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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차액지원제’ 부활: 생태적 회개와 탈핵의 길- 조현철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밝힌,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통찰입니다.(16항 참조) 이 통찰은 생태학의 근본 법칙이기도 합니다. 우주물리학과 진화생물학은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동일한 하나의 기원, ‘빅뱅’의 순간에서 시작되어, 약 138억 년에 걸친 우주 형성 과정을 통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장구한 우주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 그 안의 모든 것은 이 우주 이야기의 일부이며, 산물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것은 존재와 생명 차원의 근본적 유대로 엮여 있는 것입니다. “네가 있음으로 내가 있다. 내가 있음으로 네가 있다. 네가 사라짐으로써 내가 생겨난다. 내가 사라짐으로써 네가 생겨난다.” 불교의 연기론 또한 우주 만물에 대한 동일한 시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세상은 하나의 그물망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생성과 소멸이 계속됩니다.

세상 만물이 존재와 생명 차원의 근원적 유대로 엮여 있다는 뜻에서 지구는 우리 모두의 “공동의 집”입니다.('찬미받으소서', 1항) ‘공동의 집’에 사는 우리 모두는 함께 있는 다른 존재들 덕분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누구 덕분에’ 존재하고 생명을 유지합니다. 어느 누구도 나 홀로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누구 덕분에 삽니다. 서로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빚지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살면서 질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빚’을 깊이 의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지상 목표로 삼고 있는 물질주의, 소비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생태적 빚”을 크게 지고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51항) 누구에게 진 빚인가? 자연 생태계, 앞으로 세상에 나타날 미래 세대, 그리고 특히 우리와 같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세상의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 이 모두에게 우리는 엄청난 생태적 빚을 지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에는 만 탈렌트의 빚을 진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마태 18,21-35) 1탈렌트를 6000데나리온, 1데나리온을 우리 돈으로 10만 원이라 치면, 만 탈렌트는 6조 원에 해당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공동의 집에 우리가, 특히 평균 이상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우리가 끼친 생태적 훼손, 우리가 지고 있는 생태적 빚은 아예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습니다.

   
▲ 서울 양천구 목동 마리아의 딸 수도회 옥상에 있는 태양광 패널.(사진 제공 = 마리아의 딸 수도회)

핵발전으로 우리가 지고 있는 ‘생태적 빚’을 생각해 봅니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2000년 기준 ‘공식’ 사망자만 1만 5000명이 넘고,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 고통 속에 죽어 간 사람들, 장애인이 된 사람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올해로 사건 발생 30년이 지났지만, 체르노빌은 아직도 죽음의 땅입니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일본 영토의 70퍼센트가 반감기 30년의 방사성물질 ‘세슘’으로 오염되었습니다. 원상회복에 최소한 300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아직도 방사성물질은 계속 유출되고 있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핵발전소 24기를 가동하고 있고, 앞으로 15년간 12기를 추가 건설하겠다며 야심찬 핵발전 확대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지역주민의 삶이 파괴되고, 지역공동체가 분열되었는가? 핵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보내기 위해 세우는 송전탑으로 얼마나 많은 삶의 터전이 못 박히고 있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송전탑이 많은 곳은 놀랍게도, 천년 고도라는 경주입니다. 무려 799개가 있습니다. 월성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 때문입니다. 경주는 송전선로 길이도 601킬로미터로 우리나라 1위입니다. 10만 년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는, 1미터 거리에서 잠시만 노출되어도 얼마 못 가 죽는다는 고준위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가 연간 700톤 이상 꼬박꼬박 배출됩니다. 발전소 내의 임시 저장소에 쌓아 두고 있지만,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도대체 어쩔 셈인가? 저장소를 어디에 지을 것인가? 저장소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망가지고, 지역이 분열될 것인가? 모두 핵발전으로 인해 우리가 지고 있는, 갚아야 할 엄청난 양의 생태적 빚입니다.

우리가 생태적으로 얼마나 크게 빚지며 살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의식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생태적 회개”가 일어납니다.('찬미받으소서', 217항) 오늘날 우리가 핵기술로 엄청난 힘과 풍요를 누리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는 착각에 불과합니다. 사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가장 보잘 것 없는” 세대가 되었는지 모릅니다.(다니엘서 3,37) 우리의 엄청난 힘으로 우리 자신의 삶의 터전을 오염하고 파괴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멈춰야 합니다. 멈춰 서서,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으로 우리의 삶을 뿌리부터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다니엘서 3,39) 그럴 때에 우리 모두가 “공통된 기원을 지니고 있고 서로에게 속해 있으며 미래를 함께 한다는 인식”을 할 수 있게 됩니다.('찬미받으소서', 202항) 이 인식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모든 형태의 자기중심성과 자아도취를 거부하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찬미받으소서', 208항) 바로 생태적 회개입니다. 생태적 회개는 삶의 방식의 근원적 전환을 뜻합니다. 생태적 회개를 할 때, 우리 안에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라는 확신이 생겨나고, “생태 시민 의식”('찬미받으소서', 222, 211항)이 함양됩니다. 우리는 흥청망청한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검약에서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넘어 밖으로 관심을 돌려, 우리와 함께 공동의 집에 살아가는 다른 이웃들, 특히 힘 없는 이들과 자연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엄청난 “생태적 빚”을 의식하지 않으면, 이 빚을 당연하게 여기면,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처럼, 우리는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무자비한 삶의 행태를 보이게 됩니다. 이 삶은 극도의 자기중심, 타자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로 인해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와 자연입니다. 핵발전소와 송전탑 지역주민들의 파괴된 삶,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의 피폭노동은 핵발전이 가져다준다는 거짓 풍요와 편리에 묻히고 맙니다. 이것은 부끄럽게도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태적 회개로 생활양식을 기꺼이 바꾸려는 그런 ‘우리’들이 많아지면, 그 ‘많은 우리’들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들에게 건전한 압력”이 될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206항) 사회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올해 총선이 있고 내년에 대선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태적 회개로 일어난 삶의 변화에 대한 우리 자신의 염원을 정책으로 구현하여 사회구조적 변화를 이루어 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사람들이 정치적 권력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탈핵 정책을 펴겠다는 사람과 정당이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눈이 무릎까지 쌓인 한 겨울, 영광 핵발전소 앞에서 시작하여, 여기 광화문 광장까지 우리가 걸어온 이유입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아직도 쌀쌀한 날씨, 공휴일임에도 우리 모두가 여기 모여 있는 이유입니다.

사실, 탈핵은 간단합니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지, 노후 핵발전소 폐쇄, 전기 수요 관리,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전환하면 우리는 탈핵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것은 경제의 문제도, 기술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안전과 생명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정책의 문제이며,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 문제입니다. 우리 정부는 2001년부터 신재생에너지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발전차액지원제’(FIT)를 도입하였습니다. 하지만, 재정 부담을 이유로 2012년부터 ‘의무할당제’(RPS)로 정책을 전환했습니다. 발전차액지원제는 정부가 일정 기간 고정 가격으로 전력을 사서 수익을 보장하여, 중소규모 개인사업자들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육성해 주었습니다. 반면, 사업자들 간의 입찰경쟁으로 전력공급가가 떨어지는 의무할당제는 중소규모 개인사업자가 대다수인 태양광 산업계를 육성이 아니라 고사시키고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본은 2002년에서 2011년까지 의무할당제를 운용하다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2012년부터 발전차액지원제를 도입했습니다.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정책 전환 후 3년, 신청된 태양광 발전 사업의 총규모는 1500만 킬로와트에 이르렀습니다. 100만 킬로와트급 핵발전소 15기에 해당하는 전력입니다. 정책 평가는 결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동안의 결과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발전차액지원제도 부활!”

발전차액지원제의 재도입으로 인한 재정부담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2001년부터 전기요금에 3.7퍼센트를 부가해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조성해 왔습니다.(전기사업법 제48조) 이 기금이 2015년 기준 3조 800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재정 부담을 아무리 늘려 잡아도 전력기금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전력기금의 최우선 사용 대상은 바로 신재생에너지 사업 지원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같은 법 제49조) 그러니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하지 않을 이유도, 명분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제대로 알고 나서도 발전차액지원제도 부활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한 해 21조에 이른다는 거대한 핵산업계의 이권을 누리는 ‘핵마피아’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입니다. 발전차액지원제는 안전한 삶을 염원하는 국민 모두의 염원에 부합하며,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제도입니다. 우리는 정부와 정당에 발전차액지원제를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으로서 이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요구에 대한 정부와 정치인들의 응답은 이들의 실체를 밝혀 줄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뽑아 놓은 정부와 정치인들이 이른바 핵마피아들의 거대한 이익에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심이 있는가?

물론, 이들을 뽑는 우리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우리의 생태적 빚을 절감한다면, 그래서 생태적 회개를 했다면, 우리는 각성된 눈과 마음으로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 탈핵을 공약하는 이들이 정치를 하도록 주권자로서 우리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안전과 생명을 위하는 길입니다. 이것은 정치와 정책을 통한 이웃 사랑,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205항) 이것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생태적 빚이 우리 공동의 집과 그 안에 사는 우리 모두의 삶을 망쳐놓으려는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는 사회적 사랑이고, 정치적 사랑입니다.('찬미받으소서', 231항)

창조주 하느님의 귀한 선물인 햇빛을 모으고 바람을 모아,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일구어 나가는 것,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중차대한 소명입니다.
 

   
 
조현철 신부(프란치스코)
예수회 신부, 탈핵천주교연대 공동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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