매 마을의 천도재[장영식의 포토에세이]

7월 4일 오후,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가 갑자기 가동이 중단됐다. 5-20퍼센트의 저출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가동이 중단된 것이다. 작년 10월 운영허가 이후로 시운전 중에 두 번째 가동 중단이다.
 

   
▲ 골매 마을 사람들의 슬픈 유민의 역사는 1970년 고리 핵발전소 건설로 비롯됐다. 당시에는 핵발전소가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는 공장을 짓는 것으로 주민들을 기만하며 조상 대대로 살아온 아름다운 고향을 강제로 떠나게 만들었다. ⓒ장영식

7월 5일 저녁에는 울산 앞바다에서 진도 5.0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울산뿐만 아니라 부산과 경남 그리고 경북 등 전국이 불안의 밤을 보냈다. 시민들은 한수원에 수천 통의 전화로 고리와 월성 핵발전소의 안전에 대해 문의했다고 한다. 핵발전소에 사고가 나면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의에 한수원 측은 제대로 답변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 골매 마을 사람들은 신고리 핵발전소 3,4호기 건설 계획에 의해 다시 재이주가 거론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핵발전소를 이고 살았다. ⓒ장영식

이런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7월 6일과 7일,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골매 마을에서는 천도재를 지냈다. 골매 마을은 고리 핵발전소 1호기 건설을 시작하면서 고리 마을 사람들이 집단 이주한 마을이다. 신고리 핵발전소 3,4호기 공사를 시작하면서 다시 집단 이주 문제가 대두되었지만, 보상 문제로 집단 이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 건설이 계획되면서 다시 집단 이주 문제로 분쟁과 갈등을 겪은 끝에 한수원과 보상 문제를 타결하고 마을 천도재를 모시게 된 것이다.

   
▲ 보통 마을 이주와 관련된 천도재는 5일을 지내지만, 골매 마을 천도재는 비교적 짧은 2일로 지냈다. 그것은 한수원과 주민 간의 보상 문제가 끝난 상황에서 한수원의 고압적인 자세와 비협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장영식

골매 마을은 핵발전소 건설로 고향을 잃고 두 번씩이나 집단 이주를 해야만 되는 슬픈 마을이다. 고리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사람들은 골매 마을과 온정 마을 그리고 각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골매 마을 사람들은 이틀 동안 천도재를 지내고 나면 새로운 집단 이주마을로 떠날 것이다.
 

   
▲ 고리 마을 1세대 주민이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면서 "내 고향 고리에 가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긴 분들이 많다고 전해진다. 천도재를 지내면서 골매 마을 주민들은 눈물과 기도로 애환을 달랬다. ⓒ장영식

최근 울산 바다의 경고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핵발전소 건설에 혈안이 되고 있다. 체르노빌도 후쿠시마도 교훈이 되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핵발전소에서 30킬로미터 안에 380만 명이 살고 있어도 핵발전소 건설을 승인하고 있다. 지난 겨울 전기를 가장 많이 쓰던 시점에도 100만 킬로와트급 핵발전소 15기 분량의 설비가 놀고 있었을 만큼 어마어마한 전기가 남아돌아도, 핵발전소를 계속 짓겠다고 한다. 한 지역의 4킬로미터 내에 10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지진과 해일에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 부디 골매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더라도 골매마을 사람들이 화목하고 행복하길 소망한다. ⓒ장영식

핵발전소를 짓기 위해 사람들을 내몰고, 허망하게 고향을 잃고 내몰린 사람들은 눈물로 얼룩진 삶을 살아간다. 이중 삼중의 소외와 차별을 겪었던 골매 마을 사람들의 비통한 눈물 뒤로 웃고 있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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