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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제를 올리며[장영식의 포토에세이]

   
▲ 골매마을 제당은 매년 정월대보름 새벽 1시에 제를 올리기 위해 문을 연다. ⓒ장영식

골매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날 새벽 1시에 제당에서 제를 모신다고 했다.
작년 정월대보름날에도 참석하고 싶었지만 오질 못했다.
올해 이 사진을 담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깊은 밤에 골매마을로 향했다.
이날 제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시는 것으로 알았다.
고리에서 이주하고 몇 해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제를 모셨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제를 모시는 것도 집집마다 당번제로 변했다.
그럼에도 오늘만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나와
제를 모시리라 생각했지만, 제주만 제를 모셨다.

   
▲ 제주는 조상님께 후손들의 모든 액운을 막아 달라는 소망을 빌고 또 빌었다. ⓒ장영식

제주는 이 날의 제를 위해 보름간 부부관계도 맺지 않고
부정탈 일을 아예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해에 마을에서 좋지 않은 일이 계속되면
제주의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원성을 듣기 때문이다.

제당 문이 열리고
처음으로 골매마을 제당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상상했던 풍경은 없었다.
위패도 없는 하얀 회칠의 텅 빈 공간이었다.
순간 당혹했다.

골매마을의 제당은 그냥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애초에 고리마을에는 박씨당과 김씨당의 제당이 있었다고 한다.
핵발전소 건설로 고향을 잃고 집단 이주하면서 박씨당은 골매마을로
김씨당은 온정마을로 모셨다고 한다.
박씨당은 할매당이고, 김씨당은 할배당이라고 한다.

오늘 제주는 제를 모시면서
언제 다시 제를 올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액운으로부터 후손들을 지켜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토했다.
제를 지낸 후 음식은 다시 바닷가로 옮겨졌다.
바다를 의지하며 생활했던 사람들이 장만한
음식 하나 하나를 바다의 용왕님을 위해 제물로 바쳤다.

   
▲ 제당에서 제를 올린 후, 바닷가에서 용왕님께 제물을 올리는 제주. ⓒ장영식

   
▲ 제를 올리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분주한 여인네의 몫이었다. ⓒ장영식

올해 골매마을 사람들은 다시 신암마을로 집단 이주하게 된다.
이주하는 곳에서 1가구당 대지 100평에
건축 40평의 집을 짓기로 10여 년 전에 한전과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이 계약을 실현하는 데는 오랜 세월과 함께 우여와 곡절이 있었다.
신리마을 원주민들이 고리에서 집단 이주할 때 반대했던 것처럼
신암마을 원주민들도 집단 이주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제 골매마을 18가구 주민들은 집단 이주 날짜가 정해지면
마을 천도제를 지낸 후 골매마을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핵발전소로 인해 고향을 잃고
두 번째 집단 이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온갖 풍상을 겪은 50년 유민의 역사가 깊게 배어 있었고
제당을 감싸고 있는 노송 위로
높이 달린 보름달빛이 골매마을을 휘돌아 밝히고 있었다.
핵발전소에서 흘러나오는 스산한 불빛과 함께.

   
▲ 어쩌면 골매마을에서 올리는 마지막 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모든 사연들을 노송 위의 보름달은 알고 있을까.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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