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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순례, 희망의 발걸음 3000킬로미터를 넘다- 조현철

예언자 요나는 주님의 말씀을 외치기 위해 니네베라는 성읍으로 갔다고 합니다. 가로지르는 데 사흘이나 걸리는 걸 보면, 니네베는 거대한 도시였던 것 같습니다. 이 거대한 도시가 죄악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하루를 걸어갔으니, 요나 예언자는 아마 니네베의 중심부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거기서 요나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렇게 외칩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 3,4) 니네베 사람들은 회심을 합니다.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2013년 6월 6일 도보순례를 시작한 ‘탈핵희망 국토도보순례단’은 지금껏 3000킬로미터를 걸으며 외쳤습니다. “탈핵!” “핵발전소 이제 그만!”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탈핵은 오늘 이 세대에 대한 하느님의 뜻임이 분명합니다. 왜 그런가? 핵분열을 통한 핵기술은 창조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핵분열은 막대한 핵에너지와 함께, 자연 상태에는 없었던, 영구적이고 치명적인 200여 가지의 방사성 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생명체에 치명적 위험이 반영구 지속되기 때문에 ‘죽음의 재’,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도 합니다. 핵기술은 창조질서를 교란합니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죽거나, 항상 긴장과 불안 속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끊임없이 다른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핵발전소를 둘러싸고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탈핵을 요구하고 호소해 왔는가? 첫째, 우리 모두의 안전한 삶입니다.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우리 모두가 피해자입니다. 물론 핵발전소 지역에 살 수밖에 없는 힘없는 이들이 일차적인 피해자가 됩니다. 핵발전소 사고가 나지 않으면 안전한가?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방사성 물질을 완벽하게 핵발전소 안에 가두어 두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핵발전으로 생겨난 방사성 물질은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결국은 핵발전소 밖으로 흘러나오게 됩니다.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한, 각종 핵폐기물이 끊임없이 나오게 됩니다. 특히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는 고준위핵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봉’이 연간 700톤 이상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의 안전한 삶을 치명적으로 위협합니다.

둘째,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입니다.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의 건설과 운용에는 언제나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고도의 위험시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언제나 막대한 지원금으로 지역 주민을 유혹하고 분열시킵니다. 핵시설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역사가 이를 잘 말해 줍니다. 고리, 월성, 영광, 울진, 안면도, 굴업도, 부안, 밀양, 청도, 삼척, 영덕. 우리는 이 지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합니다. 핵발전소로 인해 자연만 파괴된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연 환경에서 생업을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었습니다. 공동체는 산산조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역주민들은 건강에 위협을 받고,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만 합니다.

셋째, 우리 삶의 양식과 가치의 문제입니다. “과연 무엇이 좋은 삶인가?” 탈핵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핵발전이 가져다 준다는 풍요와 편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풍요와 편리를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물음과도 같습니다. “과연 어떤 양식의 삶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인가?”

   
▲ 풍력발전.(사진 출처 = pixabay.com)

탈핵순례단은 그동안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지,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포기를 계속 요구하고 호소했습니다. 정부의 반응은 어땠는가? 지난해 2월, 정부는 월성 1호기 수명을 연장했습니다. 10월, 신고리 3호기 가동을 승인했습니다. 또한 향후 15년간 핵발전소 12기 추가 건설을 골자로 하는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탈핵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정부는 말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로 가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늘어 가는 전력 수요를 위한 대안이 없다. 정부의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첫째, 정부는 신재생에너지로 옮겨 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말 그런 의지가 있다면, 한때 시행했던 신재생 에너지 육성을 위한 ‘발전차액 지원제도’를 부활해야 합니다. 둘째, 전력 수요가 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전력 수요 확대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난 여름에는 개인들도 전기를 많이 쓰면 전기료를 할인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전기가 남아돌고 있습니다.(네이버 검색창에 ‘전력거래소’를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우리나라의 전력현황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는 어떻게든 전력 수요를 확대하여 발전소를 더 짓는 데 골몰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대안은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가 핵에너지의 대안이고, 기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충분히 현실적입니다. 핵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해 가는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정책 전환이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우리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프란치스코 교종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에게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종의 질문은 세상의 현실을 보고, 어떻게 할지, 우리가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시대의 징표’를 읽으라는 것입니다. 제대로 읽고, 그에 따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상세한 설명은 없지만, 대도시 니네베에서 질펀한 삶을 즐기던 니네베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동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들었나 봅니다.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요나의 고발을 받아들입니다. “제 악한 길”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섭니다.(요나 3,8) 사람들에게 근원적 회개, 삶의 방향 전환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되면, 상황은 바뀌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불의한 상황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문제점, 진상을 애써 외면합니다. 오히려 지금 이 상태가 정상적이고 좋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선택 가능한 차선이라고 포장하기도 합니다. 계속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확실한 증거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이것 외에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이미 징표는 충분히 주어졌다. 더 이상의 징표는 없다. 이제는 여러분들의 선택과 결단이 남았을 뿐이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지역 갈등, 이제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 ‘사용후 핵연료봉’ 보관문제, 이 모두가 우리 공동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 상황 자체가 우리 시대의 가장 뚜렷한 징표들입니다. 더 이상의 징표는 없습니다.

이 시대의 징표들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바로 탈핵입니다. 탈핵은 우리 시대에 가장 긴급히 요구되는 회심입니다. 세상의 창조 질서를 보전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순례를 하며 세상에 탈핵을 외치고 호소하는 우리 모두는, 요나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예언자들입니다. 검약한 삶과 에너지 절약 그리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이 예언의 요지입니다. 우리의 삶과 정책을 그렇게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햇빛 모아 탈핵하자!” “햇빛 팔아 탈핵하자!” “오- 햇빛 우리 에너지!” 이번 순례를 준비하며 새롭게 준비한 구호입니다. 이 구호에도 이런 예언자적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의 외침에 응답했듯이, 우리의 외침과 요청에, 한 사람이라도 더 응답할 것을 희망하며, 우리는 함께 서울 광화문까지 순례의 길을 이어 갈 것입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함께 걷는 우리 모두, 이 시대의 예언자들입니다.

 
 
조현철 신부 (프란치스코)
예수회, 서강대학 신학대학원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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