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의장, ‘병인박해 150주년’ 담화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병인순교 150주년’을 맞아 사회 불평등 개선, 순교 신심을 통한 교회 쇄신과 발전을 강조했다.

김 대주교는 1월 25일 발표한 담화에서 신자들이 “시복되지 않은 순교자들”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순교 정신으로 무장해 각자 삶의 자리에서 복음 전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대주교는 “시복시성은 순교자들의 영웅적 신앙 고백과 애덕 실천을 우리 모두가 본받고 쇄신되어 복음을 ‘지금 여기에서’ 전하는 행위를 통해 그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고 했다.

▲ 절두산 순교성지에 있는 순교자의 부조. 이곳의 순교기념관은 병인박해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렸다. ⓒ한상봉 기자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봉헌된 124위 순교자 시복 미사 때 “막대한 부요 곁에서 극도로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절규가 거의 들리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면서, 신자들은 세상의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를 개선하기 위해 ‘예언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김 대주교는 한국 천주교가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는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중 병인박해 때 순교자가 95명이라고 소개했으며,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2015년 12월 15일 교황청 시성성 신학위원회를 통과했고 머지않아 ‘가경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경자(可敬者)는 순교자가 아닌 시복 후보자에 대해 영웅적 성덕 심사가 끝난 경우 붙이는 존칭이다.

병인박해(병인순교)는 1866년(고종 3년, 병인년) 초부터 1873년 흥선 대원군이 정계에서 물러날 때까지 계속된 천주교 박해를 말한다. 한국 천주교가 겪은 4대 박해 중 마지막이었으며, 가장 오랫동안 전국적으로 이어지면서 피해가 매우 컸다. 1860년대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고 러시아가 연해주로 남하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일어난 병인양요도 이때 진행 중이던 박해를 더욱 키웠다.

한국교회사연구소에 따르면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 8000명 이상이 죽었다. 당시 순교자 중 베르뇌 주교, 남종삼 등 24위가 1968년 시복에 이어 1984년 시성됐다. 또한 2014년 시복된 124위 중에도 병인박해 순교자 20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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