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청춘 - 변지영]

그것이 어떤 형태의 공동체이든, 자의든 타의든, 어딘가에 소속되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숙명이다.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집단과 개인의 관계에 대한 많은 이론과 철학이 있어 왔고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인류의 고민이었다. 추상적이긴 하지만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회’라면 행복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전제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자유와 평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해적당도 홉스도 밀도 결국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살기 좋은 사회를 바라지만, 그 사회의 형태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접근법은 모두 다르다. 밀이 말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사회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사회, 즉 국가의 개입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밀이 말하는 인간 자유의 고유 영역은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일반적으로 사상의 자유라고 불리는 의식의 내면적 영역이다. 둘째는 우리들 자신이 원하는 계획을 세우고 취미를 가질 수 있는 자유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타인에게 해악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도 단합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다. 이 세 가지는 현대사회 민주주의 국가에서 추구하는 자유의 개념과 유사하다.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민주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하며, 서구 사회로부터 ‘어설픈 민주주의국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것은 특히 우리나라 언론의 자유가 서구 사회에 비해 폭넓게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점에 입각하여, 밀의 자유론을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적용시켜 본다.

▲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항

현대사회 ‘표현의 자유’에 비춰 본 밀의 자유론

밀은 100명 중 99명이 반대한다고 해서 1명의 목소리를 무시 혹은 탄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단 1명의 목소리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자유를 보장해 줘야 하며, 그 과정에서 나머지 99명도 보다 성숙한 시민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사회적 개별성을 강조하였다. 생태계에서 종의 다양성이 추구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그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현대사회에서 다수가 여론과 관습을 앞세워 ‘비주류’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폐쇄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비주류가 타인에게 해악을 미치는 성향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가의 이름으로 그 비주류 집단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정당한가? 이처럼 밀이 추구한 자유의 요소들이 서로 상반되는 경우에는 무엇을 옳다고 규정하기가 어렵다.

절대적 진리를 규정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있어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진리란, 사회적 맥락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적용되어야 할 진리란 무엇인가. 밀의 생각을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국가의 기원’에서 출발한다. 국가의 탄생은 개인의 권리 보호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오류를 피하기 위해, 여기서 말하는 국가란 지금의 ‘정부’의 개념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합법적으로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시민의 자유를 빼앗을 수도 있는 권력집단 말이다.)

때문에 해악적 비주류 집단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국가의 개입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최악의 경우는 국가의 언론 장악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이와 같은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자발적 시민집단의 저항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집단이 있다고 하자. 이 집단은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이 모여 형성되었는데 점차 특정 계층 혹은 특정 지역 사람을 근거 없이 비난하고 모욕하기 위한 집단이 되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B라는 집단을 형성한다. 피해받는 사람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A의 횡포를 알리는 등 다양한 형태로 저항하는 것이다. 이 저항에는 언론을 통한 여론 형성도 해당되는데 이것은 명백히 다수의 행보와는 구분된다. 나와 뜻이 다르다고 해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해악적 집단으로부터 피해받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수의 목소리가 모인 것이기 때문이다. 단, B집단 역시 A집단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단순 모독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욕설에 대해 단순 욕설로 받아치는 것에 그친다면 A 역시 B와 같은 집단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작은 정부는 무능한 정부가 아니다. 최고의 힘은 성숙한 시민의식

국가의 역할은 집단 간 상호작용에 대하여 규칙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자전거에 엔진을 다는 것이 아니라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윤활유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심판이 선수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경기는 깨지고 만다. 현대사회에서 밀이 추구한 개별성, 기호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위협받지 않으려면 국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작은 정부의 국가에서 꼭 필요한 전제 조건이 있으니 바로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사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홉스의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시민은 홉스 시대의 시민보다는 훨씬 발전한 존재라고 믿는다. 나의 이익이 직접 관련되지 않더라도 때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그것을 비합리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시민의식. 어쩌면 이것은 합법적인 물리적 강제력의 독점보다 더 큰 무기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다수에 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 것은 비굴함이다. 이러한 용기 없이는 위에서 말한 해악적 비주류 집단에 대한 저항은 물론 일체의 사회 발전도 없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특징인 ‘불안’의 정서 때문에 여론과 관습에 의존하고 다수에 묻어 가려는 성향이 만연한 요즘이지만, 그 비굴함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생각을 외치는 사람이 절실한 요즘이기도 하다. 밀의 말대로라면 나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99명의 사람이 있을지라도 나는 나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고 나의 발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자유가 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천부적 권리다.
 

 
 

변지영(스텔라)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58대 의장
숙명여대 가톨릭학생회 글라라 57대 회장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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