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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가 뭐죠?[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오늘 대면할 속풀이 주제는 우리가 각자의 삶에 가장 기본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소(聖召)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초대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며 어떠한 삶으로 부르고 계시는지 알아듣고, 그것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성소라는 말은 라틴어의 vocatio(영어는 vocation)에서 온 말로서, 어원적으로는 목소리(vox)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성소를 소명(召命)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역시 하느님의 부르심, 그분의 지시를 뜻하는 낱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좁은 뜻으로 쓴다면, 수도성소나 사제성소 등으로 국한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 의미를 확대하여 보면, "구원자 예수"를 고백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성소부터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우선, 공동의 성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하라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성소 혹은 소명에, 생활 양식에 따른 분류가 올 수 있습니다. 성소를 좀 더 세분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오늘의 맥락에서 보통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합니다. 독신성소, 결혼성소, 공동체성소가 그것입니다.

독신성소는 혼자 사는 것입니다. 특정한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채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여 살아가는 삶입니다. 오늘의 현실은 독신성소를 늘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하게 만들지만,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하는 의지와 서약이 없다면, 부르심에 대해 유보적인 자세일 뿐 그것을 성소라고 부르기에는 이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당에 파견된 사제는 생활 양식상, 독신성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요즘에는 여러 사제가 함께 모여 살아가는 공동숙소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이 공동숙소들이 단지 먹고 자는 공간의 기능만이 아니라 함께 기도하고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오가는 곳이 된다면, 공동체성소의 성격도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프란치스칸 수도회 합동 서품식에서 새사제들이 명동성당에서 안수받는 모습. ⓒ한수진 기자

한편, 사제가 아닌 평신도 신분으로 전문직을 통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교회활동에 온전히 투신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독신성소를 살아가는 이들입니다.특정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의 대표적인 예는 결혼성소입니다. 가정이라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통해 사랑, 생명, 신앙을 전수하면서 하느님이 하시는 사업에 동참하는 삶입니다. 이와는 달리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하느님의 뜻을 찾고, 공동선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 공동체성소입니다.

수도자로 살아가는 삶은, 독신성소와 공동체성소가 공존하는 생활 양식이 되겠습니다. 단순하고 검소한 삶을 지향하면서 특정한 인간관계에 매이지 않은 채, 하느님의 뜻을 실현시키고자 합니다. 한편, 결혼성소도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니까 공동체성소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하지만, "여러 가정들"이 함께 모여 하느님의 뜻을 찾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생활공동체적 노력이 있을 때 공동체성소의 성격을 뚜렷이 부여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생활 양식으로 구분해 본 성소에 우리는 한 단계 더 세분화된 부르심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즉, 개인성소(personal vocation)를 찾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수도회에 입회하여 사제로 양성받은 이는 독신과 수도생활 공동체의 삶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한 사람입니다. 사실, 그게 다인 줄 알았죠. 하지만, 살다 보니 그러한 생활 양식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실현할지에 대한 다양한 방법이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알려 주고 함께 하면서, 누구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그 가정을 만나면서, 누구는 글을 쓰면서, 누구는 지식을 전달하면서, 누구는 청소년, 청년들과 만나면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개인성소로서 각자에게 고유하게 전해 오는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을 알아듣는 방법은 기도와 내적인 울림에 귀 기울이는 일,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전개되는 일상의 사건을 성찰해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우리 모두는 악을 선택하고자 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 선택합니다. 그러면, 아무 일이나 해도 상관없다는 결론에 이르겠지만,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리고, 그분께 "더" 큰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이 우리 각자의 성소와 관련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오고 있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기 위해 우선, 오늘 하루가 "더" 기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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