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선의 ‘세븐’ - 2]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다한 느낌을 갖는다. 자신의 성취나 재능을 과장하고, 별로 성취한 것이 없었음에도 우월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어 한다. 끝없는 성공, 권력, 훌륭함, 아름다움 혹은 이상적인 사랑을 갈구한다.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며, 따라서 특별한 사람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존경을 요구하고, 특혜를 원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타인을 이용한다. 타인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 ‘정신병의 진단기준과 통계상의 지침-4-TR’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진단기준을 일부 옮긴 것이다. 머릿속에 누군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지? 사실 교만의 병, 즉 병적인 자기중심성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스스로 자성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가 폭로되어도, 그들은 단지 자신의 우월한 재능을 탐내는 시샘 정도로 생각한다. 혹은 열등한 족속들이, 자신의 훌륭함을 도무지 알아보지 못한다고 여긴다.

따라서 이들이 정신과에 직접 찾아오는 일은 대단히 드물다. 끊임없는 대인관계의 어려움과 만성적인 공허함에 시달리다가, 우연히 의사를 찾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의사의 출신 학교나 명성, 외모, 학위 등만 따지다가, 이내 발길이 끊어지고 만다. 스스로 고통을 잘 느끼지도 않고, 삶의 어려움은 주변의 탓으로 돌리니, 도무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심판한다.

▲ '교만', 자크 드 바케.(1555-85)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교황 그레고리오 1세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이 바로 죄 중의 죄, 즉 죄의 여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다른 대죄와 나란히 놓지도 않고, 특별히 별도로 두었다.(기존 여덟 가지 죄를, 일곱에 맞추려 했다는 의견도 있다) 16세기 영국의 성직자였던, 헨리 스미스도 모든 죄의 으뜸이 바로 교만이라고 하였다. 다른 죄는 스스로에게 범하거나 혹은 타인에게 범하는 것이지만, 교만은 바로 하느님께 범하는 죄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만의 병, 즉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직 국내 연구는 별로 없지만,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유병율은 약 두 배로 늘어났다. 정신의학 교과서에 의하면, 원래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유병율은 대략 백 명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16명당 한 명으로 늘어났고, 특히 젊은 층에서 그 증가속도가 빠른 것으로 보인다.

현대 사회에서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아직 건강한 긍지와 병적 자만을 잘 구분해 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성취해야 하는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처음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는 능력이 특히 부각된다. 강인한 자신감과 완고한 자만심, 거침없는 리더십과 고집 센 독선, 꺾이지 않는 자기 확신과 반성 없는 자기 기만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물론 다양한 정신의학적 평가기준을 적용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이 두 가치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현대 사회에서 추앙하는 자긍심과 자기 확신이라는 긍정의 가치는, 교만과 자기 기만이라는 부정적 가치의 뒷모습이다.

하지만 건강한 자긍심과 병적 자만이 불러오는 삶의 결과는 아주 다르다. 자기애성 인격장애의 환자의 젊은 시절은 겉보기에 화려하고 멋질 수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상화된 관계를 만들고, 이내 평가절하하면서 새로운 만남을 추구한다. 글렌 가바드라는 정신의학자는 이를 ‘타인을 빨아들인 뒤에, 빈껍데기는 버리는 대인관계의 양상’이라고 표현했다. 결국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는 건강하게 나이 들지 못한다. 이들은 늦은 나이에야 하는 수 없이 결혼하지만, 배우자가 자신을 원하는 방식대로 대우해 주지 않으면 분노한다. 나이가 들면서 포기해야 하는, 능력과 젊음,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은 이들의 삶을 점점 무너뜨린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젊은 여성을 찾아다니거나, 혹은 권력을 이용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칭찬해 주는 사람으로 주변을 채우려고 하기도 한다. 혹은 종교에 귀의하여 절대자로서의 신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신이란, 사실 자기 자신을 신이라는 존재에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 자신의 결함을 신의 위대함으로 위장하고, 절대자의 입장에서 타인을 평가하고 심판하려고 한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겸손하다. 이야말로 내가 그 누구보다도 우월하다는 증거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실상 그 어떤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에 대한 정신치료는 아주 어렵다. 정신과 의사의 상당수가 자기애적 성장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의사들은 학창시절 내내,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 인해 주변의 칭찬을 당연하게 받아 왔다. 아픈 이를 돌보는 고귀한 직업이라는, 도덕적 당위성도 자기애에 빠지기 쉽게 만드는 조건이다. 사회에서 아주 많은 관심과 존중을 받고 있음에도, 종종 충분히 대우받지 못한다고 여기고는 한다. 내적으로 취약한 정신과 의사는, 심지어 자신을 언짢게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당한’ 정신과 진단을 붙여 매도해 버리려는 충동도 느낄 수 있다.

사실 자기애적 경향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 그러한 내적 속성을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경멸과 분노, 질투의 감정이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을, 잘 포착해 내야 한다. 우리는 흔히 그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화를 내거나 혹은 소극적으로 연락을 끊어 버리는 등의 행동을 취한다. 정신분석가 하인츠 코후트는 바로 이때, ‘당신은 바라는 대로 대우받지 못할 때, 상처를 입는군요’라는 말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동료의 정당한 성공과 인정, 직장 후배의 합당한 반박, 상사의 당연한 지적에도, 우리는 상처받는다. 그들에게 분노하고, 그들의 의도를 매도하고, 그들의 성취를 평가절하한다. 내적으로 몸부림치는 그 고통의 순간이, 바로 자기 자신의 교만함을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다.

 
 
박한선
성 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성 안드레아병원 영성과 사회정신연구소 연구소장
성 안드레아병원에서 마음이 아픈 환자를 돌보는 한편,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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